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고함] 무책임의 시대
[청춘고함] 무책임의 시대
  • 예진영(국어국문3)
  • 승인 2015.09.14 1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6일 저녁 대구스타디움 보조경기장에서는 미국에서 온 세계적인 밴드의 내한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예전에도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과 부산에서 공연을 진행한 적이 있지만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올해는 서울보다 하루 빨리, 평일이 아닌 일요일에 진행한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5분 만에 마감되었다. 이후 8월에 추가로 좌석을 준비해 판매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일요일 저녁을 즐겁게 보낼 기대를 가지고 공연장을 찾아온 팬들에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한 멤버의 건강 문제를 이유로 당일 공연을 진행할 수 없고 다음 주 목요일로 연기한다는 공지가 공연 시작 두 시간 전에서야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스타디움 앞은 입장만을 기다리던 관객들의 항의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후 다음 날 예정된 서울 공연은 정상적으로 진행한다는 언론 보도가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예매처에서는 환불을 원할 경우 수수료 없이 전액 환불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다음에야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부 관객들은 교통비와 숙박비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고 ‘갑(甲)질’이 아니냐며 스마트폰 음악 재생 목록에서 해당 밴드의 곡들을 전부 삭제하겠다는 격한 반응도 나왔다.

 지난 8월에는 한 방송사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강원도 평창에서 가요제 행사를 개최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관중이 모두 떠난 뒤 살펴보니 현장 주변은 관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었다. 무책임하게 쓰레기를 버린 것은 관객들이지만, 치우는 것은 결국 제작진이 감수해야 할 몫이 되어 직접 용역 업체를 고용해 며칠 동안 치운 다음에야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무책임·무대책’의 문제는 캠퍼스 밖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학기 중반이 지나갈 쯤이면 수강생이 수십 명에 불과한 강의실에서 ‘조별과제’라는 이름과 함께 등장한다. 모두 열심히 준비했는데 준비해오지 않은 조원이 나타난다거나, 내용을 살펴보니 너무할 정도로 성의가 없다거나, 아예 연락조차 끊고 잠적하는 웃지 못할 일이 종종 등장한다. 몇 년 전 우리 학교에서 발생한 ‘학생회 회식비 1천만 원’ 사건은 감사 이후 당사자가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반환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오랫동안 표류하고 있다. 이 결과, 전체 학생회비에 대한 신뢰도까지 의심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

 되돌아보면 국가적으로 큰 슬픔을 안겨다 준 사건도 ‘무책임’과 연결되어 있었다. 배가 가라앉는데도 승객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일부 승무원에 분노하고, 경주의 리조트 건물 붕괴와 판교에서 일어난 환풍구 추락 사건 때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걸 지켜본 게 불과 지난 해 일이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실천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준비를 하는 데서 나온다”고 말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연대 의식’과 자신이 부여받은 과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캠페인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 전체적인 제도 변혁이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