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파는 사람들
감정을 파는 사람들
  • 성유진 준기자 ,김현진 준기자,임현정 준기자
  • 승인 2012.10.0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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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웃는 얼굴 뒤 숨겨진 그들의 고충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한 개그프로그램에‘정 여사’라는 코너가 있다. 코너 속에서 정 여사와 그녀의 딸은 가게에 찾아와 황당한 이유를 들며 매장 직원에게 상품 교환을 요구한다. 식수 매장의 경우라면 어제 구입한 생수를 들고 와‘물이 너무 맛이 없다’며 바꿔달라는 식이다. 직원이‘물은 원래 맛이 없다’고 항변해 보지만 이들은 막무가내다. 모녀의 끊임없는 요구에 직원은 계속‘죄송합니다’를 연발하지만 그들은 억지를 부린다. 그리고는 결국 물건을 교환 또는 환불해간다. 사람들은 이 코너를 보며 개그로 웃어넘기지만 이 장면은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결코 낯선 상황이 아니다.

◆감정노동은 무엇인가=‘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란 배우가 연기하듯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1983년 미국 UC버클리대 사회학 교수인 알리 러셀 혹쉴드(Hochschild)의 책 출판을 계기로 개념화됐다. 그는 직업상 원래 감정을 숨긴 채 다른 표정과 몸짓을 해야 하는 상황을 감정노동이라고 표현하며 이를 적절히 관리하지 않으면 종업원이 건강상의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 특히 손님을 응대하는 접객직에 있는 근로자들은 대부분 감정노동에 노출돼 있다.
◆계속해서 증가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012년 7월 기준으로 서비스·판매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557만 1천 명으로 이는 총 취업자 수의 약 22.4%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연도별로 8월 서비스업 종사자 수를 비교해 봤을 때 2010년 8월 당시 529만 1천 명, 2011년 8월 538만 명, 그리고 2012년 8월 현재 558만 7천 명으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이들의 근로조건이나 환경은 전혀 나아지고 있지 않다. 대표적인 감정노동 서비스 직종으로는 유통매장의 판매직, 민원업무, 콜센터 상담원, 텔레마케터, 병원 근무자(간호사와 간병인), 스튜어디스, 웨이터, 웨이트리스 등을 들 수 있다.
◆실제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생각은?=백화점 디자이너 숍의 매니저 일을 하고 있는 김성희 씨(50)는“고객들이 괜히 트집을 잡으며 불만을 제기하거나 교환·환불을 요구할 때, 스트레스가 가장 많다. 이와 같은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자연스레 언사가 높아지는데 그것을 또 트집 잡아 결국 옷을 환불해 간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또한 그는“출근할 때 자신이 연기자가 돼 무대에 선다고 생각한다”며 “내 감정, 간과 쓸개는 다 집에 접어두고 온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김지연 씨(30)는“경력이 늘어갈수록 가면을 쓰고 일한다는 생각이 든다”며“병원에서 요구하는 간호사의 태도 때문에 하고 싶은 말, 짓고 싶은 표정 등 어떠한 감정도 표출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그렇게 거짓으로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늘어가는 느낌이다”라고 설명했다.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어…늘어가는 건 스트레스뿐=전국민간서비스산업 노동조합연맹 이성정 정책실장은“대부분의 근로자는 감정노동을 하고도 그 스트레스를 참는 편이다. 기업은 근로자들이 고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근로자들은 손님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들은 억울하지만 어디에도 호소할 곳이 없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근로자들의 대부분은 업무와 관련된 스트레스를 참는 편이다. 그래서 직무 스트레스가 주로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 현상으로까지 확장된다. 또한 그러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쳐 근골격계 질환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무엇이 그들을 감정노동으로 몰아가나=이 실장은 감정노동의 가장 큰 원인으로‘해당 기업들의 관행’을 꼽았다. 기업들이 근로자들에게 내리는 업무지침과 고객대응 매뉴얼이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폭언, 폭행, 심지어 성희롱까지 해도 근로자는 무조건 웃음과 친절로 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실적과 인사에 당장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경영시스템 속에 근로자들은 노출돼 있다. 두 번째 원인으로는 감정노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한 점을 들 수 있다.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잘못된 처우는 고쳐나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은 그저 울분을 참고 있다. 소비자들 또한 근로자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하고 있다. 