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현실이 되길
상상이 현실이 되길
  • 강신애 기자
  • 승인 2016.02.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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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보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3월, 드디어 개강을 맞이한다. 이제 교내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고 과제에, 시험에 주어진 일들을 해결하느라 저마다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될 것이다. 새내기들은 대학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겠지. 문두에 언급한 대사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대사 중 하나다. 영화 내용을 잠깐 언급하자면, 주인공 월터가 잡지사에서 근무하던 중 잃어버린 사진을 찾기 위해 처음 뉴욕을 벗어나 아이슬란드, 네팔로 떠나게 되는 이야기다. 그는 늘 상상 속으로만 위대했고, 용감하게 스스로를 그려냈다. 하지만 처음 뉴욕을 벗어나 낯선 이를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월터는 적극적으로 용기 있게 도전하는 삶과 마주하게 된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진행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서 한 의원은 청년을 검색했을 때 검색어 1위가 ‘알바’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글자 수 세기’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내용이 발언의 핵심쟁점은 아니겠지만 내용을 듣고 우리들, 청년들이 안녕한가라고 묻고 싶어졌다. 지난해 청년(15~29세) 실업률이 1999년 통계 이후 최고치이자 전체 실업률 3.6%의 3배에 수치에 달한 지금, 우린 취업 지원서에 한정 된 글자 수에 맞춰 ‘주체적인 내’가 아닌 ‘지원자 어느 누구’의 내용을 담겠지.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얼만큼이나 ‘나’에게 집중할 수 있을까? ‘나’라고 함은 정체성을 의미할 수 있겠다. 눈앞에 주어진 것들이 있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나’ 보다는 정해진 규칙과 시선에 스스로를 맞추는데 익숙해져 버린 듯 하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기 위해, 일반적인 기준에 충족하기 위해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환경에서 살아왔다하더라도 그 정체성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현재 우리는 ‘나’를 잘 지키고 있는가에 대해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실 월터처럼 운명적인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올 한해는 필자를 비롯해 여러분들이 벽을 허물고 서로를,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나날이 이어지길 바란다. 월터처럼 당장 삶이 바뀌는 계기는 없더라도 일상 속에서 적어도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는 할 여유가 있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 윌터의 상상이 현실이 된 것처럼. 우리는 ‘청춘’이라고 불리지 않는가. 사전에서 청춘은,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라 정의한다. 인생의 봄철을 보내는 지금, 좀 더 꽃을 피울 순 없을까. 끝으로 필자는 당신의 청춘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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