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을 만나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을 만나다.
  • 김효은 기자
  • 승인 2011.09.28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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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전평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고미숙 선생님은 지식인 공동체, <수유+너머>에서 밥과 인적네트워크 그리고 공부를 해결하고 있다. 그녀가 쓴 많은 저서 중 우리에게 가장 와닿을 이야기 달인 시리즈(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Q.그 당시 대학시절은 어떠셨나요?
A.나의 대학생활은 너무나 빈곤하고 썰렁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78학번으로 당시 유신 말기의 상황이었는데 광주항쟁이 있었던 시기이다. 그 당시 내 경우에는 인간의 실존적인 본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학과 공부도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학생운동도 하지 않았는데 돈도 없었고, 연애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찢어진 청바지에 누가 잘 사는 집 아이인지 알지 못했을 정도로 모두 똑같이 하고 다녔다. 요즘은 겉모습을 보면 다들 잘 사는집 아이들인 것 같다. 나는 남들처럼 동아리도 하고 야학을 하면서 대학교 시절을 보냈다.  청춘들은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말하는데, 청춘에게 너그러운 시대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제1장.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들이 돈에 전면적으로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돈에 대해 문제시 여기려면 자기가 자신의 인생에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든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꾸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고 따라하게 되는데, 계속 이 상태로 가게 된다면 대학생들은 주체가 아니라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몸으로 이뤄져 있지만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의식(정신)과 생리(겉모습)가 결합되어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의식과 생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보이는 것이 채워졌다 하더라도 나머지 반은 절대로 채워질 수 없다. 즉 엄청난 부자도 돈으로 생리적인 부분은 채울 수 있지만 의식은 궁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나머지 반 이상을 보이지 않는 것들로 채워야 하는데 이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내 안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야 한다.
책을 예로 들면 책은 먹을 것을 주지도 않고 옷이 되지도 않지만, 책에 담긴 지식은 의식을 채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의식 즉 보이지 않는 세계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겉모습(생리)이 잘났더라도 정신(의식)이 결핍되었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지성이 채워지지 않은 생리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은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을 채워주기 때문에 존경이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20대들을 보면 물질과 경쟁 속에서 황폐해진 상태로 방치돼 있다.
Q.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욕망과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곤감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A.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 진리다. 목표를 정한 것을 이루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평생 참고 살아봤자 잘 산 인생이라고 볼 수 없다.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지위나 부를 갖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이 충만하여 행복감을 느낄 때이며, 스스로를 부자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사람은 무능력한 사람이다. 미래에 더 좋은 것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한다는 것은 물질이 적용된 개념인데, 물질이 없더라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지금의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감을 묵살하지 말고, 개인이 가질 수 없는 행복의 영역에서 지금 채울 수 있는 것을 채워야 한다고 본다. 모든 것을 다 누리기 위해 자신을 쥐어짜려는 것은 탐욕이며, 나를 긍정하고 즐기면 좋겠다.


Q.진정으로 목적이 있는 소비란?
A.20대들은 돈을 충분히 벌 수 없어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어딘가에 기대는 경향이 많은데, 자립해야겠다는 목표를 정해야 한다. 돈의 달인 코뮤니타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립과 불필요한 소비에 끌려 다니지 않는 것이다. 쓰지 않는 것을 사서 재워놓기만 하는 것은 소외된 방식의 경제활동으로 볼 수 있다. 많이 쓰느냐 적게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은 소비는 잉여적 인간에 불과하다.


제2장.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밖에서 주류사회를 보면 변화가 더 잘 보이는데, 외환위기 이후 그 당시 주류는 자기계발과 경영, 성공이 주 키워드였다. 그때부터 대학은 망하기 시작했다. 즉 대학이 쇠락한 시기는 1997년부터라고 본다. 대학은 최첨단 시설로 리모델링되는 동시에 인문학적 사회가 사라졌다.
지금부터 간단한 공식을 말하려 한다. 사람이 사는 것은 물리적 생리와 정신·의식의 결합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정신 놓치지마!’는 의식을 놓지 말라는 것인데 우리는 계속해서 정신을 놓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존재는 벌어져버렸다. 존재성을 확인하는 것은 현장에 내 정신이 합치하는 것인데 우리는 종종 의식에 해당하는 영역을 방출해 버린다.
Q.왜 다시 인문학을 필요로 하는가?
