[박수정의 오지체험]미지의 대륙 남극, 그곳에 가고 싶다
[박수정의 오지체험]미지의 대륙 남극, 그곳에 가고 싶다
  • 편집국
  • 승인 2007.05.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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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남극편
 
박수정 동문(생물자원학과 97졸)
사람들은 흔히 전 세계를 5대양 6대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틀린 말이다. 난 제7의 대륙인 남극을 보았다. 미지의 세계를 밟는 경이, 고통과 맞서 싸우는 용기, 종교를 향한 열망과도 같은 오지의 매력. 최저 영하 89도의 혹한, 시속 100㎞의 강풍, 한 달간 계속되는 폭풍설 속에서 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과 눈 위를 달리는 설상차. 탐험가들의 피를 뜨겁게 하는 미지의 남극, 그것은 나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거친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 내 안에도 뜨거운 탐험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가?

남극은 이 지구상에서 기온이 가장 낮고 바람이 거센 대륙으로서 북극보다도 가혹한 기상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북극엔 에스키모라고 불리는 이누이트 족이 살아 왔지만, 남극엔 원주민이 살지 못했다. 단지 눈과 얼음과 맑은 눈을 가진 동물들이 그곳의 주인이었다. 사람들은 왜 남극은 남극대륙이라고 하지만 북극은 그냥 북극이라 칭할까? 북극은 사실 정확히 말하면 북극해이다. 남극과 북극, 둘 다 지구의 극지방이지만 남극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인 대륙인 반면 북극은 얼음으로 덮인 바다라는 점이 다르다.
현재 남극은 1,000여 명 정도의 서로 다른 국적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국경을 초월한 대륙이다. 자연 환경이 척박하기 때문에 이곳의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고 돕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다. 이곳엔 인종 차별도 국가 이기주의도 없다. 오로지 인간애와 자연보호라는 커다란 기치 안에 22개국의 과학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미지의 대륙, 남극.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연구 기지 세종기지. 2년간의 기나긴 자신과의 투쟁 끝에 난 유조선을 어렵게 얻어타고 세종기지에 도착해 민간인 통제구역인 남극 도전에 성공했다.

“어떻게 하면 남극에 갈 수 있을까?”
내가 알고 모든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남극 가는 방법을 아느냐고 물어봤지만 모두들 딱 잘라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꼭 가고 싶은 곳이야”라며 갈망하기도 했지만, 남극에 가겠다는 나의 계획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포기하라고 말해 주었다. ‘무언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건 그것을 알아간다는 의미구나…’
남극행을 결심하고 실행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고 깨달은 게 참 많았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소득은 있었다고 서로 위로를 했다. 하지만 그래도 허전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2000년 겨울 남극을 알고부터 모든 나의 여행계획은 남극을 향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남극이 우선이었고, 더구나 갈 수 없다는 미지의 땅임을 알고 더더욱 그리워 졌다.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세상엔 오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 나름대로 판단이 섰다. 그러면서 남극에 호기심이 더 생겼고, 남극을 방문하겠다는 허황한 계획을 세웠다. 처음엔 허황한 것이라 생각했다.
남극, 세종기지, 대원들. 남극조약에 따라 영유권 주장은 유보되어 있으나, 어쨌거나 남극의 우리 영토 세종기지. 이곳의 묘한 매력에 자꾸 끌렸다. 나의 계획에 사람들은 “거긴 갈 수 없어.” 딱 한마디였다. 하지만 생각은 달랐다. ‘사람이 사는 곳인데 갈 수 없는 곳이 있을까?’
1년 내내 만년설과 지구상의 90% 얼음이 존재하는 곳. 어릴 적 읽었던 아문젠과 스코트의 탐험 이야기. 머릿속엔 온통 남극 도전에 대한 계획으로 꽉 차 있었다. 세계여행 도전 중에 뭔가 또 도전할 것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들뜨고 흥분되었다.
세종기지에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1년에 한 번 월동대원들이 교체되는데 그 시기에 맞추어 비행기편을 얻어 타거나, 아니면 엄청난 돈을 주고 호화 유람선을 타고 맥스웰만 가까이 가서 세종기지에 알려서 방문 허락을 받거나, 또는 안산에 있는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본부에서 정식 절차를 받아 허가서류를 들고 남극까지 교통수단인 배나, 군용 비행기를 타는 방법, 남극 전문 항공사를 찾아서 약 3천만원 하는 비행기를 개인적으로 대여해서 들어가는 방법등이 있지만 어느 것도 현실적인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정보를 수집했다. 그래서 칠레의 조그마한 도시 푼타 아레나스에서 한달간 남극을 위한 정보 수집을 했고, 남극행을 위한 비행기가 있었지만 정치적 이유 때문에 실패했다. 그 뒤로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잊혀지지 않은 남극행을 위해 다시 극지연구본부와 남극 세종기지에 연락을 취했다. 어느것 하나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기대하지도 않았다. 3달간의 준비 끝에 남극에 가야하는 이유와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A4지 10장 분량 쓰고 한달을 기다렸다.
더 이상의 기다림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남극을 방문하려면 방한 장화를 준비하셔야 합니다” 집이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질렀다. 눈에 눈물이 다 고였다. 드디어 허락이 떨어졌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다. 남극의 문이 열렸다! 1년 6개월 만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남극이 그 모습을 허락해 준 것이었다.
남극 도전을 위한 2년간의 도전은 또 다른 성취감을 내게 안겨준 자신감이었다.

“떠나올 때의 정신과 육체의 피로는 말끔히 사라지고 오로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맴돌 만큼 강렬하고 집요한 극지방에 대한 매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두려움을 주는 황량한 극지방의 놀라운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쟝 밥티스트 샤르코
(프랑스의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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