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천마문화상 평론부문 당선작-회상(回想)을 통한 회환(回還)적 글쓰기
제35회 천마문화상 평론부문 당선작-회상(回想)을 통한 회환(回還)적 글쓰기
  • 편집국
  • 승인 2007.08.0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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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연(진주교대 국어교육4), 삽화 김수정(본교 동양화2)


1.회환되는 기억의 통로로서 글쓰기
한국 현대 소설은 1910년대 신소설이 등장한 이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현실로부터 외면되어질 수 없었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모방론자들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문학이, 그 중에서도 서사 문학으로서의 소설이 당대의 문제적 현실과 이에 당면한 자아의 갈등과 대립을 그려온 것은 비단 한국 문학의 역사뿐만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한국 역사의 굴레에 맞물린 시대의 현실이라는 것은 일제치하에서의 해방을 향한 몸짓이나 지식인의 고뇌 혹은 핍박받는 민중의 삶이었고, 이후로도 민족 내부의 계급간 대립이나 분단 문제, 군부독재 시대의 억압과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의 틀 안에서 이야기되고 있었다.
이러한 서사 문학의 거대 담론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지향한 90년대의 글쓰기였다. 장정일이나 김영하, 백민석, 박성원과 같은 젊은 세대의 작가들은 ‘낯설게 하기 기법’을 소설 속에서 충실히 재현하며 진실이라 믿고 있는 현실 세계에 대한 위선과 죄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거나, 구태의연한 목소리로 가치 전복된 세계를 이야기했다. 이를 비롯하여 그간 문단에서 비주류로 인식되었던 여성작가의 목소리를 90년대 문학판의 주류로서 당당하게 등극시킨 김현경, 은희경, 공지영등과 같은 여성 작가 군단으로 위시되는 이들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자 폐쇄적인 자기 틀 안으로 향하는 수렴적 글쓰기를 지향하였다.
이처럼 90년대 이후의 한국 소설은 모더니즘이나 포스트 모더니즘에 경도되어 지향점 없는낯설기만 한 자조의 목소리를 높여갔고, 경험의 단편에 의존하며 자폐적 공간에 유폐된 채 광장으로의 출구를 차단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자칫 거대 담론으로부터 개인이 해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질 수도 있으나 종국에는 자본주의라는 또 다른 거대 담론 아래에서 허무에 빠진 개인을 구속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마샬 버만의 저서에서 인용된「단단한 것은 모두 녹아 날아간다」는 구절이 가리키는 것처럼 반(反)관습적, 반(反)전통적 기법이나 기제는 그간 우리가 경시했던 전체 안에서 개개인으로,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여성의 정체성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하였다시피 출구가 차단된 회귀성 글쓰기는 종국에 정착하게 된 자궁 속에서, 차 오르는 양수에 어느 순간 숨이 막혀오며 더 이상 어떠한 코드도 낯설지 않게 될 시점에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민족문학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과의 논쟁이 최근에 와서 더욱 활발히 진행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서사성을 상실한 듯한 한국 소설의 90년대 흐름 속에서 태연하게 그러나 고집스럽게 리얼리즘적 글쓰기를 고수하며 내놓은 김소진의 작품들은 그래서 더 익숙하고 또 낯설게 다가온다. 이 ‘눈부시고 풍요로운 시대’에 웬 미야리 산동네 사람들이냐고, 소설의 이야깃거리가 될만한 테제도, 안티 테제 아닌 흘레꾼 아버지 이야기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김소진은 역사 속에 속한 소소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입심좋게 풀어 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또 한가지 90년대 리얼리즘 문학으로서 그의 소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전체성’ 지향하는 리얼리즘과 김소진의 리얼리즘이 구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리얼리즘이란 불합리한 구조를 지닌 사회 체제에 대한 고발이나, 민중에 대한 계몽·선동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용어 그대로 서민들의 삶의 현실을 ‘리얼’하게, ‘회상’을 통하여 ‘재현’하고자 채택한 문학관이었다.
90년대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창작되는 민족·민중 문학 계열의 리얼리즘 작품과는 달리 김소진 소설 속의 인물들은 식자들의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구호에 전도되어 있지도 않으며 오히려 먹고사는 문제에 집착해야 하는 서민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역사의 흐름과 무관해 보이는 이들이 사실상 역사 안에서 함께 희생되고 숨쉬어 왔다는 인식은 그가 그리고자 하는 ‘현실주의’ 문학에서 다양한 삶의 형태로 변주된다.
그가 그리는 변주된 삶의 형태가 ‘회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김소진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시사(示唆)를 던져준다. 90년대 이후 유행처럼 쏟아져나온 이문열이나 공지영 등 중견작가들의 작품 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향수 코드’는 현존하는 실존에 대한 지향점을 상실한 채 과거만이 하나같이 순수하고 아름다웠다고 말하며 그때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소진의 소설에서 ‘회상(回想)’은 향수를 자아내는 옛 기억으로 돌아가려는 코드가 아니라 오히려 남루했던 아버지와 우울했던 유년의 자의식을 ‘기억’해야만 하는 어떤 과제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회상’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회환(回還)하여 ‘현재’와 맞물리게 하는 통로로 자리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처럼 작가가 ‘회상’을 통하여 복원해 놓은 도처에 존재하는 소소한 개인들의 다양하게 변주된 삶을 통하여, 서사를 잃어버린 시대에 ‘삶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출구’로의 통로를 찾아보고자 한다.

