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위기 맞은 국가인권위원회
내우외환, 위기 맞은 국가인권위원회
  • 박준범 준기자
  • 승인 2010.12.0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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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국가인권위 사무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2001년 출범한 국가기구로서 인권 관련 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독립기구이다. 인권위의 설립 목적은 모든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 향상하고 민주적 기본 질서를 확립하며,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설립 배경을 가진 인권위는 한때 각국의 정부 산하 인권기구 중 가장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인권위는 인권 침해가 제기된 안건에 대해 11명의 위원 중 과반수 이상이 인권침해 사실을 인정할 경우에 그 안건에 권고 조치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달 1일 현병철 위원장의 독단적인 운영과 인권 현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인권위를 문제삼아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이 동반 사퇴를 했고, 이어 10일 비상임위원인 서울대 조국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전격 사퇴했다.

이에 인권위 내부위원 뿐 아니라 전문·자문·상담위원으로 구성된 외부위원들과 인권 관련 시민단체들도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후 인권위 전문·자문·상담위원 61명이 동반 사퇴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현 위원장은 지난 16일 입장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논란을 확산시켰다. 또한 18일 전국 2백23개 인권 시민사회단체들이 국제조정위원회(ICC)에 인권위 진상 규명 조사단 파견을 요청한 상황이다.


◆인권 분야 무경력자를 위원장에 취임시킨 정부=인권위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사실상 예견된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화 하려 했고, 많은 인권단체의 반발을 샀다. 그렇지만 정부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결국 조직 규모를 축소해 인권위의 활동을 위축시켰다.

이어 지난해 7월 16일 당시 한양사이버대학교 학장이었던 현병철 교수를 인권위원장으로 내정했으나 많은 인권단체들과 인권 전문가들이 반발했다. 현 위원장은 그동안 인권과 관련된 일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란은 현 위원장이 취임한 직후에도 계속됐다. 현 위원장은 인권위를 독단적으로 운영했으며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명예훼손 건’, ‘민간인 사찰 건’, ‘박원순 변호사 명예훼손 건’ 등 정권에 부담될 수 있는 안건들에 대해서는 시간을 끌거나 변칙적인 방법을 통해 부결시켜 왔다. 또한 용산 참사 진압 과정에 대해 재판부 의견 표명을 하자는 안건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독재라도 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며 일방적으로 회의를 폐회하기도 했다.

또한 인권 현안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PD수첩 사건’이나 ‘박원순 변호사 명예훼손 건’ 같은 경우 회의에서 부결됐다. 인권 침해를 받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법원에서는 무죄 판결이 났다. 인권위가 법원보다 인권에 대해 낮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 대학교에서 ‘인권과 법’을 강의하고 있는 오완호 한국인권행동 사무총장은 “인권위는 독립기구로서 정부에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인권위는 그런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며 “지금 인권위의 모습은 인권위 설립 취지와 맞지 않다”고 인권위의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한편 직전 인권위원장이었던 서울대 안경환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인권위의 핵심적인 기능은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를 감시하고, 국제 규범을 국내에 정착시키는 것을 독려하는데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인권위는 정부에 대해 바른말을 하는 것이 본래의 업무이기 때문에 지위의 독립성이 요구된다”며 인권위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또한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정치가 아무리 정파적 이익에 따라 이뤄져도 인권위만큼은 그러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독립기구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임·비상임위원에 이어 외부위원까지 동반 사퇴=지난 달 1일 문경란, 유남영 상임위원이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동반 사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지난 10월 25일 전원위원회(전원위)에 상정된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 때문이다. 이 개정안은 ‘상임위원 3명이 안건에 합의를 해도 위원장의 판단으로 전원위에 회부할 수 있다’는 내용과 ‘상임위의 의결로만 가능했던 긴급 인권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 및 권고도 전원위에 이관하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위원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위해 설치된 상임위원회가 무력화 될 것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이 개정안에 대해 명숙 상임활동가는 “결국 개정안은 위원장의 권한 강화를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위원장 마음대로 사안에 대해 결정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달 17일 전문·자문·상담위원 61명이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 촉구 및 인권위 정상화를 위해 동반 사퇴서를 제출했다. 이에 장애 차별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대구대 조한진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인권을 잘 모르는 사람을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혹시 인권에 대해 모르더라도 사안에 대한 시각이 필요한데 지금 인권위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위원직을 사퇴한 이유에 대해서 “앞으로 인권위의 전망이 좋지 않으며,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지 않아 사퇴했다”고 밝혔다.