김태흥 감정노동연구소장은“‘소비자가 왕이다’는 말은 종업원의 처지에서 바라볼 때 하는 말이지, 소비자 스스로 그렇게 착각하면 안 된다”며“우리나라만 이상하게 종업원을 하대하며 폭언, 폭행을 일삼는 나쁜 문화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에서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조사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고 근로기준법에도 감정노동이 정의돼 있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감정노동으로 발생한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신체적·정신적 피해는 단순한 직무 스트레스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의료지원과 관리가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지정한 근로자 건강진단항목에는 화학물질, 분진 등으로 일어난 신체적 질병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 김 소장은“감정노동을 제대로 다루는 행정부서가 없고 인권위원회도 단순히 여성근로자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정부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근로자 인권을 존중하는 외국=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한‘여성감정노동자 인권가이드’에 따르면 OECD 회원국의 서비스 산업 비중은 지난 40년간 꾸준히 증가해 왔고, 미국 근로자는 3분의 2가 감정노동에 해당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에 유럽은‘새롭게 등장하는 건강위험 요인 10가지’에 감정노동을 포함했다. 영국 보건안전청은 2004년에‘직장 내 스트레스 관리 규정’을 발표했고, 일본은‘정신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 대인 관계 트러블을 정신질환 유발요인으로 인정했다.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 또한 인권을 존중하는 경영, 즉 ‘인권경영’에 집중하고 있다. 유엔 글로벌콤펙트에서는 국제적인 인권경영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외국기업에서는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라고 부르는 근로자지원프로그램이 활성화된 상태다. EAP는 근로자들의 직무 스트레스를 측정하고 상담 및 치료, 관리, 예방하는 프로그램이다. 뿐만 아니라 외국의 소비문화는‘내가 남을 대우하는 만큼 나도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근로자들의 서비스 노동력 제공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치러주고 있으며, 이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근로자와 소비자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더 지나야=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한 인식까지 얼마나 걸릴까? 김 소장은“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일부 개인, 일부 단체만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 이어 그는“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다른 전문가들도 거의 없을뿐더러,‘채선당 임산부 폭행사건’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서 감정노동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이끌어내는 언론이 없어 아쉽다”라고 했다. 채선당 사건은 식당 종업원이 소비자에게 폭행을 당하고도 소비자 측이 거짓이야기를 인터넷에 퍼뜨려 식당 측과 종업원이 크게 비난을 받았던 사건이다. 감시카메라 영상이 공개되면서 논란은 금방 가라앉았다. 하지만 가해자로 몰린 종업원이 받은 피해와 함께 이 사건이 말하고 있는 본질은 조명 받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현재도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정노동, 방법은 없을까?=그러나 모두가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감정노동의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과 주장들이 여러 군데에서 나오고 있다. 김 소장은 근로자가 심리적 내상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인‘감정노동방어권’, 노동현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충분한 휴식시설과 시간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감정노동휴식권’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는“일정 인원 이상의 종업원이 근무하는 사업장에는 반드시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를 배치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감정노동관리사’자격을 신설하도록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와 더불어 국가적 차원의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는 법률적 장치도 마련되는 중이다. 심상정 의원이‘근로’의 기준에 감정노동을 포함하도록 근로기준법의 개정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의‘산업재해’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업무상 질병’기준에도 감정노동을 포함할 예정이다. 심 의원이 발의한 이 개정 법률안들이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근로자가 직장에서 얻는 감정노동 피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기업과 소비자, 근로자 모두가 상생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현진 준기자 raspberry1078@ynu.ac.kr
임현정 준기자 hyunjung1216@ynu.ac.kr

 

대학생 두 번 울리는 감정노동
당신의 감정노동 지수는 얼마입니까?
