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인문학]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면
[스무 살의 인문학]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면
  • 지민선 기자
  • 승인 2016.05.0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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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천마아트센터 챔버홀에서 박경철 외과 의사의 특강이 진행됐다. 사진. 이경희 기자

 지난 3일 ‘스무 살의 인문학’ 수업에서 박경철 외과 의사의 특강이 진행됐다. 본 직업은 외과 의사지만 경제평론가를 겸직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편과 2편, 『시골 의사의 부자 경제학』 등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면

 완전한 행복=관광객들에게 프랑스 퐁텐블로는 조금 낯설 것이다. 프랑스를 우리나라에 빗대 생각하자면 바르세유는 경복궁이고 퐁텐블로는 덕수궁 같은 느낌이다. 그리 유명하진 않은 곳이지만 유럽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고 아주 아름다운 숲이 있는 작은 도시이다. 아담한 성과 숲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그곳을 주 거주지로 삼았다. 나폴레옹은 오랜 시절 퐁텐블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생활과 삶이 거기에 있다. 사랑하는 여자 조세핀과 살아가며 아이까지 출생한 곳이다. 그 시절 나폴레옹의 일기를 보면 퐁텐블로에서의 나폴레옹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욕망들이 완전한 포화상태에 이를 만큼 모든 것을 가진 시기이다. 30대 초반에 완벽한 부, 권력, 명예, 사랑까지 완전하게 누렸다. 이런 상황이면 대개 사람들은 이 순간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이 모든 것을 버리고 3년 만에 자진해서 러시아로 떠난다.

 그리고 러시아를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그때 당시 프랑스 군대가 정규군 40만 명에 죄수, 건달들까지 합해 대략 50만 명의 군대를 이끌었다. 곧 지친 사람들은 이탈을 시도했다. 이에 나폴레옹은 엄청난 암살 걱정에 시달렸다. 우리는 익히 나폴레옹을 잠이 거의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나폴레옹이 잠이 없어서가 아니라 언제 암살당할지 무서워서 깊게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진군했지만 결국 실패해 나폴레옹은 파멸에 이른다. 그 전쟁의 여파로 나폴레옹은 섬으로 유배돼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얘기를 듣는 내내 들었던 의문은 ‘한 인간의 관점에서 나폴레옹은 왜 이 길을 갔을까?’,  ‘자신이 가졌던 가장 완전한 행복을 버리면서까지 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이 일주일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제부터 내가 어렵게 찾아낸 답을 소개하겠다.

 그리스로마 신화=발칸반도 아래쪽에는 그리스라는 나라가 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 하면 두 가지를 떠올릴 것이다. 신화와 경제위기. 그 중 신화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겠다. 전 세계의 어린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자랐을 것이다. 한 나라의 신화를 전 세계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은 이 나라가 어떤 문화와 문명을 가졌기 때문일까? 그리스 신화가 출발한 3,000년 전의 그리스는 거친 야만의 땅이었다. 또한, 저주받은 땅이었다. 그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바위에도 뿌리를 내리는 올리브 나무를 키워 올리브 열매에서 짠 오일로 기름을 섭취하고, 잡초를 뜯어 먹고 사는 염소를 키워 염소젖을 짜 치즈를 만들어 단백질을 섭취했다. 탄수화물을 섭취할 방법이 없어 노략질과 해적질로 탄수화물을 얻었다. 현재 우리는 노략질을 하는 왜구 떼의 신화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리스 신화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눠지는데 1부는 일리야드로 트로이 전쟁내용이고, 2부는 오딧세이로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끝낸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내용이다. 그중 2부를 알아보겠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신은 오디세우스에게 “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다음에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은 어떤 것인가? 신이 오디세우스에게 “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면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왕녀와 결혼해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일반적인 이야기의 전개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오디세우스는 신을 거스르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 결과 10년 동안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글이 쓰인 고대의 정치를 키워드로 말하자면 운명론이다. 운명론은 운명에 순응하고 복종하고 따르며 사는 것이다. 고대적 사고의 관점으로 놓고 보면 신이 오디세우스에게 집에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오디세우스의 운명이 된다. 그것을 오디세우스는 받아들여야 하는데 지극히 평범한 이유,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늙은 아버지가 있어 고향으로 가야 한다”며 신을 거스르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운명을 거스르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인류역사상 최초의 이야기이다. 오늘날에도 신에게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인데 3,000년 전에 이런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던 그리스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시초=그리스 야만족에 대해 설명하자면 야만족이 페르시아(현 터키)에 난파하게 된다. 당시 페르시아는 대제국으로 이뤄져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류가 건설한 제국 중 가장 강력한 제국이라 생각한다. 이 페르시아 사람들이 그리스 야만족을 보니 괴상하게 생겼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서양인 같기도 하고 동양인 같기도 해서 페르시아 왕에게 보고했더니 왕이 야만족을 데리고 오라 했다. 야만족을 마치 코끼리 데려가듯이 페르시아 왕께 데려갔다. 그때 당시 법에 따르면 궁전 입구에서부터 무릎을 꿇고 왕에게 나아가야 한다. 이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왕을 시해하기 위해선 단검을 휘둘러 공격해야 하는데 무릎을 뗀다는 것은 왕을 시해할 의도가 있다고 해석을 해 무릎을 떼는 순간 지위를 막론하고 목을 친다. 두 번째는 왕은 기본적으로 신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공경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다. 이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제왕적 사고이다.

