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삼각사각]大를 위한 小의 희생
[김기자의 삼각사각]大를 위한 小의 희생
  • 김예지 기자
  • 승인 2007.04.12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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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수의 입장에 속해 있을 때에는 다수결의 원칙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향토생활관’의 취재를 통해 스스로의 권리를 찾지 못하고 다수를 위해 피해를 보는 소수들을 보았고, 대를 위한 소의 희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번에 ‘향토생활관’에 대해 취재하게 된 동기는 기존 생활관에 향토생활관 학생들을 우선 배정한다는 소식을 듣고 ‘타지방 학생에게 너무 불리한 것이 아닐까’라는 기자 나름의 문제의식이었다. 그리고 취재를 다녀온 후 기자의 생각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였다.
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작은 지자체나, 경북지역이 아닌 지자체들은 학교에 재정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없고, 그러한 지역 출신의 학생들은 당연히 향토생활관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취재를 하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오신 새내기 학부모님을 만났다. 그 분께서는 학교에서 향토생활관 사업계획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신이 사는 지자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같다며, 학교 측에서 학생에게 생활관을 배정할 때 지역을 우선순위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내셨다. 우리 생활관의 우선적 배정 순위가 성적인 것도 문제지만, 향토생활관의 취지에 부합함에도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이 모든 것들 하나하나를 생각하자면 큰 사업의 진행은 더 더디고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수가 얻는 이익들이 소수가 당하는 피해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김예지 기자 yeesie@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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