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논단] 지금은 마음의 잎을 떨구어야 할 때
[천마논단] 지금은 마음의 잎을 떨구어야 할 때
  • 정은신 교수(교양학부)
  • 승인 2016.11.15 0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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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들이 노랗고 붉은 옷을 갈아입었다. 매일 지나는 교정의 나무들도 찬바람 불고 햇살이 노오랗게 비치는 계절이 오면 이렇게 호사스러운 색의 잔치를 벌인다. 어디 그것뿐인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는 어느새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부드럽게 밟힌다.

 추운 겨울이 그냥 오면 너무 삭막할까봐 자연은 이렇듯 마법을 부려놓았다.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에 의하면 나무는 햇빛이 부족한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제 살과 다름없는 잎들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겨울의 부족한 영양분으로 그 넓은 잎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힘에 부치기도 할 것이다. 사철 푸른 잎을 보여주는 상록수들은 평생을 고고하게 한결같은 잎으로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그 또한 추운 겨울 지나고 봄의 새 잎이 돋아나면 묵은 잎들을 떨어뜨려 생존한다고 하니, 자연의 생존법은 알면 알수록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방학이 지나고 새 학기를 맞이할 때마다 나는 버릇처럼 다짐했다. ‘이번 학기는 좀 가볍게 살리라.’ ‘꼭 해야 할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잘 분별하여 삶의 내실을 다지리라.’ 그러나 이렇게 학기의 한가운데에 서고 보니 이번 학기도 번잡스레 많은 일들을 벌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작곡가로서 작품에 욕심을 냈고 선생으로서 가르침에도 욕심을 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만큼 많은 일들을 계획했다. 가을은 예술의 계절이기도 한 탓에 공연장 방문도 많았다. 20대와 30대에는 열정과 욕심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불혹의 나이를 지나는 지금,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정말 내 인생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그것을 분별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시간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도 의미 없는 일로 인한 번뇌로 괴롭힐 수 있겠다고. 

 세상 어느 곳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한국에서의 삶은, 바쁜 것조차도 미덕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잎을 떨어뜨려야 할 때를 직감하는 것을 우리는 잃어버린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무는 그 잎을 떨구어 버림으로써 자신이 반드시 지켜내야만 하는 그의 뿌리와 줄기를 사수한다.

 나도 내 삶의 잎들을 떨구다보면 정말 지켜야 할 것들만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뿌리와 줄기만으로도 당당히, 차가운 땅을 지키며 아름답게 서 있고 싶다. 오늘도 나는 교정의 나무를 보며 마음을 다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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