2.회상, 투시된 기억의 거울
김소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철저하게 과거의 기억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화자는 오늘날 자신의 목소리를 빌어 과거를 회상하고 이야기를 복원하려 애쓴다. 여기에서 과거 지향은 향수를 자극하는 감성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동경의 대상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회상을 통해 복원한 과거에는 남루했던 아버지와 이를 부정하고 보상받으려 했던 도둑질이나 방화와 같은 어린 날의 몸부림, 그리고 어렵게 더부살았던 장석조네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토록이나 끈질기게 회상을 통한 글쓰기에 집착했으며, 이를 통해 무엇을 들여다 보고자 했던 것일까?
회상으로써 글쓰기는 다시 말해 과거를 ‘재인식’ 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작품 속의 화자는 과거를 완벽하게 기술 혹은 재현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3인칭도 아니며 지난 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종이처럼 얇은”, 그러나 “진저리칠 만치 끈질긴” 개인의 회상이 어디까지나 기억력의 한계와 왜곡으로 ‘재구조화’ 되어 인식됨을 전제한다면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결국 ‘기억의 반추를 통하여 현재적 자아를 되비춰 보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이처럼 현재적 자아를 되비춰 보는 행위는 ‘미아리 동네’ 라는 육체의 공간 안에서 정신적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형상화되어 ‘거기에 있어왔던’ 과거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아버지를 통해 투시된 ‘현존하는 나’를 다시금 확인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그의 소설 속에서 어린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아버지라는 존재는 언제나 나를 억누르며 내 존재를 보잘 것 없게 만드는 모습으로 자리한다. 그리하여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애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라는 끔찍한 다짐을 하게끔 된다. 이처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부정의 인식은 결국 아버지를 뛰어넘는 존재로서 거듭나려는 몸부림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전거 도둑」에서의 아버지는 한 평도 안 되는 구멍가게를 유일한 수입원으로 살아가는 가장이다. 어느 날 손해난 소주 두 병을 만회하기 위해 몰래 더 넣은 것을 밝혀낸 혹부리 영감 앞에서 아버지를 대신해 자신이 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변명을 하고 영감의 지시에 따라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아버지의 손에 뺨을 맞는다. 그리고는 영감의 수도상회에 잠입해 물건을 절딴내고 간판까지 작살내는 대담한 행동을 보인다.

나는 이상하게도 맘이 편하고 당당했다. 나도 모르게 입가로 번져 나온 미소를 단속하느라 손바닥으로 입을 몇 번인가 틀어막기도 했다. …… 혹부리영감의 격려를 받은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굽신거린 다음 또 한 차례 내 뺨을 기세 좋게 올려붙였다. …… 머릿속에서 뭔가가 맑아지는 느낌뿐이었다. 그리곤 투시해버리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의 눈 속에 흐르지도 못하고 괴어 있는 눈물을.
- 「자전거 도둑」111∼112쪽

이처럼 나는 초라하고 힘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 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과감한 행동력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죄를 뒤집어쓰며 어린애다운 두려움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당당함’에 미소를 단속하기도 하고 ‘무섭게 부풀어오르며 감각을 잃어버린’ 뺨의 감촉 대신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보호받아야 할 자신이 되려 아버지를 보호함으로써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를 부정하고 넘어섰다는 쾌감이 표출되는 것이라 보여진다.
그렇다면 이처럼 우울한 기억의 자화상을 목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도 그 기억의 거울을 들여다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오늘날 아버지가 된 ‘나’에게 또 다른 존재로 재인식 되고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따위는 죽어도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나는 이미「아버지의 자리」에서 어린애 마냥 출판사를 뛰쳐나와 고정된 돈벌이도 없이 식구들이 맘놓고 의료보험을 갖고 병원에도 못 가는 지경에 이르게 만든 ‘그 잘난 애비 노릇’을 하고 있다. 아내에게 ‘등신’이라는 말을 들으며, 어머니의 행상 보따리를 보며 결국 새벽 인력시장에 나서지만 “순 젬병같은 이가 걸치적대기만 한다는” 핀잔을 듣는다. 거기다 “아빠 모습이 창피해서 승미 아빠에게 나 좀 태워달라고 얘기했다”는 딸 세련에게 애비노릇 좀 하려고 양복을 빼 입고 모범택시까지 불러 기다리던 나는 더욱 당혹스러운 장면에 마주한다.
“세련아 아빠시니?”
세련이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여인을 올려보며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운전사가 다시 재촉했지만 나는 대꾸 없이 석고상처럼 굳은 자세로 서 있었다.
“이거 대낮에 애들 유괴하려는 미친 놈 아냐?”
운전수가 욕지거리를 던지며 신경질적으로 차를 몰고 스쳐지나갔다.
-「아버지의 자리」54쪽

어릴 적 내 자리에는 이제 아버지가 된 나를 부정하는 딸이, 그리고 그 무능력하던, 부정하고 싶던 아버지의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아버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 것인가”
결국 이 물음은 한 세대를 살고 간 아버지의 자리를 이해함과 동시에 ‘애비 노릇’을 먼저 한 아버지에게 정신적으로 의탁하고 싶어하는, ‘과거의 충족되지 않는 욕망으로의 회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거울 저편에 자리하는 과거 속 아버지의 모습을 투시하는 회상의 행위는 현재의 아버지로서 나의 존립 위치를 돌아보도록 회환하며 ‘나의 아버지-아들로서의 나, 아버지로서의 나-나의 딸’ 이라는 새삼스러운 자리에 불러세워 놓는다.

3.'반복되는 역사와 삶'의 기억에 대한 불러들임
역사의 변천의 주동 세력으로 비판받거나 혹은 옹호되며 주목받는 지배층도, 이에 대한 반체제층도 아닌 ‘그저 먹고 살기에 빠듯했던’ 서민들의 삶 속에서 역사란 무엇이며 역사의 반복·재생이 그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 위해서「신풍근 베커리 略史」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제목의 의미를 들여다보자. 찐빵 집을 운영하는 ‘신풍근’씨 라는 신씨 집안의 간략한 역사를 이야기하겠다는 의도일 터이다. 그러나 신풍근씨의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심상치 않다. 이름을 한자(漢字)로 풀어 짐작컨대 ‘풍’자는 허풍(虛風)에서의 풍을, ‘근’은 근(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거기에다 역사(歷史)도 아닌 약사(略史)를 이야기하겠다는 의도는 보편성을 띤 개개인의 ‘구체적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려는 소설 쓰기의 기본 자세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전달의 편의성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제목에서 드러내는 것은 할아버지를 통해 전달되는 신씨 집안의 뿌리(根)에 대한 역사가 감추고 싶은 부분의 생략(省略)이나 화자에 의한 일종의 과장 혹은 허풍으로 점철될 것이라는 암시를 내포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배커리’라는 용어에 주목해보자. 빵집도 아닌 베이커리(Bakery)도 아닌 ‘베커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한국 전쟁 직후 미군의 밀가루 배급으로 찐빵 장사를 시작한 할아버지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대국은 대국이지. 자고로 먹을 빵이 풍부하면 나라의 기틀이 절로 서고 그게 바로 체제고 사상이고 질서를 낳는 거 아니겠니? 빵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쪽은 옳게 마련이야 … 이 할애빈 그래서 미국을 좋아하게 됐어”
- 「신풍큰 베커리 略史」 68쪽

