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디자이너 최갑운, 그를 만나다
패션디자이너 최갑운, 그를 만나다
  • 강보람 기자
  • 승인 2011.03.30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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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PID의 일환으로 한국패션센터에서 열린 제23회 대구컬렉션에서 신진디자이너그룹이 무대를 선보였다. SIX PLUS로 불리는 이들은 대구시가 후원하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6명의 젊은 디자이너로 각각의 콘셉트와 독자성을 추구하면서 패션에 대한 독창성과 열정이 남다르다는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6인의 디자이너가 차례대로 패션쇼를 진행했는데 촉망받는 신진디자이너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무대가 있었다. 등장부터 남다르게 한 명씩 나오지 않고 여러 명이 한 번에 나와 런웨이 중앙에 서 있고 그 사이에서 워킹이 이루어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마치 쇼가 아닌 연극을 보는 것처럼 모델들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워킹은 약간 느렸는데 오히려 그것이 시선을 끌게 만들었다. 노래도 역시 다른 디자이너와는 차별성을 띠고 있었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가사에 흥미를 뺏기지 않으려고 외국곡이나 가사가 없는 음악으로 하는데 반해 그는 가사가 있는 우리나라 인디밴드의 음악을 선정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일하게 남자 옷을 만들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녀가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등지고 서 있으면서 불이 꺼지고 쇼가 끝날 때의 그 몽환적인 분위기가 너무 인상 깊었다. 쇼를 보는 내내‘이런 패션쇼를 구상하고, 저런 옷을 만든 디자이너는 대체 누구일까? 보고 싶다,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쇼가 끝나고, SIX PLUS의 최갑운 디자이너를 만났다.

Q.어떻게 디자이너의 꿈을 꾸게 되었나?
A.원래는 건축학도였는데 군대를 다녀온 뒤 의상으로 전과하게 되었다. 건축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숫자 알러지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건축을 공부하면서 건축의 한계를 느꼈다. 나의 디자인이 반영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으로 인해 건축의 한계를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실용적이지도 않아 건물주도 이용자도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동그란 구 같은, 디자인을 누가 원하겠는가. 그래서 생각하던 차에 현실적인 디자인을 하자는 생각을 했다. 걸어 다니는 갤러리, 움직이는 공방으로 혼자 나만의 창작세계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까지 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워서 다닐 만큼 옷에 관심 없었던 나는 그렇게 디자이너가 되었다. 

Q.자신의 20대 시절에 대해 만족하는가?
A.나름대로 만족한다, 나이가 들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줄어든다는 말을 듣고 더 빨리 열심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도 안 돌아 보고 열심히 달렸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내가 계획해 놓은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자만심이 될 수도 있지만 수도권대학의 학생과 해외유학파와 경쟁했을 때 나는 그들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았다. 나의 생각도 그렇고 외부평가도 봤을 때 내가 별로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Q.그만두고 싶었을 때는 없었나?
A.나는 지방학벌에 돈 없이 맨땅에 헤딩한 것 치고는 굉장히 잘 된 편이다. 내 주위친구들 중에서 이 분야를 떠난 친구들이 많다. 보통 3~4년을 못 버티더라. 카피만 그려야 해서 자신의 창작이 안된다거나, 수입이 크지 않은데 비해 일이 고되기 때문이다. 나도 의상을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잘하고 있다’라고 자기최면을 걸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힘들어 지쳐버리니까.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두꺼워져야한다.

Q.그래도 끝내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A.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된 판단을 들어보고 끝내고 싶었다. 왜 연애를 할 때 혼자 짝사랑만하다가 포기한 것처럼 실패한 인간이 될 것 같았다. 나의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맞으면‘맞다’, 아니면‘아니다’라는 확실한 평가를 들어보고 싶었다.

