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떻게 내게 왔던가?
오기는 왔던가?
마른 흙을 일으키는 빗방울처럼?
빗물 고인 웅덩이처럼?
젖은 날개처럼?
숲을 향해 너와 나란히 걸었던가?
꽃그늘에서 입을 맞추었던가?
우리의 열기로 숲은 좀더 붉어졌던가?
그때 너는 들었는가?
수 천 마리 벌들이 일제히 날개 터는 소리를?
그 황홀한 소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사랑은 소음이라고?
네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던가?
그 숲이 있기는 있었던가?
그런데 웅웅거리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지?
꽃들은, 너는, 어디에 있지?
나는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했는데?
나희덕, 「숲에 관한 기억」(『야생사과』, 2009) 전문
올해 가을은 최고의 가을이었지요. 서둘러 자리를 뜬 손님처럼 잠시 왔다 떠난 예년과 달리 상당한 기간을 우리 곁에 머물렀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첫눈이 내렸다는데, 곧 본격적인 추위가 당도하겠지요. 돌아보면 지난 봄과 여름, 가을이 한바탕 꿈같습니다. 우리가 보았던 그 순백의 목련과 흩날리던 벚꽃의 이파리들, 아, 노랗게 캠퍼스를 물들이던 황금 은행나무의 풍경들,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가 지나왔던 한 시절도 그 풍경들처럼 아득해지겠지요. 그래서 그 시절이 있기는 있었던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가슴을 뛰게 했던 사랑의 순간도, 우리를 사로잡던 정념들도, 나와 마주앉아 눈을 맞추던 당신마저도 시간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부재의 저편으로 사라지겠지요.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삶도 저 흑백필름처럼 탈색(脫色)될 날이 오겠지요. 생명들이 그 뿌리로 돌아가는 계절입니다. 우리 곁에 도착한 이 흑백의 계절은, 생명이, 삶이 무엇인지를 재삼 생각하게 합니다. 숲을 수런거리게 한 그것들이 모두 어디로 갔느냐는 저 부재의 물음들이야말로 우리가 지나고 있는 숲을, 우리의 청춘을, 우리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겠지요. 종강호와 함께 <따뜻한 시 읽기>도 저편의 세계로 사라집니다. 봄의 숲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흑백의 시절 내내, 모두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