할아버지는 “미국 애들 말 애써 배우고 옷도 입맛도 따라가면서 또 어쩔 땐 욕을 하는” 이상한 세태를 되려 나무란다. 그러나 난민국에게 ‘먹을 길을 틔워준’ 미국이 내세운 자본주의 경쟁에서 도태되어 재개발 대상 지역으로 내몰리고야만, ‘어설프고도 소외된 근대화’를 경험한 할아버지의 빵집은 ‘베커리’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찐빵은 오늘날 여기저기에 생겨난 ‘ㅇㅇ베이커리’ 안에서 화려한 조명 밑에 생소한 이름표를 달고 진열된 채 부식으로 제공되는 빵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빵’이다. 할아버지가 만들어 왔고, 또 현재에도 만들고 있는 빵은 그 옛날부터 “오롯한 끼니 대용”으로서 제공되던, 그리하여 오늘날 아직도 철거 직전 산동네에서 ‘동전과 꾸깃꾸깃한 종이돈’으로 바꿔지는 ‘후한 인심이 피어오르는 탐스러운 하얀 찐빵’인 것이다.
그러면 산동네 배커리 신풍근씨가 불러들인 기억 속에서 재생되는 한 집안의 약사(略史)를 들어보기로 하자.

나(재덕)는 학보사 기사인 친구(현경)이 부탁을 받고 빵집을 운영하는 할아버지를 취재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현경이 기획한 학보의 기획은 ‘민초에게 듣는 이야기’로 평범하면서도 거친 삶을 꿋꿋이 살아온 어른들의 살아온 내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겠다는 의도였다. 이에 나는 울 할아버진 ‘우익’이라는 전제를 던지며 마지못해 허락을 하고 현경은 녹음기를 들이밀며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요청한다.
여기에서 ‘기층 민중들이 온몸으로 겪어온 우리의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로 풀어 기사화 하겠다’는 현경의 의도에는 일종의 전제간 모순이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기사화’는 자료의 객관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설령 그것이 정보 제공이나 르포 형식이 아닌 읽을거리일지라도 객관성을 잃었을 때 기사 보도는 그 자체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온갖 고충을 겪으며 살아온 한 노인의 회상을 통해 재생되는 기억이 보도의 자료로서 객관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진실에 대한 개인의 도덕성을 떠나서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은 인간의 뇌 속에 고스란히 박혀있는 과거의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통한 재구성’을 전제로 한다. 이처럼 인간의 기억이란 그 누구도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시한다면 앞서 제시한 두 전제 사이의 모순이 상충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모순들 사이에서 현경이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녹음기를 들이대는 행위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현경이 녹음기를 빌려오기 위하여 약속 장소에 늦게 나타난 것이나 취재 중간에도 마이크를 귀에 꽂아 녹음기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녹음 테입을 갈아 끼우며 계속 하는 행위들에 비추어볼 때 녹음은 단순한 취재의 수단을 넘어선 ‘역사의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보여진다.
그 역사의 기록 속으로 들어가 보면 할아버지의 기억은 동학에 입도하여 일만의 군사를 이끌었던 고조 할아버지, 농민군을 따라다니며 쇠가죽 솥으로 전쟁통에 빵이나 개떡을 만들어 기운을 돋우었었던 고조 할머니 때부터 재생된다. 세대인 할아버지의 무릎의 파편은 “인천 상륙 전 때 격렬하게 저항하는 괴뢰군 잔당을 깡그리 소탕하느라 대검 자루 하나 입에 물고 한강 도하 작전을 펴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랑스런 가문의 역사는 재덕에게 있어 이미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상태이다. 연대 사태 때 사수대였던 재덕이 단순 가담자로 분류되고 경찰서에서 훈방되던 날, 손을 써준 작은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다.

“ 네가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다니… 나는 거기서 우리 가족사의 우울한 초상을 목격했다. 오욕스러운 것이지. 흥, 유구한 빵집의 역사… 그 집안의 아들들 후후.”
- 「신풍큰 베커리 略史」 82쪽

