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인문학
쓸쓸한 인문학
  • 장보민 기자, 문희영 기자., 주은성 기자
  • 승인 2015.04.0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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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이란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을 말한다. 대표적으로는 문사철(文史哲)이라고 불리는 문학, 역사, 철학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은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며 세상을 둘러보기보다는 맹목적으로 취업만을 보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인문학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여전한 대학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 관련 학과, 대학 구조조정의 타깃이 되다
 

 사회 일각에서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언급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 대학에서 인문학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인문학 위기론이 확산됨으로써 관련 환경이 변화되고 개선됐을 것으로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인문학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취업시장의 상황에 맞춰 취업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유용한 학문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대학과 정부는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고자 학문을 취업과 연계시키기 시작했고, 대학에서 인문학은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밖에서는 일명 스타강사들에 의해 인문학 강의가 유행하고, 인문학 서적들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대학에서 인문학,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인문계 졸업생의 90%가 논다’는 뜻의 ‘인구론’, ‘지방대학 인문계 여자는 취업 불가’라는 뜻의 ‘지여인’,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들이 SNS를 통해 학생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이는 인문계열 학생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14 취업통계연보’에 따르면 인문계열 학생 취업률은 45.9%로 공학계열 학생 취업률 66.9%, 의약계열 학생 취업률 72.8%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였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기업 경영에 있어서 인문학적 소양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인문계열 대학생을 외면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대학 정원을 어떤 방법으로든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타 학과에 비해 비교적 취업률이 낮은 인문계열의 학과는 대학 구조조정에서 통폐합 대상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이에 노중기 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한신대 사회학과)은 “당장 우리 사회에서 눈앞의 이익을 위해 인문학을 문 닫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지식 중심의 가치생산을 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생기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제공한 ‘2014~ 2015학년도 대학별 모집단위별 입학정원 증감 현황’에 따르면 대학이 감축한 정원의 56.5%가 인문계열 학과이다. 뒤를 이어 예체능계열 17.3%, 공학계열이 17.0%, 의학계열이 5.9%, 사범계열이 3.3% 순이었다. 이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취업률이 비교적 낮은 기초학문인 인문학을 줄이는 방법으로 문제에 대응하고 있음을 뜻한다. 노중기 부위원장은 “정부나 각 학교들이 취하고 있는 방향이 인문학을 살리면서 취업 문제를 풀어나가기보다는, 시장수요에 맞춰 인문학을 죽여버리는 방법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인문학의 토대가 돼야 할 대학 내 인문학 관련 학과가 대학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대학 진학 시 많은 학생들이 인문계열 학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인문계열 학과에 진학한 다수의 학생들 역시 전과나 복수전공을 희망하고 있다. 전과, 복수전공 희망자가 워낙 많다 보니 대학에서는 상경계열과 같이 비교적 취업이 잘 되는 학과의 수업을 인문계열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문학에 대한 교육부의 자세=지난 16일 교육부는 ‘2015 인문학 대중화 사업’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이번 사업에 지난해보다 11.7%가 늘어난 총 67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이 사업은 문화융성의 근간이 인문학인 만큼 인문학적 소양은 중요한 자산이므로 우리 국민이 인문학을 쉽게 접하고 인문학적 자양분을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행됐다.

 하지만 이런 교육부의 인문학 사업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인문학에 대한 교육부의 태도가 이중적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대학은 학문이 우선이 아니라 취업이 우선”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현재 교육부는 ‘산업수요중심 정원조정선도대학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사업 내용에 따르면 대학 전체 정원에서 약 10%의 인원을 비이공계열 학과에서 이공계열 학과로 전환 시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의 약 3배에 달하는 금액인 21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정책에 대해 인문학 죽이기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기에, 교육부가 이번에 내놓은 ‘인문학 대중화 사업’이 ‘비난을 회피하고자 하는 여론 호도용으로 진행하는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노중기 부위원장은 ‘산업수요중심 정원조정선도대학 사업’에 대해 “엄청난 예산을 투자해서 특정방향으로 학문을 몰아가겠다는 것인데, 대학의 학문을 취업에 종속시키는 일을 교육부가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고 했다. 이어 이번 ‘2015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 대해 “인문학 죽이기라는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앞에서는 마치 인문학을 육성하려는 것처럼 정책을 진행하면서, 실제로는 인문학 죽이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학 내 인문학 부활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대학 내에서는 인문학 기피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명 스타강사들의 인문학 강의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수강생 역시 줄을 서고 있다. 인문학 서적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노중기 부위원장은 “각자 먹고 살기가 바쁘다 보니 적절하게 치유하지 못하고 외면하고 넘어가는 문제들이 있는데,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문학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어 그는 “대학의 인문학이 굉장히 피폐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에서 인문학 열풍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물려있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인문학의 근본이 되는 대학 내 인문학이 계속해서 쇠락의 길을 걷는다면, 사회의 인문학 열풍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 내 인문학의 부활을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에 관해 신득렬 파이데이아 아카데미 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인문학을 당장 눈앞의 취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삶에 도움을 주는 학문으로 보고 있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취직이 되는 것만을 바라기 보다는 인생을 길게 보고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은 약 800년의 역사를 가진 교육기관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학문을 너무 조급하게 취업과 연결시키지 말고 대학의 본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남대학교 인문학의 현주소는?
 