A.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인문학을 찾기 시작했다. 직장인에게 있어 성공의 지표는 폭탄주를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빨리 마시고, 정신을 빨리 놓치려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얻은 것(물질적인 부분)으로는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술을 통해 잊고 싶은 것이다.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는 물질적 자본주의로 50%를 채울 수 있더라도 나머지 의식적인 부분을 채우지 못한 채 빈곤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결국 스스로를 기회가 적다고 치부하거나 타인과 비교했을 때 박탈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숨을 오래 쉬려면 호흡이 느려야 한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대신 가늘고 길게 정신을 놓치고 살아간다. 정신을 놓치고 사는 것이 우울증인데 이렇듯 지식과 주체 사이에서 소외를 느끼면서 생기는 병이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배움이며 인문학이라고 본다. 
Q.진정한 대학을 위해선?
A.동·서양 모두 배움의 공동체가 대학이라고 일컬었다.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또한 어떻게 하면 존재가 자유로울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데, 이는 몸으로 터득할 수 있다.
지금 대학 교육은 우리가 흔히 배우는 정보를 수집하고 나열하는 방식에만 머물고 있다. 결국 스펙은 많아지나 내공이 쌓이지 않고 직장을 구하면 다시 교육을 받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자유와 행복이라고 쓸 수 있을 때 지성을 논할 수 있는데, 지금 이 시대 청춘들은 청춘으로 보기에는 너무 열정이 없다. 한마디로 패기가 없다. 너무나도 과잉보호를 받아서 몸에 야생성이 갖춰지지 않았다. 대학에 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공부는 야성을 키우는 것이다. 청춘이 청춘다운 것은, 몸으로 다른 사람들과 네트워킹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옛날에는 지성의 차이에서 오는 압도적 카리스마가 있었지만 지금은 자기 겉모습만 치장하기 바쁘다.
Q.쿵푸의 철학
A.많은 대학생이 과제를 내도 인터넷에 있는 정보 그대로 복사해서 제출한다. 본인이 습득하지 못한 정보를 발표한다.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발제문을 외워서 쓰게 했는데 이것이 바로 쿵푸다. 주관식 20문제를 주고 골라서 쓰도록 하면서 책 한권을 외울 수 있도록 했다. ‘안다’, ‘배운다’는 것은 신체가 그만큼 충격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들린다’는 것은 중요한 개념이다. 소통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극도로 청력이 부족하다. 이는 독백의 시작. 네트워킹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이버 공간을 들락날락하는 것은 네트워킹 소통이 아니다. 이미지로 만나는 공부는 절대 쿵푸가 될 수 없다. 이미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 몸을 울려야 한다. 어떤 충격이  몸으로 전해질 때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다.
Q.무엇을 공부할까?
A.나를 행복하게 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사람의 병과 죽음은 멈추게 할 수 없다.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달인 시리즈, 돈과 사랑의 달인을 쓰면서 느낀 것은 모든 것이 공부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제3장.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연애를 한다는 것은 한 개인의 인생에서 굉장히 큰 사건인데, 사람의 마음과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면밀히 공부하면 된다. 관찰도 연구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연애를 많이 해도 관계에 대한 소통법이 늘지 않는다. 즉 연애를 하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 좋아할 때는 허무하지 않는데, 갑자기 사랑이 증발하면 너무나 망연자실하게 된다. 실연당해서 슬픈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이것도 공부가 필요하다. 나의 경우 수학 선생님에 대한 사랑으로 로그문제를 정말 잘 풀게 된 경험이 있다. 결국 불타는 에로스로 수학입시를 통해 본고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사랑의 힘은 크다고 본다. 그것을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 몸에 변화가 없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에, 몸으로 느끼고 그런 현상을 공부해야 한다. 청춘들이 스스로를 억압하지 말고 공부와 결합해 오히려 자신 안의 에로스를 자연스럽게 분출시켜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실패하는 것이 20대의 특권이다. 20대는 모든 것을 실패해도 괜찮으나 삶의 축을 잡아야 한다. 청춘을 통과의례의 장으로 만들기 바란다. 나의 경우 그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유일하게 취직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박사학위를 받고도 교수를 포기한 사람이다. 그리고 한 번도 정규직으로 일해 본 경험이 없다. 하지만 지금 현재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내 밥벌이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고전평론가이지만, 미국 아이비리그인 코넬 대학교에서 유일하게 한국어로 강의하기도 했다. 여러분이 충분히 즐겁고 유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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