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다-팩션(Faction)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다-팩션(Faction)
  • 홍윤지 수습기자, 황혜정 수습기자
  • 승인 2007.04.10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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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역사도 대중맞춤형이다

‘주몽’, ‘대조영’, ‘황진이’ 그리고 TV 방영 예정인 ‘태왕사신기’까지. 최근 우리나라 역사가 새로운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사극드라마가 ‘팩션(Faction)’이라는 문화예술의 한 장르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
팩션(Faction)이란 사실을 나타내는 ‘fact’와 허구를 뜻하는 ‘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서,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새롭게 재창조한 작품을 일컫는다. 자칫 진실성이 결여되기 쉬운 픽션(fiction)작품과 딱딱해서 재미없는 팩트(fact)작품의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 모은 것이 바로 ‘팩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팩션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지지기반으로 지나치게 오락성을 추구하고, 상당부분의 허구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팩션물에 대한 사실성과 허구성의 논란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는 민감한 역사물에 있어서는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시청자들은 사극드라마의 역사적 내용을 신뢰하고 있고, 그것이 역사학습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사극을 통해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과연 현명한 행동일까?
이에 본지에서는 구체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품들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해결책을 탐구해 볼 필요성을 느꼈고, 학우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간담회를 진행했다.
<편집자주>

사회자: 팩션을 가미한 역사드라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해 봅시다.
신창호(이하 신): 팩션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무협지인데, ‘삼국지’ 같은 잘못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작품은 왜곡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런 작품들로 인해 역사에 대한 흥미를 가지는 것은 좋으나 인식의 오류가 생긴다.
이승우(이하 이): 예를 들어 ‘주몽’의 경우, 고구려 건국 배경 등의 역사를 작품을 통해 알게 된다. 역사 드라마가 도움이 되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신: ‘장희빈’과 ‘주몽’의 경우는 대중문화의 간판 아래 역사적 사실을 배제한 채 허구적인 요소를 너무 많이 가미하여 잘못된 역사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역사드라마는 역사적 의식과 인식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김란희(이하 김): 드라마는 대중성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므로 픽션을 가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최민석(이하 최): 역사는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대중성이 없다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점에서 팩션은 좋은 수단이 된다.
이: ‘주몽’은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대중에게 고구려사를 알린다는 점(대중의 확보)에서 팩션의 융통성과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
간담회 참가자: 상단 왼쪽부터 반지민(국어국문2), 최민석(정보통신4), 안희준 (기계4) 하단 왼쪽부터 이승우(국어국문2), 김란희(국어국문2), 신창호(사학2)
신: 그런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느냐가 문제다. 역사는 현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준다. 그러한 역사를 작가의 창조적 자유를 구실로 재구성한다는 것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사실성을 배제하고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상업성과 대중성의 조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역사를 현대의 잣대로 바라보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김: 드라마와 영화 등의 매체들은 어차피 허구다. 매체를 접하는 대중들은 허구라는 사실을 감안하고 보기 때문에 그 모두를 사실이라고 여기진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역사인식을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
반지민(이하 반): 대중의 흥미를 위한 팩션은 제작자의 이익 추구를 위해서 제작된다. 역사적 이야기만으로 대중들의 관심과 눈길을 사기란 힘들다.
재미없으면 보지 않는 관객들의 입맛에 맞추려면 허구가 가미될 수밖에 없다. 팩션이 기반이 된 영화나 드라마는 흥미를 유발하여 역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좋은 점이라 생각된다.
안희준(이하 안): 역사극까지 대중성의 잣대에 맞춰야 하는 걸까? 다큐멘터리나 역사관련 프로그램에서 사실을 다루면 될 것이고, 대중성과 재미는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최: 그러나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얼마나 보며, 그런 프로그램들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전체적인 역사적 뼈대에서 벗어나면 안 되겠지만 팩션을 통해 역사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신: 팩션은 역사 왜곡에 있어 그 도를 넘어선 듯하다. 그래서 수용자들이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반: 팩션은 예술장르이다. 작가는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수용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이용한 것이다. 팩션의 가치와 그 우수성은 인정해야 한다.
사회자: 이러한 팩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최: 팩션 작품의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는 것은 수용자들의 몫이다.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에서의 올바른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
이: 대중문화는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층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을 받아들일 때 수용자들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부지런한 추가적 탐색이 필요하다.
안: 실제와 허구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TV 시청을 할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작자들이 사전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 사실왜곡의 오류를 줄일 수 있고, 지식의 즐거움과 대중적 흥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팩션 붐은 인터넷 지식 검색을 쉽게 하는 정보화 시대에 지적 유희를 즐기면서 상상력에 의지해 낯선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문화소비자인 ‘대중’의 변화된 욕구로 인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팩션’ 사극은 다소 어렵게 여겨지던 역사를 일반 대중이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이면서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상업적인 목적으로 오락성에만 치우쳐 극적 갈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자의적 역사해석과 명예훼손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독자들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있는 자질이 부족하고, 그 결과 실제 역사에 대해 잘못된 역사관과 지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승희 교수(국어국문학)는 “작가들은 머리말이나 후기에 사실과 허구의 혼합물이라는 것을 밝히고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며, “제작사와 방송사에서는 팩션 작품의 영향력이 큰 만큼 책임감 있는 자세가 요구 된다”고 말했다.
한편, 수용자들은 다양하게 쏟아지는 역사 관련 영상매체를 올바르게 소비할 수 있도록 출연인물이나 묘사를 그대로 믿기보다는 그것이 실제 역사와 어떤 차이를 갖는지 스스로 확인해가며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 하겠다.

홍윤지 수습기자 adore60@ynu.ac.kr
황혜정 수습기자 vkwkak87@ynu.ac.kr
Tip : 국립국어원에서는 외래어 ‘팩션(faction)’의 우리말을 공모한 결과, 실제 없었던 일까지 보태어 새로 꾸며 낸 실화라는 뜻의 ‘각색실화’라는 우리말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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