작은 아버지를 통해 알게된 가족사의 우울한 초상에서 재덕의 고조 할아버지는 “난세에 뭔가 출세해보기 위해서 분탕질의 선두로 나선” 반란 농민군 선두였으며 고조 할머니는 “아전과 사령들의 노리개감이 분명했을 관노 출신”이다. 거기에 증조할아버지는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에게 붙어 입에 풀칠을 하면서 독립군 때려잡는 일” 에 앞장서다가 밤 골목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으며 할아버지는 “보초 근무 중 실족해서 무릎 골절상을 당한 것”으로 당시 전쟁 공포에 의한 병역 의무 기피 혐의가 적용돼 군사 재판에 회부된 서류가 증거로 남아있다. 그리고 우울증으로 요절한 재덕의 아버지. 그는 71년 월남전에 참전해 훈장을 받았지만 고엽제 휴유증에 과민 반응하여 권총으로 자살을 한 인물이다.
갑오년 동학 농민운동부터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을 거쳐 월남전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굴레와 맞물려 돌아간 개인의 삶에 드리워져야 했던 상처, 이것이 남긴 집안의 우울한 초상을 이제는 검사가 된 자신의 대(代)에서 끝맺으려 했던 작은아버지에게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든 모습이 뚜렷이 잡힌” 재덕의 사진은 결국 또다시 반복 재생되는 ‘역사속에 속한 개인의비극적 대물림’ 에 대하여 자조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집안 역사에 대한 진실을 다 알게된 뒤에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현경을 보며 “그 마마병의 전통이 지금 이렇게 맛좋은 찐빵으로 다시 태어난 거로구나 히히” 라는 너스레를 떨어가면서까지 할아버지의 약사(略史)에 암묵적 동조를 보이는 재덕의 태도는 어떻게 받아들어져야 할까?
이는 할아버지의 기억 그 자체를 민초들의 삶의 역사로서 받아들이고 인정하겠다는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바로 여기에서 또 하나의 소설 쓰기의 새로운 출발점을 명시하며 작품(소설)을 또 하나의 ‘삶에 대한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빵을 많이 만들어 내는 쪽이 옳다”고 말하는 할아버지나 “하루 벌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판에 대학생들은 데모는 뭐 할라고 허는가…”하고 묻는 동네 사람들에게서 의식화되지 않은 대중의 우매성 대신 ‘손자와 맞설지 모르는 전경에게 마음 짠해하며 찐빵을 나누어주는’ 인간애를 발견하거나 ‘다리 몽댕이가 분질러진 삼족구’를 둘러싸고 실갱이를 벌이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에서 번뜩이는 생명력을 감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도처에 숨쉬고 있는 ‘모’풍근 씨들의 비루하지만 꿈틀거리는 삶의 진실을 발견해낸 그의 소설은, 결국 우리의 역사를 증거에 의해 분석하고 낱낱이 파헤쳐 규명하는 것이 아닌 역사 속에 속한 인간과 그들 삶의 관계 속에서 받아들이고 인정하겠다는 또 하나의 역사의 기록으로 자리 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4.반복되는 기억의 역사-회상의 이중구조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재생되는 기억의 형태는「쥐잡기」에서도 드러난다. 앞의 작품과 다른 점은 쥐잡기에서 회상의 형태가 어느 한사람을 통해 그치지 않고 아버지의 기억을 훗날 아들이 다시 회상하게 되는 ‘이중구조’를 지닌다는 점이다. 
나 (민홍)은 민주화 투쟁을 경험했으며 90년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내’가 아버지의 기억속으로 침윤하게 되는 것은 매일 마주하게 되는 ‘영정사진’과 아직도 여전히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쥐‘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막상 영정에 쓸 사진을 한 장도 구할 수 없어 몹시 당혹스러웠다. 육십하고도 세 해를 넘겨 살았던 삶이건만 아버지는 그 흔한 사진 한 장 이 땅에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 「쥐잡기」 7쪽
 
영정 사진 하나 구할 수 없는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는 아버지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맞았다는 것 이외에도 생전에 “그 흔한 사진 한 장”남길 수 없을 만큼 피폐한 삶을 껴안고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는 여타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능력하여 어머니 앞에서 “이렇다 할 말 한마디 못하고 시르르 죽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이란 희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유일한 매개체인 사진은 단 한 장밖에 없으며 이것이 ‘희미하게 어룽거리’고 있다는 것은 내가 아버지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통해 듣게된 그의 과거에 대한 ‘흔적’만을 기억하고 있다는 기억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매일 방안에서 영정사진을 보는(아니 어쩌면 보아야 하는) 것이 희미하지만 지워버릴 수 없는 아버지의 기억을 끈덕지게 달고 살아야 하는 일상화된 행위라면, 쥐와의 “추악한 전쟁”을 시작한 것은 희미했던 아버지의 기억과 현재 나를 억누르는 기억 사이에 잠재되어있던 필연의 매듭을 이어주는 사건으로 등장한다.
일년 전 아버지의 가게에 나타난 쥐새끼 한 마리는 온 집안을 유린하여 아버지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간다. 이에 민홍이 어머니에게 반(反)하는 운동권 노래를 부르던 기타줄을 이용하여 덫을 놓지만 되려 일만 그르치게 된다. “이 씨를 말릴 함경도 종자들아”라는 어머니 철원네의 악다구니는 체제 안에 속한 남성들이 남편으로, 아들로서 인정받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서글픔을 자아낸다. “고향 산천, 부모 처자식 모다 두고” 떠나왔지만 누구도 반기지 않는 이녘에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조는 결국 잡은 쥐에게 달군 연탄집게를 들이대는 가학적 행위로까지 이어진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쥐에 그토록 집착하면서까지 가학적 분노를 분출했던 것일까?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전이시켜줌으로써 훗날 아들이 아버지의 기억을 회상할 수 있게 만든다. 전쟁포로였던 아버지는 거제도 수용소에서 흰쥐를 키우고 남·북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대치적 상황에서 우연히 흰쥐가 걸음을 떼는 모습을 목격하고 이남 쪽으로 선택을 한다. 

내이가 왜 그랬겠니? 여기 한번 나와 있으니까니 못 가갔드란 말이야. 어딜 간들 하는 생각 때문에 도루 못 가갔드란 말이야. 웬 쥐였나요? 글쎄 모르지……암만 생각해 봐두 꿈 같기두 하고……정짜루다 돌아가고 싶은 건지 그럴 맘이 없는 겐지   
-「쥐잡기」 24쪽

그 당시 포로들이 남·북을 선택한 기준은 “꼭 사상이 벌개서도, 허예서도” 아니었다는 말을 흰쥐의 상징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비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흰쥐는 당시의 선택이 어떤 색깔론적 이데올로기에 좌우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무정부주의의 이념적 선택에 따른 회색도 아니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들은 그저 “앙칼지게 불어제치는 호각 소리”에 놀라 뒤죽박죽 오가며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에서 개인적 안위도, 북의 처자식을 생각할 경향도 없이 선택을 감행해야 했고 그 선택에 대한 아버지의 삶은 훗날 ‘나’에게 있어 “앙상함이었고 가슴 답답한 세월의 무게“의 화석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기럼 니눔이 가믄 어딜 가갔다는 게야. 도대체 어딜 가갔다는 게야”
  - 「쥐잡기」 26쪽

