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청춘예찬
3월의 청춘예찬
  • 편집국
  • 승인 2012.03.1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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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면 공간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관여한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예정된 시간을 살아야 하며, 동시에 타인과 공간 내에서 만나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운명의 존재며 동시에 관계의 존재이다.
보통 시간 내 존재, 관계성 속의 존재라고 정의될 수 있는 이러한 인간관은 자기 고유의 운명과 관계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이른바 자기완성에 이르는 것을 그 목표로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주체성을 잃고 자기 상실의 수렁에서 헤매는 듯하다. 이는 운명에 대한 불안과 관계 단절의 소외에 담대하게 맞설 용기도 부족하고 위선적 가면의 달콤한 유혹에 저항할 의지마저도 박약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사드는『소돔 120일』에서, 마조흐는『모피코프를 입은 비너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자기 상실의 현대인들을 그린 바 있다.
젊다는 것, 청춘이라는 것은 불안과 소외에 무방비로 맞닥뜨려야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시기적으로 보아 운명과 관계에 대한 주체적인 준거틀 형성의 초입이기도 하려니와 당분간은 심리적 독립을 위해 필요한 통과의례를 혹독하리만치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춘이라는 것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타인과 심지어 자신에 대한 소외로 온통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르는 슬픈 존재인 셈이다.
‘젊다는 것이 한 밑천’이라고 하는데 그 한 밑천을 헤아려 보면 그 가치는 불안과 소외를 극복하기에 넉넉하다. 부당한 권력에 대해‘아니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심장이 있으며, 자존심에 상처 받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쓰는 자기 이중성의 가면을 용납치 않는 강한 양심이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투시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의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적 영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니 청춘은 불안과 소외를 넘어 자기만의 운명과 관계를 창조함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한 밑천을 넉넉히 지닌 기쁜 존재이다.
이 드넓은 영남대학교 캠퍼스는 나만의 운명과 관계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한 없이 불안하고 외로운 나의 이 청춘이 아름다운 나의 삶을 창조할 수 있도록 딛고 설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하철에서 내려 또 긴 줄을 서서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는 것도, 늦으면 종아리가 아프도록 정문에서 강의동까지 뛰는 것도, 어머님께서 손수해주시는 밥과는 비교가 안 되는 식당 밥을 먹는 것도, 친우들과 어울려 늦은 밤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도, 늦으면 밀려나는 도서관 자리 잡기도, 그리고 늦은 밤 도서관의 형광불빛을 등지고 공부하는 것도 아름다운 내 삶을 창조하기 위한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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