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가 죽어간다!
시간강사가 죽어간다!
  •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분회장 김임미
  • 승인 2012.10.04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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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참으로 냉정하다. 폭염과 태풍에 매일 지쳐가던 때가 언제였나싶게 서늘한 기운으로 몸을 웅크리게 한다. 본관 앞에서 강사법 시행반대 1인 시위를 하다보면 저 멀리 아침 하늘사이로 뻗쳐 나오는 위엄있는 햇살 앞에 생뚱맞게 서있는 내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아랑곳하지 않는 햇살과 나무와 싸늘한 공기만큼 애써 나를 외면하고 옆문으로 돌아가는 교직원들을 보면 어제까지 함께 인사 나누고 덕담을 주고받던 동료라는 사실이 몹시 낯설다. 이것조차도 여지없는 자연의 섭리인가 숙연해진다.
대학에서 교수, 시간강사, 직원, 학생들은 함께 수업하고 밥 먹고 일을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불합리와 비상식이 대학 내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각자 나름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그런데 오는 201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일명 강사법이라는‘고등교육법 개정안’에 따라 대학 내에서 곧 의자놀이가 시작될 것이다. 아무런 재정 확보 없이 무늬만 교원 (이 때 교원은 교수와 같은 신분을 말한다)인 강사라는 의자를 둘러싸고 전국 각 대학의 약 8만 명의 시간강사들이 의자 주위를 빙글빙글 돌게 될 것이다. 이들 주위에는 몇몇 교직원, 시간강사 당사자, 학생들이 저들 중 누가 이 몇 개 되지 않는 의자를 차지할 것인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지켜볼 것이다. 대학에서 오랫 동안 연구하고 수업해온 시간강사들의 생계와 연구자로서의 희망을 제물로 삼는 이 죽음의 놀이는 법제화 과정을 거치면서 누가, 누굴 위해서, 왜 시행해야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관성에 따라 막무가내로 계속 돌게 될 것이다.
2013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개정 고등교육법상의 강사제도는 기존의 6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시간강사를 없애고, 교원(교수)의 범주에 들어가는 1년 계약의 강사를 선발하는 것이다. 지난 8월 31일 시행령이 입법예고 되었고  오는 10월 9일까지가 당사자들의 의견수렴 기간이다. 얼핏 보면 시간강사에게 교원지위를 준 개선안인 듯하지만, 이 강사법은 강사에게 교원지위를 부여했음에도 강사는 교육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 사립학교연금법 등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차별이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는 악법이다. 또한 시간강사의 평균 강의 시수가 주당 4-5시간인 상황에서 9시간 이상 강의하는 강사만 교원확보율에 포함되므로 특정 강사에게 강의 몰아주기를 조장해서 여기서 제외되는 여타 상당수 강사가 대학에서 수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하는 대량해고법이다. 이 법은 그 의도가 비정규직 교수의 처우 개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교수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정규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되면서, 그 나머지는 대량해고까지 발생시키는 최악의 대학 구조조정이 일어나게 되는 셈이다.  
우스꽝스럽게도, 처우개선의 대상자인 시간강사들 스스로가 극렬 반대하는 법을 교과부는 신분보장, 고용안정성 강화 운운하며 밀어붙이고 있고, 대학은 강사들의 배출 통로인 대학원이 고사하든, 학문 후속세대가 단절되든, 대량해고가 발생하든, 법으로 통과된 사항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대학은 비극적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돌파구 모색보다는 교과부의 발의로 통과된 법이니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의무감이 앞서있는 듯하다. 대학이 강사 채용을 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법적 제재도 없다는 교과부의 천명에도 불구하고 대학 본부는 시행령을 과잉 적용하여 이참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악법은 법이 아니라 폐기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강사법이 시행되면 강사 수에 맞춘 수업 개설로 기존 전임교원의 수업 부담이 증가할 것이고, 폐강과 수강 인원 확대로 인한 수업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 또한 한번 강사로 채용이 되면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정년까지 보장될 것이므로 이후 학문세대들은 원천적으로 강사자리를 박탈당하게 돼 있어 대학원생들의 학문연구의 거점이 사라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대학원이 고사할 것이다. 이렇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대학 교육의 근간을 흔들 강사제도 시행은 단지 시간강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구성원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누군가 옆에서 고통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본능적으로 눈길을 주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본능을 억제하고 침묵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이 강사법 문제에 당사자인 시간강사들은 물론 우리 대학 구성원 모두 관심을 가지고 해결책 모색을 위해 노력하는 일은 우리가 인간이기를, 이곳이 교육의 장임을 포기하지 않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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