흰쥐를 따라 이남으로 온 아버지가 혼을 다해 잡아놓은 쥐에게 해꼬지를 하며 내뱉는 분노 섞인 혼잣말은 자신을 이리로 향하게 이끈 흰쥐에 대한 원망으로, 앞으로 남은 날에도 나아갈 곳 없는 자신에 대한 자조로, 시대의 비극에 연루된 자신의 우울한 초상을 닮아버린 아들에게 향하는 꾸짖음으로, 앞으로 나타날 새끼 밴 암컷 쥐에 대한 마지막 경고로 소설 속에 ‘쟁쟁하게’ 남아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나를 짓누르고 있는 쥐는 어떠한가? “기름병 들고 불구뎅이 속으로까지 뛰어들었다는 애가” 그깟 쥐 하나를 못 잡는다고 면박을 받은 나는 “버거운 벳구레”를 추스르며 느린 동작으로 문턱에 올라서는 쥐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의 일격은 “빈틈없고 대담한 산술”로 위장한 쥐의 꼬리만 설핏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이 순간 “느꺼운 감정”과 함께 환기된 “모르지 맹탕 헛것이 눈에 보였는지두”라는 아버지의 늘쩡한 음성은 나와 아버지 사이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그 어떤 기억’을 공유하게 만든다. “등어리 털이 벗겨질 만큼 오랫동안 목숨을 부지한 새끼 밴 암컷”이라니…… 그럼 아버지가 보았던, 내가 보았던 헛것일지도 모르는 실체들이 다음 세대의 아버지 혹은 나와 대치되는 뱃속의 쥐로 또 다시 되풀이된다는 말인가.
아버지의 기억을 오늘날 내가 다시 회상하는 ‘회상의 이중구조’는 쥐와 관련된 아버지의 기억이 6·25와 관련된 아버지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화 투쟁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나(민홍)에게도 새로운 시대적·역사적 상황과 맞물린 형태의 쥐로 등장하여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김소진 소설에 있어서 ‘기억’이란 과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회상을 통해 거슬러와 현재로 회귀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는 나’ 와 관계 맺으며 새로운 기억으로서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5.탄생과 변태(變態)의 공간-'부엌과 다락방' 
「부엌」에서는 ‘부엌’과 ‘다락방’이라는 자궁과 외피(外皮)의 공간이 등장한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성충이 되기 위하여 한번에서 여러 번의 탈피(脫皮)를 감행해야 하는 것은 「부엌」에서의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부엌의 어둠 속’에서 태어나 ‘차디찬 부엌 바닥’위에서 세상과 을씨년스러운 첫 대면을 한다. 물론 당시 상황에 대한 회상은 나의 기억이 아닌 당시 여섯 살 난 ‘누나’의 기억에 의한 것이다.

“왜 내가 도마 위에서 태어났나구?”
“그야 모르지…… 내 기억이 틀리는지도. 그냥 기억일 뿐인데. 아마 맞을 거야”
                                      
- 「부엌」 129쪽
 
하지만 누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기억’이란 확실성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앞서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가지는 망각과 왜곡이라는 한계점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의 관점에서 ‘재구성’될 수 있기에 ‘현재적 의의’를 지니는 것으로 ‘승격’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여우가 세 번 길게 목청을 빼고 울었다는” 화자의 허풍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청자를 비롯한 독자들은 이미 성숙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탄생 과정을 거친 나는 “체질적으로 부엌을 편안해” 하며 “연탄불의 희미한 혼기가 살갗에 와 닿으면 등골이 녹아 내리는 듯 쩌릿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자신이 태어난 부엌을 모태의 근원인 ‘자궁’으로 인식하고 아늑했던 그곳으로 회귀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을 멈추려는 나에게 모체로의 회귀를 방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엄마’이다. 반면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절절 끊는 노름방에서 화툿장을”까고 있었으며 “그들이(애비들) 설령 돌아와 있었다 해도 부엌에서 할 일이란 도무지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아버지라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남성의 존재는 ‘부엌’이라는 신성적 공간에 처음부터 발 디딜 틈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나를 태어나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성숙을 위한 유보(留保)의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게 조력하는 역할을 한다.      
너 사내 자식이 거기서 뭐 하고 있니? 
…… 엄마는 갑자기 손에 들고 있는 냉수 대접에 입을 대 볼을 한껏 부풀린 다음 세 번 내 얼굴에 물을 뿜어대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주문처럼 중얼댔다.……엄마가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짓고 있는 모습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 「부엌」 135∼136쪽 中

엄마의 “섬뜩한 귀기가 서린” 표정을 본 나는 이후로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또 다른 유폐의 공간으로 택한 곳은 ‘다락방’이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변소 가는 시간마저 줄인 채 다락방에 기거하는 ‘나’의 생활은 애벌레가 성충이 되기 위하여 먹는 것도 중단하고 안정된 곳에서 용실을 감고 죽은 듯 대기하고 있는 번데기의 과정과 상통한다. 즉 다락방은 현재 나를 둘러싼, 그러나 언젠가는 탈피(脫皮) 해야 할 외피(外皮)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 정신의 탈피 시기는 곤충의 그것처럼 때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한동안 부엌을 얼씬도 못했던 나에게 그곳에 대한 원초적 욕망을 환기시키는 사건이 생겨남으로 인해 그 시간은 지체된다. 그러나 그 원초적 욕망 속에는 자궁으로의 회귀 본능과 동시에 외피를 벗어나려는 인간 성장으로의 자연스러운 욕망이 동시에 꿈틀거린다. 그 이중적 욕망의 원천이란 다락방 바닥 틈새로 부엌에서 목욕하는 누나의 모습을 보게 된 일이었다.
 
