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자의 아트무비]향수; 사랑과 존재의 가치에 대한 절망
[하기자의 아트무비]향수; 사랑과 존재의 가치에 대한 절망
  • 하지은 기자
  • 승인 2016.03.14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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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향수 포스터

 향수를 갈망해 모두를 사랑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사랑할 수 없었던 가여운 소년의 이야기다. 그는 향을 쟁취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지만 깊은 외로움에 빠지게 된다. 향으로부터 사랑과 존재의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 <향수>에 대해 윤종욱 교수(독어독문학과)와 얘기해봤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향이 없었다. 때로는 ‘無’, 아무것도 없음이 안정감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의미한 것이 공포로 다가왔다. 왜 그에게는 무취가 공포였을까?
 그르누이에게 후각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중요한 감각이다. 고아로 자란 그의 환경은 척박하기는 하지만 다양한 냄새를 맡으면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확신할 수 없게 되면서, 그는 견딜 수 없는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르누이는 한 사람을 한 방울의 향취로 가두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아름다움을 가두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아름다움의 속성은 ‘순간’이라고 생각하기에 그의 노력이 헛돼 보이기도 한다.
 완벽한 향수에 집착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그루누이의 행동은 첫사랑을 복원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자두를 파는 소녀의 향기는 그를 매혹시켰으며, 이것은 그가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었다. 제어할 수 없는 욕망과 운명의 틀에 갇힌 인물인 그르누이의 입장에서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그가 처형장에서 13명의 처녀로 만든 향수를 모든 사람에게 맡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랑에 빠져, 한데 뒤섞여 사랑을 나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붉은 머리에 싱그러운 자두 향이 감돌던 그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정작 그는 왜 사랑할 수 없었을까?
 그르누이에게 사랑과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자두 소녀에 대한 사랑은 서투른 그의 손에 의해 죽음으로 끝이 난다. 13명의 여인을 살해해 향수를 만든 것도 소녀에 대한 사랑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르누이의 뛰어난 후각은 다른 모든 감각과 정서를 희생한 대가로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향수 하나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음에도, 왜 악취 나는 곳으로 돌아가 없어져 버린 것일까?
 그르누이는 향수를 이용해서 자신을 일시적으로 숭배하게 할 수는 있었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랑하게 할 수는 없었다. 외부에서 빌린 향은, 결국 그 효용성에서 분명한 한계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태어나 한 번도 진정한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는 그르누이는 향수의 황홀경이 최대치에 이른 시장 부랑인들에 의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원하던 사랑을 받게 된다. 이로써 영화 속 긴장감을 유지하는 주요 테마였던 사랑과 죽음의 대립관계가 해소된다. 이 점에서 영화의 내적 구조를 보았을 때 꽤 설득력 있는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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