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이야기] 乙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나
[이유있는 이야기] 乙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나
  • 여현정 대학부장
  • 승인 2014.12.04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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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샤’. 두 음절이 이렇게 통쾌할 줄 몰랐다. 

 묵은 체증이 내려 가는듯한 한마디는 영화배우 김부선 씨가 SNS에 올린 글이다. 지난달 28일 경찰 출두에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값비싼 빽’을 들었다며 꼬집었던 언론에 대한 일침이기도 했다. 김부선 씨가 사회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비단 이 한마디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암암리에 이어져 온 옥수동 H 아파트 난방비 비리를 꼬집었다. 이어 언론에 이를 밝힘으로써 공론화를 꾀했고,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중앙난방식 아파트의 난방비 비리를 온 국민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이 사건에 국민이 동요하는 것은 지금까지 잘 볼 수 없었던 ‘갑(甲)질’에 대한 을의 통쾌한 한 방이기 때문이다. 갑과 을의 관계, 흑백논리로 양분화된 개념은 우리 사회 깊숙이 만연해 있다. 하지만 갑에 대해 을은 권리를 주장하거나 이에 대응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본래 갑과 을은 계약관계를 뜻했으나, 어느새 사회적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용어가 돼버렸다. 

 지난해 4월 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라면을 끓여 오라 했다가 맛이 없다며 잡지로 승무원을 친 ‘라면 상무’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남양유업의 직원이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게 물건을 강매하며 폭언과 욕설을 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고약한 갑의 횡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올해 9월, 대리점에 강제로 물량을 할당하고 서류조작까지 하면서 손실을 떠안긴 농심의 행태로 이러한 관행이 악순환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갑의 횡포가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여전히 갑과 을의 문제가 빚어지고 있다. 권력을 가진 갑 앞에서 을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다. 선거 전에는 마치 모든 것을 해줄 마냥 말하더니, 당선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갑으로 돌아서 버리는 국회의원들만 보아도 그렇다. 국민이 우선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호랑이와 토끼」이야기를 아는가? 호랑이에게 잡힌 토끼는 돌을 불에 달궈 떡이라 말하고 꿀을 얻어오겠다며 도망간다. 토끼를 기다리다 지친 호랑이는 결국 불에 달궈진 돌을 집어 먹다 혼이 난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아먹으려 했지만, 토끼는 여러 가지 꾀를 써서 위기를 모면하고 오히려 호랑이를 골탕먹인다. 강자가 약자에게 꼴좋게 당하는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바보 같은 호랑이와 꾀 많은 토끼만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을 관계는 우리나라의 학벌주의나 학연주의와 함께 사회 악습으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강자와 약자의 상하 관계는 우리나라의 ‘줄 세우기 문화’, ‘서열 주의’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하며, 혹자는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이러한 먹이사슬 구조를 어떻게 우리는 끊어낼 수 있을까. 사회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갑을 관계는 항상, 그리고 언제나 전복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얼마 전 언론사의 대학 순위 매기기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대학을 시장으로 만들고 학생이 을이 되는 현 상황에서, 조금씩 을의 반란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먹이 사슬의 희생양이 아닌 동등한 관계에서 발전하는 ‘너’와 ‘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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