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국(海菊)같은 아이들
해국(海菊)같은 아이들
  • 김영수 교수(정치외교학과, 영대신문 주간교수)
  • 승인 2015.11.30 1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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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국은 바다 국화이다. 지난 호 영대신문에 박선주 교수님(생명과학과)의 해국 예찬이 실렸다. 해국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자라는 아주 희귀한 식물이다. 주로 바닷가의 거센 바람과 염분, 그리고 건조에 강하여 척박한 바위틈에서도 잘 자라며, 특히 햇빛을 아주 좋아한다. 우리 영남대학교에도 해국 같은 아이들이 있다. 신문방송사 기자들이 그들이다. 이들도 아주 희귀종이다. 스펙에 목숨 거는 요즘 같은 세상에 학점은 엉망이다. 기사 쓰느라 밤을 새기 일쑤이니, 학점이 좋을 리 없다. 공대 다니는 상준이는 견디다 못해 가을학기에 휴학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거센 바람과 척박한 바위틈에서도 잘 자란다. 밤을 새우고도 늘 씩씩하고 밝다.

 해국은 국내의 쑥부쟁이 종류 중 꽃이 가장 크다. 피는 기간도 길어 관상가치가 매우 높다. 꽃이 한창일 때는 은빛 바다 물결과 높고 푸른 가을하늘과 잘 어울려 아름다운 바다 경관을 만들어낸다. 기자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대학이 아름답다.

 해국은 가을꽃 중 가장 늦게 까지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여름부터 꽃을 하나 둘씩 피우기 시작하여 가을을 마무리하는 11월까지 꽃을 피운다. 가끔 12월에도 볼 수 있다. 겨울에도 잎은 시들지 않고 푸르다. 독도 바위틈에 잘 적응하여, 독도에는 해국이 많다. 독도 해국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기자 아이들은 쉽게 꽃을 피우지 못할 것이다. 세상을 거꾸로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이 아이들은 한 번 꽃을 피우면 가장 늦게까지 필 것이다. 삭풍한설이 불어도 항상 푸를 것이다.

 바닷가 짭쪼름한 바람에 쏘이고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여름에 화려하게 보라색 꽃을 피우는 해국, 먼 바다를 바라보며 한없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우리의 눈을 붙잡는 해국, 해국이야말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족의 끈기이고 정서이며, 향기이다. 정우는 지난 1년간 영대신문을 많이 걱정했다. 학생들이 영대신문을 점점 읽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학년 새내기 기자는 인터뷰를 외면하는 학생들에게 상처받았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1년간 영대신문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민주는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게 보인다. 지난주에는 “당신은 얼마나 당신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나요?”란 글을 썼다. 그 글은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여주인공 “초라한 외모에 내세울 것 없는 스펙, 자신감이 없어 첫사랑 앞에 나서지 못했던 혜진”에 관한 이야기이다. 스스로를 인생의 주연이 아닌 조연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스포트라이트를 꺼버리지 않는다면 기적 같은 일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혜진의 말이 민주의 가슴에 꽂혔다.

 나는 이 아이들이 우리 대학에 피어난 한없이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한다. 두 주 전 영대신문 교정을 마치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우리는 야식과 청량음료를 안주삼아 밤을 새웠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장미가 아니고 해국이라고 말했다. 큰 저택의 정원에 핀 멋지고, 화려한 꽃이 아니라 이름 모를 바닷가 바위틈에 핀 해국이라고. 박선주 교수님 글을 읽고 난 뒤라 그런 비유가 생각났을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이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해국은 종자 끝에 날개가 달려 있어 하늘을 날아가거나 바닷물을 통해 흘러가 멀리까지 자손을 퍼뜨린다. 해국 같은 아이들이 우리 대학에,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올해 젊은 한 시절을 보내며 정든 신문방송사를 떠나는 아이들 이름은 이렇다. 천정우, 박상준, 조민주, 이유정, 김원영, 박정은, 임도엽, 조은주, 최우경, 김문무, 이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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