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살롱 ③현대음악에 대하여Ⅰ
음악살롱 ③현대음악에 대하여Ⅰ
  • 편집국
  • 승인 2007.05.0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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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에 대해 어렵다 혹은 지루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정작 그 안 에 숨겨진, 때로는 자연과학을 뛰어넘는 섬세한 구조의 논리를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깊은 내면에는 근접하지 못한 채 수박겉핥기로 작품의 표면만 바라보면서 쉽게 판단하곤 한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무한한 희열을 느낀다. 이러한 과정은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교감’이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것은 때로 제 삼자가 이해할 수 없는 바로 그들만의 비밀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면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는 자 만이 현대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가?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다. 아름다움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클래식음악 애호가, 더 나아가 전문가 사이에서도 현대음악을 거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쉽게 말해, 모차르트의 감미로운 선율은 좋아하지만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 나오는 원시적인 리듬과 폭발적인 음향은 싫어한다는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작곡가들 역시 자기만의 독창성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을 거듭해왔다. 그 중 색은 화가들뿐만 아니라 작곡가들에게도 자기만의 독창성을 부여할 수 있는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였다. 따라서 음악의 역사는 음색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시라도 머물러 버리면 마치 다른 이들에게 추월이라도 당하듯, 작가는 평생을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인 고난의 길을 걷는다. 자기만의 색을 찾기 위해. 그러나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항상 바로 그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물론 거기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하라”는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대규모의 작품으로 광주사태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이 사건을 접하고서 피를 토해낸 작가의 뼈저린 고통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렇게 쓰여 진 곡은 유감스럽게도 평양에서 초연되었으며, 국내에는 아직 소개된 적이 없다.

 

 

 

 

임주섭(작곡과 교수)

▶1515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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