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웃는 사람들
[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웃는 사람들
  • 김문주 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6.05.2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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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활력 넘치는 사람들 속에 장치되어 있다가
폭발물처럼 불시에 터진다
웃음은 무섭다
자신만만하고 거리낌없는
남자다운 웃음은 배워두면 좋지만
아무리 따라해도 쉽게 안 되는 것
열성인자를 물려받고 태어난 웃음은 어딘가 일그러져
영락없이 잡종인 게 들통난다
계층재생산,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얼굴에 그려져 있는 어색한 웃음은 보나마나
가난한 아버지와 불행한 어머니의 교배로 만들어진 것
자신의 표정을 능가하는 어떤 표정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웃다가 제풀에 지쳤을 때 문득 느껴지는 허기처럼
모두가 골고루 나눠 갖지 않는 웃음은 배가 고프다
못나고 부끄러운 아버지들을 뚝뚝 떼어
이 사람 저 사람의 낯짝에 공평하게 붙여주면 안될까
술만 먹으면 취해서 울던 뻐드렁니
가난한 아버지의 더러운 입냄새와 땀냄새와
꼭 어린애 같은 부끄러움을 코에 귀에 달아주면
누구나 행복할까
대책없이 거리에서 크게 웃는 사람들이 있다
어깨동무를 하고 넥타이를 매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웃음들이 있다
그런 웃음은 너무 폭력적이다, 함께 밥도 먹고 싶지 않다
계통이 훌륭한 웃음일수록,
말없이 고개숙이고 달그락달그락 숟가락질만 해야 하는
깨진 알전구의 저녁식사에 대한 이해가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참고 견디려 해도
웃음엔 민주주의가 없다

- 최금진, 「웃는 사람들」(『새들의 역사』, 2007) 전문

 ‘웃음이 무섭다니’, 이게 무슨 황당한 시비인가, 웃음은 좋은 것이 아니던가. “대책없이 거리에서 크게 웃는 사람들이 있다/어깨동무를 하고 넥타이를 매고/우르르 몰려다니는 웃음들이 있다/그런 웃음은 너무 폭력적이다, 함께 밥도 먹고 싶지 않다”, 그래요, 웃음도 충분히 폭력이 되고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나 역시 “어딘가 일그러”진 웃음을 웃고, 내 웃음에도 ‘허기’가 있고 ‘슬픔’이 있겠지만, 때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폭발물처럼 터지는” 웃음을 웃은 적은 없었는지, 이 시를 읽은 이후로 웃음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1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이 시는 흙수저 금수저 계급론이 터져 나오는 오늘의 우리 현실을 재삼 돌아보게 합니다. “말없이 고개숙이고 달그락달그락 숟가락질만 해야 하는/깨진 알전구의 저녁식사에 대한 이해”, 웃음의 표정에서 고통의 가족사를 떠올리는 저 화자의 내면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 때,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비로소 살만한 곳이 되겠지요. ‘고개 숙인 알전구의 저녁식사’ 앞에서, 저 일그러진 웃음의 표정 앞에서, 그리고 수많은 고통의 얼굴 앞에서, 우리 모두는 빚진 자들이고, 도저히 이방인(異邦人)일 수 없는 자들입니다. 웃음의 표정에서 다시 공존(共存)의 윤리를 생각하는 5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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