 올해 우리 대학교의 교양교과목은 전체 235개로 구성돼 있다. 그 중 인문학 관련 강좌는 83개로 약 35%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올해는 ‘신짜오 베트남’, ‘재미있는 스토리로 배우는 영어독해’, ‘스무살의 인문학 :청춘에게 길을 묻다’ 등의 교양강좌가 추가 개설됐다. 최동주 교양학부장은 “우리 대학교도 교육부의 인문학 진흥 방안에 부응하기 위해 인문학 중심의 융·복합 교과목 개발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또한 10여 년 전부터 인문학 육성 기금을 마련하여 관련 연구소 및 인문학 분야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또 문과대 주관으로 지난해 ‘YU 인문학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교육부의 ‘인문정신문화 진흥을 위한 7대 중심과제’의 방향으로 교육과정의 개선을 앞두고 있다. 최 학부장은 “인문학은 인간과 밀접하므로 전공 영역에 상관없이 누구나 갖춰야 할 소양이다”며 “‘전공이 다르다’, ‘다른 길을 갈 것이다’와 같은 생각을 갖지 말고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법학과 예술학의 만남, 박홍규 교수=박홍규 교수(교양학부)는 현재 ‘법과 예술’, ‘예술의 사회화’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박 교수는 “학생들이 예술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인문 정신을 갖춘 교양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강좌들의 목표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진행하는 과목들은 대부분 영화·소설·음악·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로, 기본적인 배경 지식을 요구한다. 그러나 대부분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예로 드는 예술 작품을 알지 못한다. 초·중·고 시절부터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인문학 수업은 토론과 대화로 이뤄져야 하는데 학생들이 배경지식이 없으니 일방적인 수업이 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박 교수는 계속해서 인문학 강좌를 진행할 예정이다. 인문학이 세상에 대한 지혜를 길러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만큼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인문학적 소양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관심과 인문학을 접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하다”며 학생들에게 인문학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요구했다.

인문학은 ‘세상과 대화하는 연습’=최재목 교수(철학과)는 인문학을 “세상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또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인문학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갖고 남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우리 대학교에서 ‘스무살의 인문학’, ‘인간관계의 철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강좌 개설 이유에 대해 “인문학을 통해 세상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강좌를 개설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무살의 인문학’ 강연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이 길러지는 학생을 보면 강의를 진행함에 있어서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리 출석을 하는 학생을 보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고 세상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내디딘 걸음에 책임감이 없는 듯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최 교수는 “인문학자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문학 강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우리 대학교 학생들에게 “시는 순수한 사유의 기회를 많이 갖게 해 준다”며 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삶의 멘토를 시에서 찾아낼 수 있으면 어려운 책도 무난히 읽으며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색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스마트폰은 사색을 도와 검색하는 도구이지 사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검색과 사색을 혼동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인문학 입문
 

 우리 대학교에는 어떤 인문학 강좌들이 있을까? 학부교육선도대학육성사업(ACE)의 세부사업으로 진행된 ‘2014 학습자 요구 및 의견조사 설문분석 결과보고서’에 따른 후배에게 추천하고 싶은 교양교과목 중 인문학 강좌를 찾아봤다. 

 ①사랑학개론(후배에게 추천하고 싶은 교양교과목 1위)-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인과의 사랑뿐만 아니라 자기애, 동성간의 사랑, 결혼의 이해와 사랑의 발달에 대한 이론 등을 배운다. 사랑의 근본적인 소명과 우리의 사랑이 많은 것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②명저읽기와 글쓰기(5위)- 2010년부터 필수교양수업으로 개설된 명저읽기와 글쓰기 과목에는 사회계열 명저읽기와 글쓰기, 이공계열 명저읽기와 글쓰기, 인문계열 명저읽기와 글쓰기 등이 있으며, 책을 읽은 후 책 내용에 관한 토론식 수업이 이뤄진다.

 ③심리학의 이해(8위)- ‘심리학의 이해’는 심리학 개론 수업으로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접근하는 방법을 배운다. 심리학의 주제는 뇌와 마음, 지각, 인지, 발달, 학습, 기억, 성격, 정신이상 등으로 그 범위가 매우 넓다. 심리학을 잘 이해하는 것은 스스로의 태도와 반응에 대해서 통찰력을 갖게 할 것이다.

 ④결혼과 가족(9위)- 결혼을 통해 가족을 형성코자 하는 청년시기에 결혼과 가족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개인 삶의 여정에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수업이다. 성문화와 성행동, 사랑의 정의와 특성, 결혼문화와 부부관계 등 다양한 것들을 배운다. 결혼과 가족생활 전반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배우고 그로써 현대사회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적절히 대처 할 수 있는 능력과 가족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태도 및 기술 함양을 목표로 한다.

 ⑤문학과 영화(10위)-영화의 특징과 기법, 변천과정 등을 배운다. 수업을 통해 영화의 문학적 읽기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다. 영화의 문학적 읽기를 시도하여 현대사회를 이해하도록 해 인문학적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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