뽀얀 살결이 눈에 들어왔다. 엉덩이 같았다. 나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나는 겨드랑이보다 약간 낮은 곳에서 막 부풀어오른 꽃 봉우리를 똑똑히 보았다. 누나의 벗은 몸뚱이가 그 꽃봉오리 속으로 아득히 멀어져갔다. 갑자기 누나가 갓 태어난 아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 누나가 아기처럼 한없이 작아져 태아를 거쳐 생명체 이전의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는 환상에 젖었던 것이다.     
  - 「부엌」 137∼138쪽 中

14년전 내가 태어나 “부뚜막 위에서 덜겅덜겅 끓고 있는 물”로 목욕하던 부엌에서 누나는 지금 목욕을 하고 있고, 나의 탄생을 바라보던 누나의 자리에서 나는 부엌을 훔쳐보고 있는 상황의 반전이 일어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두 가지의 상반된 욕망’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데 그 첫 번째는 여성에 대한 성적 환상에 눈뜨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젖가슴”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숨이 꽉 막히며 현기증과 함께 내 머릿속을 바짝 태워줄 열꽃을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 분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급작스러운 욕망을 받아들이기에 미성숙 한 나의 부적응 양상은 ‘반발적 욕망’과 ‘과거의 욕망에 대한 회귀’로 동시에 나타나며 누나를 태아 이전의 생명체로 인식하는 환상에 젖게 되는 것이다. 전자의 급작스러운 욕망에 노출된 나는 급기야 “거기서 성장을 멈추고 언제까지나 다락방의 아이이자 부엌의 아이로 남고 싶다”는 정신적 퇴행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한편 누나를 통한 ‘부엌 엿보기’로 조짐이 일었던 열꽃은 남편의 주먹 공양을 피해 우리 집 부엌으로 숨어든 필례가 그녀를 찾아온 남편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사춘기 소년의 ‘참을 수 없는 열기’로 확장된다. 이렇게 여름이 지나고 들려온 필례의 태몽 소식은 부엌이 또 하나의 ‘생명 잉태’의 신비적 공간임을 암시하며 필례의 남편은 그래서 그곳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유일한 남성으로 그려진다.
부엌에서 다락으로 나를 이끈 대상의 주체가 ‘엄마’ 였듯이 다락에서의 외피(外皮)를 탈피(脫皮)하고 외부 세상으로의 소통할 것을 재촉하는 대상 역시 ‘엄마’ 이다. 찬바람이 나도 내려오지 않는 나를 보며 만만치 않은 비용의 ‘굿’대신 허한 기를 보충하는데 좋다는 ‘오리 피’를 받아 먹이기로 한다. 나의 ‘탈피의식(脫皮儀式)’은 “집에서 키운 짐승의 목도 한번 비틀어본 적 없는 알량한 아버지”를 제외한 채 어머니를 비롯한 동네 여인네들의 때아닌 축제로 분위기로 이어진다.
과거로부터 다시 환기된 상황. 내가 태어나 올려졌던 도마 위에는 오리가 붙들려 있고 나의 탯줄을 끊었던 칼은 도마위로 박히며 ‘오리 피’를 선사한다. 이때 눈을 질끈 감고 들었던 도마 위로 박히던 칼날의 둔탁한 소리는 나의 정신적 탯줄을 끊는 동시에 의식을 깨우는 ‘공명음’이 아니었을까?
그 오리 피 덕분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며칠 뒤 나는 몸이 자꾸만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 가벼움 뒤를 따라 일주일 가량 비몽사몽간을 헤매게 만든 신열이 내 몸을 파도와 같이 덮쳐 점령하고 지나갔다.     
  - 「부엌」 147쪽
 
이 신열이 가시고 나면 어느덧 “고소 공포증”환자가 되어버린 ‘나’는 “멀미나는,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바깥 세상”을 향해 다락방 문을 열고 내려갈 수 있을까?

6.성장과 희생의 메타포-'첫 눈'
‘탈피의식’을 치르고도 아직 바깥 세상으로 내려가기를 주저하는 ‘나’를 다락방에서 끌어내린 건 대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첫눈’이었다. 누군가 첫눈을 뭉쳐 던진 것이 다락방 비닐 봉창에 부딪치며 ‘퍽’하는 소리를 내고 이는 오리의 목에 박히던 칼날의 둔탁한 소리보다 더 큰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 소리는 나에게 “멀게만 느낀 바깥 세상이라는 게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며 문득 “다락방이 좁아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탈피를 재촉하는 공명음’으로 확장된다.
 
아주 오랜만에 어떤 강렬한 냄새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역겨움과는 거리가 먼, 아주 상큼하면서도 오랫동안 빈 공간으로 남아 저항하던 위장 속을 잠시도 참을 수 없는 허기로 꽉 채우는 냄새였다. 다름 아닌 틉틉한 청국장 냄새였다.          
 - 「부엌」 148쪽
“엄마. 그거 인(이리) 줘. 나 밥 다 먹을래!”                  
- 「부엌」 149쪽

‘탈피를 재촉하는 공명음’이 몸 안의 세포 곳곳에 전달되면서 감각은 일제히 되살아난다. ‘청각’이 세포들을 일깨웠다면 ‘후각’은 새롭게 회생된 감각의 세포들에게 에너지를 제공하고 자 하는 강한 욕구를 생성시킨다. 그렇게 육체적 감각 세포의 에너지는 ‘밥’으로 정신적 감각 세포의 에너지는 ‘첫 눈송이’로 충족될 수 있게 된다.
 
이 성장과 회생의 메타포로서 ‘첫눈’의 상징성은 「첫눈」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부엌」에서 필례와 털보는 이전 작품집인 「자전거 도둑」의 「첫눈」에서 “해적 선장 같은 시커먼 안대와 이마에는 항상 소금 맞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듯한 혈관이 도드라진” 그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인하여 희화화되는 이봉학(李鳳學)과 송탄댁으로 이미 형상화 된 바 있었다.
봉학은 지난 여름 썩은 밀가루가 배급된 것과 관련하여 주동자로 ‘몰려’ 억울한 징역살이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이에 사건 당시 무작위로 뽑혀 경황없이 봉학의 범행 사실을 입증하는 진술서에 도장을 찍은 아버지는 ‘완전히 겁먹은’상태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 “행실이 실허지 못한” 사라졌던 송탄댁이 봉학이 돌아오는 날에 맞추어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그의 등장을 기다린다. 특히 나는 과거에 우리 집 부엌 구멍을 통해 송탄댁의 목욕하는 장면이나 부부싸움 하는 장면, 부부의 정사 장면을 지켜본 ‘전과’가 있는 터라 웬지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가슴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봉학이 쌍과부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어떤지 사정을 보고 오라”는 아버지의 부탁 삼아 막걸리를 받으러 그곳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주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하던 ‘윤기를 잃은 이마, 사정없이 늘어진 얼굴 근육, 흐려진 눈동자’는 이미 예전에 보았던 봉학의 형상이 아니다.
“아버지는 어째서 이런 사내는 두려워하는지 차암……”
내가 알고 있던 세계와 마주한 현실 세계와의 부조화, 그곳에서 나는 내가 한층 자라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성장을 알리는 메타포는 아이들의 요란한 발짝 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야, 야 눈이다!” 이 첫눈을 보며 성장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술 주전자 뚜껑을 꼭지를 기울이는 일이다.
 
