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영봉
  • 편집국
  • 승인 2008.05.2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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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학교, 그러나 쉴 곳이 없다
“요즘은 천마로에 앉아 있는 사람이 없네”
천마로 잔디밭은 나날이 예쁘게 가꾸어지고 있지만 졸업한 선배의 말처럼 그 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탁 트인 천마로의 푸른 잔디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학생들의 모습, 왠지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천마로는 선배들이 추억하는 대화의 공간과는 거리가 있다. 그 대신 우리는 더 많은 실내공간, 대화하기 좋은 장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 허전한 기분이다.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던 날, 많은 학우들이 중앙도서관 입구를 향해 달려가 비를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중앙도서관 1층과 지하에 있는 의자는 이미 많은 학생들로 붐볐고, 오갈 데 없는 학생들은 삼삼오오 로비에 서 있거나 계단에 앉아 있기도 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씨와는 상관없이 머무를 수 있는 야외 벤치가 있다면 모든 학생들이 비를 피해 쉴 곳을 찾아, 실내에 있는 의자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아쉬움에 젖는 순간이었다.
이른 등굣길과 하굣길, 교내 방송을 들으며 여유롭게 앉아 있고 싶지만, 야외 벤치 어디에서도 방송을 듣기는 힘이 든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한데, 딱히 갈 곳이 없다. 100만평 캠퍼스에 갈 곳이 없다니….
학교 곳곳에 있는 편의점 앞 의자에는 캠퍼스 여기저기에 듬성듬성 설치되어 있는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이우리를 불쾌하게 만들고 그나마 놓인 야외벤치는 빗물에 젖어있고, 주변의 쓰레기통은 넘쳐 흐르는 쓰레기들이 사람이 앉을 자리까지 차지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주문해 먹은 음식물들이 흘러 여기저기 굳어져 있는가 하면, 그나마 좋은 자리는 흡연자들의 독점 구역이 되어버리니, 결국 ‘잠깐의 여유’를 포기하고 정처없이 걷게 된다.
졸업한 선배가 재학할 때와는 달리, 지금 우리는 더 많은 건물 안에서 더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삭막하게 느껴진다. 멋진 건물, 좋은 시설이 늘어갈 수록 답답해지는 건 비단 바빠진 학생들의 일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넓은 캠퍼스, 야외 공간에서 좀 더 여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강시간, 시원한 가을바람을 어디서 느껴볼지 곰곰이 생각하며 오늘도 캠퍼스를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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