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현장, 배심원이 뛰고 있다
국민참여재판 현장, 배심원이 뛰고 있다
  • 박슬기 기자
  • 승인 2009.05.06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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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1일 새벽 4시경, 대구시 북구 침산동의 한 아파트 상가 공용화장실. 이곳의 청소를 담당하는 A씨가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50대 여자의 변사체를 발견 해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사체로 발견된 50대 여인은 인근에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 씨(55). 김 씨의 얼굴에는 황색 테이프가 감겨져 있었고 사망원인은 과다출혈이었다. CCTV를 분석하여 잡은 용의자는 김 씨의 딸과 애정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던 이 씨(남28세)였다. 살인미수 전과가 있는 이 씨는 김 씨가 "더 이상 내 딸과 만나지 마라"고 다그치자 홧김에 폭행하고 방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씨는 '체포되기 전 먼저 자수를 했고 처음부터 살해할 마음을 갖고 저지른 일은 아니다'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만약 당신이 그의 죗값을 매겨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사건을 위한 재판에 당신이 배심원으로서 참여하게 된다면 과연 피고인 이 씨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 죄가 있다면 어떤 형벌을 내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대구지방법원(이하 대구지법)은 올해 2번째 국민참여재판에 이 사건을 맡겼다. 이 재판은 지난 13일 오전 11시에 열렸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 후보자들은 만 20세 이상의 법률이 정한 결격사유가 없는 시민 중 무작위로 선정된다. 배심원 후보자들은 총 90명으로 재판일 며칠 전 선정기일 통지서를 받는다. 선정기일 통지서는 법원이 재판일로 결정한 선정기일에 출석을 요구하는 우편물이다. 국민참여재판이 시범운영단계인 만큼 배심원으로서의 참여도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통지서를 받은 후보자들이 모두 출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날 출석한 배심원 후보자들은 20명 남짓. 대구지법 관계자는 "시행 첫 해였던 작년 대구지법에서 공식 집계된 배심원 출석률은 40.2%다. 이는 전국 18개 지방법원의 평균 배심원 출석률인 30.5%보다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최종 8명으로 결정되는 배심원 선정절차는 비공개로 진행

"배심원 후보자 1번 부터 차례대로 법정으로 들어오세요"

각 배심원의 이름을 사용하면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있으므로 재판과정 동안 이름 대신 추첨받은 번호로 호명된다. 번호를 받은 배심원 후보자들은 추첨을 통해 배심원으로 선정된다. 실제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은 예비 배심원 1명을 포함한 8명이다. 예비배심원은 재판이 시작되고 난 후 정식 배심원에게 사정이 생겼을 때 배심원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배심원으로 선정되는 과정은 보안상의 이유로 재판장과 검사, 변호인만 참여하고 모든 과정이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 날 배심원 후보자로 법원을 찾은 강옥순 씨(여56세)는 "비록 배심원으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며 "피고인에게 내 개인정보가 노출될까 걱정도 들었지만 신변보호가 잘 되고 있는 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 씨는 배심원석 대신 방청석에서 재판이 끝날 때 까지 자리를 지키는 열의를 보였다.

방청객도 재판에 간접참여, 재판의 폐쇄성 줄여

오전 11시 10분부터 공판이 진행된 제 11호 법정은 대구지법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전담하는 법정이다. 오전 공판은 검사와 변호인, 배심원단, 판사가 차례로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곧이어 배심원 선서와 함께 재판장의 재판과정절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공판과정에서 검사와 변호인은 배심원이 이해하기 쉽도록 '피고인, 살인 미수' 와 같이 기본적인 단어도 쉬운 풀어 말하기도 했다. 또한 파워포인트로 준비한 발표 자료를 재판장 석이 아닌 배심원 석을 향해 말했다. 이전의 관행대로라면 판사만 볼 수 있도록 대부분의 재판자료가 문서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로써 배심원뿐만 아니라 방청객도 재판자료를 공유하여 일반재판보다 개방적인 분위기였다. 오전 공판은 피고인의 난동으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정식 절차대로 무사히 진행됐다.

오전 공판 후에 배심원은 방청석과 분리된 별도의 출입구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장소 역시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 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화장실로 가는 잠깐의 이동도 청원경찰과 동행했다. 배심원 신변보호를 위해서다.

오후 1시경부터 시작된 오후 공판은 약 4시 30분까지 진행됐다. 중간에 3차례 정도의 휴식이 있었다.

"배심원 8명 중 예비 배심원은 배심원 4번 분입니다. 예비 배심원은 정식 배심원들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재판절차에 모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배심원의 평의(評議) 과정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재판장은 검사, 변호인의 최종 변론이 이어진 후 공판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야 예비 배심원을 발표했다. 자신이 예비 배심원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될 경우 공판에 소홀히 임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오후 4시 30분을 전후로 약 6시간에 걸친 공판 과정이 끝났다. 이어서 배심원은 재판장의 안내를 받아 지정된 회의실로 이동해 평의과정을 거친다. 배심원들은 대표를 정해 재판부에게 피고인 이 씨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그리고 유죄라면 어떤 형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이 날 평의는 약 2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각 배심원이 어떤 의견을 내놓았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개인 신변보호를 위해서다.

이 날 담당 재판부는 이 씨에 대해 징역 13년으로 최종판결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이 씨가 강도·살인 미수죄가 있는데도 살인을 저질렀다. 하지만 우발적으로 살인 범행을 저질렀고 자수한 점을 고려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배심원 7명의 의견이 무기징역에서 징역 12년까지 다양하고 평균 형량이 13년 6개월인 점을 참고해 징역 13년을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오후 7시가 가까워진 시각. 배심원들은 주위가 어둑해져서야 법원을 빠져나왔다. 총 10시간에 걸쳐 재판에 참여한 셈이다.

대구지법 관계자는 "원래 재판 시간은 제한을 두고 있지만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만큼 되도록 하루 안에 마치려고 하다보니 장시간 재판이 불가피하다"며 "최근 이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지법, 국민참여재판 활성화 위해 지원 확대

대구지법은 지난해 2월 12일 전국 최초로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한 데 이어 올해 지난달 까지 총 8건을 추가로 열었다. 그 중 재판의 담당변호인은 1건을 제외하고 모두 국선 변호인이 맡았다. 전국적으로도 국민참여재판은 대부분 국선 변호인이 맡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재판보다 준비과정이 꼼꼼해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변호인이 사건을 맡아 처리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과정에서 선임료가 오르게 된다. 이렇듯 긴 시간이 드는 준비과정과 높은 선임료는 사선(私選) 변호인과 일반 시민이 국민참여재판을 주저하는 요인으로 지적 되고 있다.

한편 국민참여재판을 늘리기 위해 전국 각 지방법원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을 전담하는 국선변호인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최근 대구지법도 담당국선 변호사 수를 기존 2명에서 4명으로 늘렸다. 담당 재판부도 1곳에서 2곳으로 확대했다.

대구지법의 국민참여재판은 이번 달 11일과 18일에도 열릴 예정이다.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다 많은 참여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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