따스한 기운이 온몸으로 번져나가는 듯 하더니 누군가가 양어깨를 꽉 움켜쥐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좋은 느낌이었다.…… 난 흐뭇한 미소를 뛰워올렸다.  
 - 「첫눈」 27쪽
 
그러나 이 첫눈은 나의 성장의 메타포로만 출현한 것이 아니었다.

누님 첫눈입니까? / 그려, 따신 방구들 생각나지? / 야…… 
마누라 무르팍 베고 누워서 만시름을 한번 잊어보라구. 그게 사람 사는 맛이야. 그 연장통은 이리 주고 댐에 찾아가. / 그럴까요               
  - 「첫눈」 27쪽

마을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과 아내에 대한 분노는 ‘첫눈’을 본 순간 아내와 따뜻한 방에 기거하고 싶다는 그리움의 정서로 환기된다. 하긴 봉학은 곤경에 빠진 마을사람을 곧잘 나서서 도와주던 사람이 아니었는가? 이처럼 첫눈은 인간 본연에 내재된 ‘따뜻한 삶’에 대한 지향 기제로 회생의 메타포로 작용하고 있다.

7.새로운 소설 쓰기를 향한 회유(回遊)로의 움직임
첫 번째 소설집에 실린「쥐잡기」에서부터 두 번째 작품집 속의「고아떤 뺑덕 어멈」을 거쳐 마지막 소설집에 실린「목마른 뿌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속에는 이북에 아내나 자식을 두고 온 ‘아버지’가 등장한다. 북쪽의 가족에게 그리움과 죄책감을 느끼는 이런 아버지를 보며 나는 때로는 ‘연민’을 표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자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쥐잡기」에서의 ‘나’는 그것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역사의 굴레 안에 속한 개인의 아픔’이라는, 일반화된 감정이입을 통하여 아버지를 이해한다.「고아떤 뺑덕어멈」에서는 북에 두고 온 아내 ‘최옥분’을 닮은 약장수단의 ‘뺑덕어멈’ 때문에 상사증을 앓는 아버지를 위해 두 사람의 잠자리를 주선하게 된다. 이때의 상황에 대한 서글픔과 폭력적 충동은 그러나 아버지의 눈빛에서 ‘두고 온 아내의 환영을 잡으려는’ 눈빛을 보면서 ‘연민’으로 전환된다.
「목마른 뿌리」에서의 이와 같은 상황은 단순한 과거의 아픔의 기억이 아닌 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문제로 그려진다. 통일이 된 가상적 상황에서 나’는 북쪽의 이복형과 해후를 하지만 아버지라는 같은 뿌리에서 가지친 ‘희미한 끈’은 밋밋하기 그지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하기야 이제 얼마가 지나면 ‘살부비며 살았던 이산가족’이 상봉해 부둥켜안고 설움의 눈물을 자아내는 광경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비춰질지도 모를일이 아닌가.
형님이 온 이유는 다름 아닌 얼마 전에 세상을 뜬 형님의 어머니 ‘최옥분’씨의 유골을 아버지의 무덤 옆에 묻기 위해서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단호하게 “그 자리는 내가 죽으면 기어 들어갈 자리”라며 쐬기를 박는다.
형님과 나 사이에도 역시 아버지를 가운데 둔 이중적 애증(愛憎)이 공유되고 있다. 형님에게 있어 아버지는 혈육적 그리움인 동시에 그의 월남으로 인해 온 가족이 ‘동요계층’으로 분류되어 변두리 삶으로 쫓겨나 살 수 밖에 없었기에 원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애비’라고 부를 사람은 있었지만 “마음의 잔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최옥분’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간 그는 나를 철저하게 ‘서자 의식’에 휩싸이게 하는 대상이다. 이러한 애증의 공유는 단순히 ‘형님과 나’라는 개인적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이게 순 생채기투성인 우리 역사의 맨 얼굴”이라는 한층 일반화된 역사의식으로 환원된다.
그렇다면 형님이 북쪽에서 집안 대를 이어 ‘당(黨)몰래’ 키웠다는 장뇌는 무엇인가.
 
그 장뇌 한 뿌리가 제대루다 크기 위해서는 짧게는 이십 년에서 길게는 오십 년까지 세월을 잡아먹는다는 것을. 그러니 그 영물을 키우는 일이 어디 한 대(代)에서 끝날 일이었겠는가를 말이우다.
-「목마른 뿌리」 328쪽