우리 주변에서는 값싼 임금, 고된 노동에 지친 학생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 학생을 심층취재하고, 우리 대학생 100명을 대상으로‘감정노동 자가진단 테스트’를 실시했다.
다음은 실제 우리 대학교 학생의 사례이다.
◆쉴 틈 없는 고된 노동…더 어려운 감정노동=아침마다 가는 영어학원이 끝나자마자 윤선경 씨(중국언어문화3)는 오늘도 아르바이트 장소로 향한다.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퓨전레스토랑에서 일한다. 원래 윤선경 씨의 출근시간은 12시이지만 11시 30분에 출근한다. 일찍 출근해 천천히 일을 준비해야 수월하기 때문이다. 12시부터 그녀는 손님을 받기 시작한다. 손님이 앉을 자리를 안내해주고는 주문을 받고 물과 수저를 내놓은 뒤 음료나 음식을 서빙한다. 손님이 나가면 테이블을 치우고 계산까지 해야 한다. 앉을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손님들의 눈에 띄는 곳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은 고작 벽에 기대 체중을 싣거나 맥주통 위에 혹은 화장실에 가서 잠깐 앉아 있는 정도가 전부다. 이러한 패턴으로 3시까지 쉴 틈 없이 일하다가 30분 정도 점심시간을 가진다. 밥을 먹긴 하지만 손님들이 부르면 곧장 달려 나가야 한다. 손님이 빠져나가고 여유가 생길 때쯤이면 창문을 닦고 버섯손질을 하거나 설거지를 한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그녀에게 가장 큰 고충은 손님의 무리한 요구이다. 다음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노동의 실례이다.
얼마 전,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이 손님의 주문을 받았다. 그녀가 음식을 내주는 순간, 손님의 태도는 돌변했다. 자신들이 주문한 음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차근차근 손님들이 들어오고 나서의 상황과 잘못된 주문을 받지 않았음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손님들은“그래서 어쩌라고?”라며 대꾸했다. 화가 치밀고 어이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손님에게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고 메뉴를 다시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손님들은 또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빨리 안 나온다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장에서 만약 당신이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누구든 그녀의 입장에 놓인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학생의 아르바이트가 서비스 직종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감정노동에 노출됨에 따라 본지에서는 우리 대학생 100명을 상대로 직무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고객에게 의도적으로 친근하게 웃고 행동한다’(86%)가 가장 많았고,‘고객에게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도 감춘다’(84%)라는 물음이 그 뒤를 이었다, 그 외에도 고객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강요를 받는다’(68%)고 답했다. 5개 문항 이상 해당 시 감정노동의 정도가 심함을 나타내는데, 100명중 30명의 학생들이 5개 이상, 9명이 7개 이상의 문항에‘맞다’고 응답했다. 또한 이들 중 대부분이‘감정적으로 메말라간다는 것을 느낀다’와‘전반적으로 내 일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항목에 체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주로 고객의 불만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점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빵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영경 씨(정치외교1)는“빵 이름에 가격이 적혀 있는데 사기를 친다고 하는 분도 있고, 통신사 할인이 되는 카드가 아닌 다른 통신사 카드를 가지고 와서는 왜 할인이 안 되냐며 화내시는 분들도 있다. 겪을 때마다 당황스럽다”고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노동자는 웃어야만 한다.
노동자와 고객의 역할은 정해져 있지 않다. 누구나 고객이 될 수 있고 노동자가 될 수 있다. 고된 노동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그들에게 소비자들은‘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로 그들의 피로를 녹여주자. 고객들과 고용주들의 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유진 준기자 syj0804@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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