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밑줄
[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밑줄
  • 김문주 교수(국어국문)
  • 승인 2015.09.14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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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한 여자가 합석을 했습니다
주문을 하고 눈 둘 곳 없어 신문을 가져다 들추었습니다

시킨 밥이 나란히 각자 앞에 놓이고
종업원은 동행인 줄 알았는지 반찬을
한 벌만 가져다 주었습니다

벌 한 마리 안으로 들어오려는 건지
도리가 없는 건지 창문 망에 자꾸 부딪혔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도 그릇에 불안을 비비는 소리를 냈을까요
새로 들여놓은 가구처럼 서름서름 마음을 설쳤을까요

배를 채우는 일은
뜻밖의 밑줄들을 지우는 일이겠습니다만

식사를 마칠 때까지
여자도 나도 반찬 그릇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병률 「밑줄」전문
(『찬란』, 2010) 전문

 당신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겠지요. 사람들이 붐비는 역전 식당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풍경입니다. 모르는 두 사람이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는 이 시의 풍경에서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창문 망에” 부딪혀 ‘잉잉거리는’ 가냘픈 두 마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는 불안과 불편, 긴장과 외로움 등 여러 마음들이 소리 없이 수런거리고 있습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반찬 그릇에 손을 대지 않은 저 마음들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쓸쓸하지요. 상대를 헤아리는 조심스러움과 그 긴장을 견디며 한술 한술 배를 채우는 불편한 고독이 여기에는 함께 있습니다. 사람살이란 배를 채우는 일처럼 “뜻밖의 밑줄들을 지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로 인해 “뜻밖의 밑줄”이 생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밑줄을 지우고 밑줄이 생기는 게, 삶이겠지요.

 안으로 안으로 들어앉게 되는 계절입니다. 나와 마주 앉은 상대의 눈치를 살필 줄 알아야 좋은 사람이겠지요. 그렇다고 반찬 그릇에 손도 대지 않는 것은 좀 아쉬운 일입니다. 반찬 그릇을 슬쩍 앞으로 밀어놓는 건, 어떨까요. 체온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당신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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