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태
천안함 사태
  • 편집국
  • 승인 2010.05.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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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누군가 조세프 K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자기가 잘못한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는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다.
 카프카, <심판> 중에서
1. 천안함과 국가의 정보 독점

어둠 속 수중고혼이 되어버린 천안함 수병들에 대한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젊은 넋들을 위로할 수 있는 길은 이들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과도한 추모 분위기 속에서 외부의 가상 적을 규탄하며 내부적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하는 기득권자들의 정략적 태도는 영문도 모른 채 죽음에 몰린 억울한 영혼을 다시 한번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은 국가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에서 제시하는 “객관적” 증거들에 대해 쏟아지는 여러 의혹들을 설득력 있게 해소시키고자 하는 의사나 의지가 군이나 정부 당국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몇 가지 사례만 지적하더라도,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정부의 일처리 방식에 대한 의혹은 충분히 정당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백령도 인근에서의 천안함의 운행과 침몰까지의 전 과정을 담고 있는 열상감지장비(TOD)의 녹화 장면, 마찬가지로 천안함의 전 운행과정을 공중에서 촬영하고 있었을 미군의 무인정찰기(UAV)의 녹화장면, 천안함 절단의 일차적 원인을 알려줄 절단면 모습, 외부 폭발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라는 가정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도 있는 최초 사고발생 시간과 지점, 건조한 지 25년이나 되었다는 천안함의 선체검사기록부, 무엇보다도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재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될 천안함과 2함대 사령부 사이의 교신 기록과 당시의 레이더 화면 등을 공개하라. 이것이 정부 측 조사가 설득력을 갖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어느 것 하나 일반 시민의 요구나 주장을 통해 공개되기가 쉽지 않은 사항들이다. 심지어 사고당일 밤 9시 15분(그 시간 승조원과 통화를 하고 있었던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천안함에 비상상황이 발생했다는 최초 시간)부터 9시 22분(천안함이 절단되어 침몰한 시간)까지 천안함과 함대 사령부 사이에 있었던 최후 7분간의 교신 기록이 통째로 삭제되어버렸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또한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 일을 조사하고 있는 합동조사단의 명단은 일체 공개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증언과 증거에 접근하지 못한 채, 누가 어떤 경위를 통해서 국가적 비극의 진실을 결정하는지 알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는 셈이다. 과학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외부의 적을 향해 적개심을 부추기는 정권의 나팔수들의 나팔소리는 우리들의 명징한 의식을 익사시키고 있다. 어쩌면 나팔을 부는 나팔수들의 의식 또한 자기기만적인 환각에 젖어있는지도 모른다.
2. 세속 종교와 자기기만적 국가 이데올로기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하여, 정부는 이미 자신들이 제시하는 원인이나 대책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게 해주는 관점이나 가설들에 대해서는 모두 국가적 권위를 해치는 이단적 요설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권위를 장악한 제도권 주류세력은 다른 “의견(doxa)”에 대해서 “인터넷 괴담”이라는 탈근대적 별명을 붙이고, 나아가, “유언비어 날조·유포”에 대해서 형사처벌이라는 근대적 훈육체계를 가동한다. 말하자면, 국가는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세속 종교 집단과 같은 것이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국가의 무오류성을 인정한 정치사상가로는 토마스 홉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정념, 자유, 권리가 무절제하게 행사될 때 그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펼쳐지는 폭력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홉스는 일정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국가라고 하는 권위있는 상급조직에 양도함으로써 적대세력들의 평화적 공존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의 순기능처럼 보이는 적대세력들 간의 조정은, 사실은, 무질서와 폭력에 대한 공포의 감정에 기초하고 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국가가 하는 일을 옳다고 본다 하더라도 그 밑바닥에 깔려있는 감정은 공포심이다. 유신시절 국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통치 원리가 국민총화였지만, 국민 전체가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는 이유는 북한이라고 하는 외부의 적에 대한 공포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천안함 사태의 전개는 역사의 시계바늘을 뒤로 돌려놓음으로써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퇴행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한반도 특유의 분단 체제 상황 속에서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사건임에는 틀림없지만, 분단과 통일이라는 관점(예컨대, 백낙청 교수의 분단체제론)에서 해석하기 보다는 근대적 민족국가가 지니고 있는 전체주의적 양상을 좀더 근원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 집권 세력이 천안함 사건을 분단체제라는 한반도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분명하지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정치적 맥락 역시 유신시대와는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근대적 세계의 도래와 그 이전의 시대, 그리고 근대의 후기에 이르렀다는 오늘날의 세계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현대 인류학의 성과는 그 결정적 차이가 다양성의 차이에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적 통념과는 달리 오래 전 사회일수록 가치관과 세계관은 지역별, 계층별로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던 데 비해 현대로 올수록 세계는 다양성이 사라지고 하나의 일반적인 이데올로기로 통합되는 경향을 띠게 된다. 말하자면,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여러 세계가 공존하였던 데 비해 오늘날의 사회는 단 하나의 국가 이데올로기에 의해 전체가 공통의 사유와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탈근대적 이데올로기론으로 유명한 루이 알튀세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점은 바로 그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데올로기론은 이데올로기의 일반성(generality)을 밝히는 데에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알튀세의 일반 이데올로기(ideology in general) 이론은 이데올로기가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물질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밝히는 부분과 여러 사회적 계층을 관통하여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반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을 밝히는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실상 이 두 부분은 별개의 것이라기보다는 한 가지 사실의 다른 두 양상으로 볼 수 있다. 