 고대 왕은 신의 아들이거나 그 자체가 신의 사람이다. 그런데 그리스 야만족은 무릎을 꿇지 않고 “사람은 사람에게 무릎 꿇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때 왕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왕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을 맛보곤 어이가 없어 말문을 잃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죽인다. 왕이 얼마나 놀랐고 마음이 상했을까. 이렇게 사상 차이가 나게 된 이유는 그리스는 인간과 신을 동등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인간과 신의 차이점은 단지 ‘전지전능’과 ‘불로불사’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신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는데 어떻게 사람한테 무릎을 꿇겠는가. 제왕적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당연했다.

 이에 사신들을 불러 그리스 사람들에게 “그리스의 모든 것은 왕의 소유이고 단지 너네는 빌려 쓰는 입장이니 일정 제물을 바치라 전하라” 명령했다. 그러자 그리스 사람들은 사신들을 죽이고 딱 한 명을 살린 후에 ‘모론라베(네가 와서 가져가라)’고 말했다. 화가 난 페르시아 왕은 백만 대군을 앞세워 그리스 종족말살을 하기 위해 떠난다. 당황한 그리스인들은 전쟁 직전에 ‘지금이라도 잘못을 빌자’와 ‘그냥 싸우고 죽자’, 이 둘로 내분이 일어났다. 그리스 왕은 “왕이 결정하는 대소사는 전체가 모여서 할 수 없는 결정들을 내리기 위해 위임받은 권력이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의 운명이 걸린 일이니 모두가 함께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해서 한 명이 한 개의 투표권을 가져 투표를 진행했다. 싸우자는 의견이 우세해 전쟁을 선포했고 이는 페르시아 전투이다. 뜻밖에도 이 전투에서 그리스가 이기게 된다. 이 강연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가 이긴 것이 아니라, 그리스인들로 인해 그 당시 인류역사상 최초의 민주주의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본성의 선과 악=이후 로마제국이 등장했다. 이를 중세라고 부른다. 고대의 지배적 키워드가 ‘운명’이면 중세는 ‘기독교’라 할 수 있다. 난 크리스찬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좀 불편한 종교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세상의 모든 종교는 반드시 ‘해야 한다’를 모토로 시작하지만, 기독교는 ‘하지 마라’를 중점으로 둔다. 학교와 학원, 국가 등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사회적 교육은 ‘하지 마라’를 가르쳐야 하지만 부모는 ‘하지 마라’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 말라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너는 내가 말리지 않으면 늘 나쁜 짓을 하고 결국은 망가질 것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과 다름없다. 기독교는 인간이 더러운 본성을 가지고 있어 그 본성을 버리고 순결해야지만 하나님의 옆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단테의 신곡을 보면 르네상스가 어떤 상황에서 왔는지를 나타내는 구절이 있다. 단테가 지옥에 가서 오디세우스를 만나는 장면이다. 원래 중세 때는 오디세우스가 신에 도전한 존재라고 해서 아예 금지된 인물이다. 하지만 지옥구경을 가 지옥에서 벌 받고 있는 오디세우스라 표현해 별문제는 없었다. 우선 르네상스를 말해주는 구절은 “해님의 뒤를 쫓아서 사람 없는 세계를 찾아가려는 마음을 거역하진 말아다오. 그대들의 타고난 본성들을 가늠하시오”이다.

 이와 함께 영화 ‘크라잉 게임’을 보면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강가를 건너고 싶은 전갈이 개구리에게 태워달라고 부탁한다. 평소 전갈은 개구리를 보면 독침을 쏴 개구리는 전갈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전갈은 “독침을 쏘면 나까지 죽는데 내가 독침을 쏘겠는가”라고 말한다. 이에 개구리는 설득당해 전갈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게 된다. 반을 건널 때쯤 전갈은 개구리의 등에 독침을 쏘게 된다. 개구리는 죽어가며 “왜 나를 죽였냐”고 묻는다. 이에 같이 죽어가던 전갈이 한마디 한다. “It's my nature(이게 나의 본성이다)” 이 전갈의 입장에서 보면 개구리에게 독침을 안 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게 인간이 가진 약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성이 인간에게 악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옳지 않다. 본성이라는 이름만으로 그 본성을 억누르고 살아갔다. 오디세우스는 말한다. 인간이 가장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이냐고.

 “to strive, to seek, to find, and not to yield(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고 결코 굴하지 않으리니)” 생애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호의를 갖고 심지어는 익숙한 것을 대할 때조차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면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삶아갈 것이다. 나폴레옹은 아직 꿈꾸는 모든 것을 이루지 못했는데 실패자인 나폴레옹을 왜 기억하는가? 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치열하게 살며 자기가 꿈꾸는 그 이상을 향해 달려갔고 그 이름이 기억됐기 때문이다.

기자와 연사의 만남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직업을 선택한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른데 본인이 하고 싶고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진로 안에서 생존을 고민하는 것은 내 달란트가 아니다. 나는 내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본능을 찾아 직업을 찾았다. 결국 의사와 경제평론가라는 두 가지 직업을 가졌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기쁘다. 강연에서 말했듯이 'to strive' 즉, 나의 욕망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것이다. 오히려 일이 없다는 것을 두려워해야지 일이 많은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내가 기억되거나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포털 사이트에 내 이름이 올라오는 것을 질색한다.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다만 나를 알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학생들도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가 원하는 것에 치중하지 않았으면 한다. 온전하게 본인의 달란트에 집중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재능을 살렸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내 가치와 이상이니까 그것에 집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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