◆편향적 인사 내정이 인권위 문제 심화=한편 지난달 15일 정부는 사퇴한 상임위원을 대신해 ‘시민을 위한 변호사 모임’ 공동대표이며,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인 김영혜 변호사를 임명했다. 김영혜 변호사가 속해 있는 ‘시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은 전교조 명단 공개 관련 소송에서 변론을 맡은 대표적인 보수 단체이다.

또한 대표적 보수 단체인 뉴라이트재단 이사를 역임했던 ‘시대정신’ 이사 홍진표 씨를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내정했다. 내정된 두 인사 모두 인권과는 거리가 멀고 현재도 보수 우파에 편향된 정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는 친정부 인사나 인권운동과 관련 없는 인사들로 인권위를 꾸리고 있다. 이는 인권위원에 관한 최소한의 자격 기준을 규정한 인권위법 제5조 2항(“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 중에서 국회가 선출하는 4인(상임위원 2인을 포함한다),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한다”)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내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홍성수 교수는 “두 내정자는 주요 인권 쟁점에서 인권보다는 국가 안보나 사회 안전을 중요시했다”며 “이것은 인권의 관점에서 인권옹호자의 역할을 해야 할 인권위원으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고 이번 인사 내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안경환 전 위원장은 “정부는 독립기관의 역할에 대해 인지해야 하고, 인권위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국민도 인권위의 역할을 인식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중요한 문제는 인권위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 전환이 없는 상황에서 현 위원장의 퇴임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고 말해 현재 인권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완호 사무국장은 “인권에는 진보와 보수가 없다. 하지만 현재 인권위의 인사 내정은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처사이다”며 “이는 인권위 설립 초기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인권위의 인사 문제에 대해서 “인권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관련 경험이 있어야 인권위를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사태에 대한 현 위원장의 해명 자료, ‘아전인수’식 주장=이와 같은 논란이 계속되자 현 위원장은 인권위 홈페이지를 통해 인권위 문제에 대한 해명자료와 함께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해명 자료는 인권위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 만큼 설득력이 부족하다.

해명 자료는 “현 위원장 취임 이후 접수된 진정 사건은 약 8천9백 건으로 2002년에서 2009년 사이 연평균 약 5천2백 건에 비해 현저히 증가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오완호 사무총장은 “진정은 인권 침해를 받았을 때 인권위에 이의 제기를 하는 것이다”며 “진정 사건이 줄어야 인권 보호 활동을 잘 수행한 것이다. 진정 사건이 증가한 것은 인권문제가 진전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현 위원장은 자신이 취임하고 난 후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성과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명숙 상임활동가는 “이러한 현 위원장의 해명은 ‘아전인수’식 해명”이라며 “현재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고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권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고 반박했다.

또한 홍성수 교수는 “인권위의 문제는 현 위원장 취임 이후 정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의견 표명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고 했다. 이어 그는 “정부의 눈치를 살피면서 정부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안건에 대해서 의견 표명을 자제한다면 인권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인권을 다루는 국내 최고 기구로서 2001년 설립된 이후 많은 활동을 해왔으며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올해로 9주년을 맞이하는 인권위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번 인권위 사태의 본질에는 현 위원장뿐만 아니라 정부에도 문제가 있다. 인권위는 어떠한 기구에도 속해 있지 않은 독립적인 기구이다. 하지만 정부는 인권위 인사 내정에 있어 인권과는 관련이 없고, 특정 정치색을 가진 편향적 인사들로 위원들을 내정했다. 이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권위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인권위는 정부에 대해 비판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권위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인권위가 가진 고유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하며, 더욱 견고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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