근대화가 진척됨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는 물질세계의 양상은 점점 하나로 통일되어 가고 그런 물질세계의 풍경 속에 젖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세계 역시 하나로 묶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31년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전시기 일본정신사를 기술한 일본의 사상가 쓰루미    스케의 국체(國   )론을 들어보자. 국체, 즉 나라의 주권은 곧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에 기술되어 있는바 하늘에서 내려온 “천황”집안의 선조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의 과학기술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적인 민족국가로 거듭 나기 위해서 일종의 국가 종교가 필요했는데 ‘국체로서의 천황’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국가 종교의 핵심으로서 작용했다. 국가가 중세의 기독교를 대신하는 유사 종교 조직으로 기능하면서 그 조직의 권능자인 천황의 생각과 지시 사항은 곧 일본의 진리 체계를 형성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발표된 군인칙유, 교육칙어 등 일본천황의 칙어들은 일체의 오류가 없는 국가의 사고 체계였던 것이다. 무오류의 일본천황의 생각에 따라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동원되어 참화를 당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유념해보아야 할 점은 일본천황도 처음에는 국체 개념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당시 군국주의자들도 객관적인 전력상 미국이나 영국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결국 전쟁이 진행되면서 그 누구도 국체론에 입각한 자기기만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 국가는 세속 종교의 형태를 띠고 있음으로 해서 통치자와 피치자 누구도 벗어나기 어려운 이데올로기의 감옥 속에 갇혀있는 수감자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안함의 경우로 돌아와보자. 사건이 터진 직후, 해군은 해경에 구조요청을 보내면서 천안함이 좌초되었음을 보고한 바 있다. 또한 해군은 실종된 승조원들의 가족들에게 최초 상황 브리핑에서 천안함이 좌초되어 침몰되었음을 명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한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외부의 적이 천안함을 피격했다는 아무런 구체적인 물적 증거도 없이 군 지휘부와 여당의 지도자들은 보복과 응징을 다짐하며 북한의 공격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들의 눈물과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비장한 표정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3. 국가의 권위와 개인의 자율성

현대국가의 이데올로기적 본질을 설명할 목적으로 위에서 우리가 실례로 들었던 이명박 정부나 일본 국체로서의 천황은 모두 이념적 좌표에서 보수우익에 속한다. 그렇다면 정치이념 상 정반대에 위치하는 좌파의 관점에서 현대국가를 우리는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오늘날 국가는 “전체 부르조아 계급의 공동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고 정의내린 바 있다. 여기서 맑스는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냉정히 파헤치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국가를 통해서 형성된 생산력이야말로 훗날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필수 자원임을 밝히고 있다.
맑스에 따르면, 현대 부르조아 국가는 생산력의 증강을 위해 필요하고 이는 다시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부르조아 국가--생산력 증강--사회주의 국가라는 맑스주의적 도식을 보면, 좌·우의 이념적 패러다임 시프트에서 생산력 증강이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르조아 계급에 의해 이루어진 눈부실 정도의 엄청난 생산력 향상에 맑스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이것을 역사발전의 한 단계로 인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많은 맑스주의자들이 생각하듯, 맑스가 무한한 생산력의 발전을 예찬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맑스는 <자본론 3권>에서 인간의 역사가 “필요의 영역”에서 “자유의 영역”으로 이행해갈 것임을 예측하는데, 이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생산력의 무한 증식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의 합리적인 상호 교환”이다. 인간의 역사가 “자유의 영역”에 이르게 되면 국가가 소멸하며, 궁극적으로 생산자들과 개인들은 자유롭게 연합하여 평등한 연대를 이루는 코뮤니즘 사회를 건설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 맑스의 예측이다. 맑스의 이런 예측이 달성되는 역사적 국면은 언제 가능할 것인가? 맑스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와 관련하여 엥겔스는 어느 글(<권위에 대하여>)에서 대규모 산업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필요악으로서 지배 그룹(또는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양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엥겔스는 단서를 붙인다. 사회 발전의 국면에 따라 권위와 자율성은 상대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엥겔스는 사회모습의 변화에 따라 국가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개인의 자율성을 증가시켜야 하는 국면도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가 물어보아야 할 것은 현재 우리가 어떤 국면에 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좌·우의 이념적 편향을 넘어서 생산력의 지나친 발전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 조직의 비대함이 문제가 되는 시점에 와있다. 지금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생태적 붕괴 위험으로 생산력의 맹목적 발전은 파국을 앞당길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 시점이다. 국익을 위하여 또는 수출과 자본의 자유를 위하여 체결했거나 진행 중인 숱한 자유무역협정(FTA)들은 우리의 식량자급의 토대인 농업을 궤멸시킬 것이며, 대다수 한반도 남쪽 땅 주민의 반대를 거스르고 진행 중인 4대강 파괴 사업은 우리의 생존의 토대를 붕괴시킬 것이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우리의 땅에서 배제되기 전에 국가의 권위에 맞서 개인 존재의 진정한 자율성 회복에 나서야 할 것이다.
카프카의 <심판>에서 조세프 K는 결국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끝내 알지 못한 채 경찰 요원에게 가슴에 칼을 맞고 “개죽음”을 당하고 만다. 이유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한 천안함의 수병들은 “영웅”으로 추모되어 어딘가에서 기뻐하고 있을까?
이승렬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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