Q.서울이 아닌 대구를 고집하는 이유는?
A.왜 내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따라야 하는지 조금 억울했다. 또한 처음부터 마켓을 프랑스나 북유럽 쪽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은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외국이나 별반 다를 것 없다고 느꼈다. 어차피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한다면 굳이 서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Q.그렇다면 빨리 외국으로 떠나서 현지 시장파악을 해야하지 않나?
A.물론 각 나라마다 보는 기준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큰 틀의 미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에서 호응이 없는 것이 외국에서 히트를 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Q.본인이 생각하는 디자인의 방향은?
A.보통 남성복이라고 생각하면 수트를 많이 생각한다. 하지만 수트는 19세기 초중반에 등장한 것이다. 역사를 거치면서 서서히 지금 형태의 수트가 나왔다. 나는 사람들이 옷을 갖춰 입어야 할 때 수트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 너무 딱딱하고 고지식하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현재 주 에너지 원이 전기가 아니라 다른 물질이라면 전기를 개발한 사람과 전기는 잊혔을 것이다. 이처럼 의상에서도 잊혀졌던 무언가가 있을 것이고, 간과했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한복이나 동양의복을 펼치면 납작한 평면이 되지만 서양의복과 현대의복의 경우에는 다트가 있고 어깨 형태가 있어 바닥에 놓으면 울룩불룩해진다. 그러나 서양도 처음에는 평평했고 덮어쓰는 형태였다. 동양의 관점에서 본다면 평면의 의상이 갑작스럽게 들어온 외국문물로 인해 입체적으로 변했다. 따라서 나는 근본인 평면으로 돌아가서 평면에 머무르자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다른 방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번에 하기 힘들 것이고 죽기 전까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평면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싶다.

Q.자기 디자인에 회의가 든 적은 없나?
A.대부분 내 디자인의 80~90%가 만족 못하기 때문에 거의 항상 회의가 든다고 할 수 있다. 만족하는 것은 정체된 것으로 나태해질 수 있다. 가끔 방향에 회의가 들긴 하지만 나를 믿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한다고 생각하며 위로를 한다. 처음에는 내 코드만 깊게 팠었는데 의상이란 다양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 후로는 여러 가지 것들을 받아들이려 노력 중이다.

Q.디자이너로서 가장 뿌듯할 때는?
A.내 쇼를 할 때 가장 기분이 좋다. 내가 원하는 대로 런웨이를 구상할 수 있다. 쇼 직전 모델의 옷매무세를 가다듬으면서 느끼는 음악의 강한 비트감과 긴장감은 정말 마약 같다. 너무 매력적이다

Q.디자이너라는 직업,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나?
A.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진정 좋아서 견딜 수 있는 친구는 환영이지만 잠깐 들어와 이쪽 인구만 채우다 나가는 친구는 필요 없다. 화려한 겉만 보고 쉽게 생각하면  큰 코 다칠 것이라 본다.

Q.앞으로의 계획은? 
A.얼마 전 PID의 신진디자이너 그룹 쇼를 끝내고 현재는 여러 기관과 접촉중이다. 아직 추진단계이기 때문에 확실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의상을 쇼라는 메이저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보고 싶다.

Q.꿈이 불분명한 대학생들에게 할 말은?
A.요즘 학생들은 정규적인 것만 원하는 것 같다. 정규는 시대적인 흐름과 유행일 뿐 처음부터 정규로 생각하고, 정규로 배우고 완벽한 것만 따지고 정상적인 것만 생각하면 갇히기 쉽다. 디자인은 정상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허황되고 이상한 것들도 만들어보고 하면서 자신만의 초점을 찾아야 이 필드에서 살아날 수 있다. 너무 안정적인 이미지만 뽑아내려한다. 난 예전에 아트웨어적인 옷을 많이 만들었다. 항상 교수님들이 처음보고는 웃으셨었다. 사지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괴기스러운 옷도 있었다. 이렇게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되 필요 없는 것을 깍으면서 중심을 찾아야하는데 처음부터 완벽한 것만 찾으려 하니까 무너지기 쉽게 된다. 자기 생각을 담아낼 수 있게 좀 더 모험을 했으면 좋겠다. 원래 인생은 어떻게 하더라도 항상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길 권한다.
※PID: Preview In Daegu의 약칭으로‘대구국제섬유박람회’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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