‘몰래’ 키웠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부담과 함께 어떤 의식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장뇌 뿌리를 키우는 일이 그동안 갈라졌던 한민족(韓民族)의 뿌리를 복원하는 일이라고 상정한다면 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끈질긴 시간과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형님과 나는 큰어머니(최옥분)의 유골 묻는 일을 성급히 추진하는 대신 ‘응어리가 풀릴 시간’을 갖고 어머니의 이해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김소진의 소설에서 나타난 ‘통일’은 한 핏줄이라는 ‘뿌리’의 복원을 통해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전망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의 아버지는 더 이상 과거의 기억으로 인하여 나를 ‘우울한 자의식’에 사로잡히게 하는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과거의 한 개인은 한 집안의 중심에 박힌 뿌리로 존재하며 (여전히 그것이 나약한 뿌리로 묘사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가지쳐진 ‘남아있는 뿌리’들에 대한 보다 ‘현실적 차원’에서의 문제 접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등단작 「쥐잡기」에서 시작하여 네 번째 작품집을 내기까지 그의 작품 속에서 변하지 않는 화두는 ‘아버지’였으며 화두의 형상화 과정에서 ‘끈덕지게도’ 놓지 않고 있던 글쓰기 형태는 기억을 통한 회상적 글쓰기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마지막 작품집에서 「목마른 뿌리」라는 통일 상황을 가정한 ‘미래 지향적’ 글쓰기를 시도한 것은 그의 글쓰기에 생긴 어떤 ‘변화의 조짐’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변화에 대한 모색의 몸짓은「목마른 뿌리」가 발표된 이듬해에 발표된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현재의 ‘나’는 여타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떠나게 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기억의 ‘회환(回還)’이 단순한 ‘회상’을 통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그 기억의 공간을 찾아 떠나는 ‘능동적 몸짓’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재개발을 앞둔 ‘미아리 셋집’에 겸사겸사 다녀오기로 한다. “재개발 정보를 듣거나, 아버지 영정을 다시 꺼내오거나, 셋집 사내를 만나 보일러 수리비를 건네주며 다독거려주려고” 라지만 실상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종이처럼 얇은 장석조네 집에 대한 기억’이다.
어릴 적 나는 정초에 요강이 깨질 것을 조심하는 어머니의 걱정의 뒤로하고 새벽에 오줌을 갈기러 나왔다 실수로 욕쟁이 할머니의 짠지 단지를 깨뜨리게 된다. 순간 환상적이던 흰 눈빛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변하게 되고 이 소년이 할 수 있는 ‘기발한’ 일이란 깨진 단지를 눈사람 속에 집어넣는 일이다. 그러나 눈사람과 나 사이의 비밀이란 “반나절만 지나면 오후의 찬란한 햇빛 아래 만천하에 드러나게 마련인”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루동안의 가출을 감행한 내가 ‘연탄집게 세례‘를 기대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평소와 다름없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석조네 사람들과 엄마, 그리고 깨끗이 치워진 눈사람이었다.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짐작하고 또 생각하는 세계하고 실제 세계 사이에는 이렇듯 머나먼 거리가 놓여있었던 것이다. 그 거리감은 이 세계는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깨달음, 그러므로 나는 결코 주변으로 둘러싸인 중심이 아니라는 아슴프레한 깨달음에 속한 것이었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29∼30쪽
 
깨어진 항아리, 새롭게 대면한 세상, 이 앞에서 눈사람 속에 단지를 감추거나 하루 동안의 가출의 감행하는 ‘나’의 행위는 「부엌」에서의 ‘내’가 쉽사리 다락방을 내려오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나’는 오랫동안 유폐되어있기 보다는 새로운 세계에 직면하여 현실적인 ‘나’의 존재를 깨닫고 확인하는 것을 택한다. ‘흰’ 눈사람 속의 깨어진 ‘검은’ 항아리는 그 시각적 대비에서 그렇듯 깨진 항아리를 통해 자각한 현실 세계가 환상적인 흰빛으로 감춰질 수 없는 것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깨진 항아리 조각은 어릴 적 나의 기억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재개발이 이루어지기 전 찾아간 “여태껏 나의 기억을 지탱해온 육체인 산동네”에는 “이미 철거가 다 끝난 폐허의 등성이” 만이 펼쳐져 있다.
이처럼 ‘깨진 항아리 조각’은 체화(體化)된 일상이 깨어짐과 동시에 새롭게 직면한 현실 구도와의 대립 상황을 드러낸다. 이제는 어른이 된 ‘나’이지만 깨진 항아리를 보면서 기억의 육체인 산동네가 스러지는 것을 보아야 하는, 또 다른 현실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빈집에서 발견한 구린내 나는 깨진 항아리 속에서 똥을 누는 것 밖에 없다. 즉 똥을 누는 것은 기억을 배출하는 행위이며 이는 새로운 소설 쓰기의 움직임인 것이다.

이 동네가 포크레인의 날카로운 삽질에 깎여가면 내 허약한 기억도 송두리째 퍼내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껏 똥을 눌 뿐인데......그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
똥을 다 누고 난 나는 빈집을 나와 모래주머니를 발목에서 풀어낸 달리기 선수처럼 가뿐하게 폐허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주위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33쪽
내가 누고 난 ‘굵은 황금빛 똥’은 여태껏 그의 글쓰기의 화두가 되어온 채 그의 몸 속에서 배출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산동네에 대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폐허가 되어버린 기억 앞에서 그 자신도 ‘게흘리게꾼’이라는 이름까지 붙여버린 무능력한 아버지에게서, 우울한 자의식의 근원이었던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벗어나 ‘가뿐해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한번 더 기억하는 게 이야기이고 소설”이라고 말하던 그에게 어쩌면 이제는 새롭게 드러내고 싶었던, 또 다른 기억이 축적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김소진은 없다. 대신 배설된 그의 ‘기억’이 작품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새로운 소설 쓰기를 향한 ‘두리번거리는 몸짓’이 또 다른 기억을 통한 ‘회유(回遊)의 글쓰기’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높지 않는 목소리로 그러나 당당하게 그려낸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사람 냄새나는 삶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곁으로 회환하여 ‘진행형’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이제, 더 이상은 그를 그리워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평론 당선소감
이 정 연 (진주교대 국어교육4)

언제부터인가 일기 쓰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기억을 한번 더 기억하는 게 이야기이고 소설”이라는 김소진의 말처럼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기억이란 ‘한번 더’ 기억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펼쳐 본 내 일기장 안에 자리한 과거의 기억은, 정제되지 못한 언어로 남발된 과잉 감정과 사고가 억압되고 뒤틀린 채로 화석화되어 있었다. 거기에서 나는 어떤 것도 다시 기억할 수 없었고 또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방향성을 잃고 답습되는 글쓰기가 충돌하고 있을 무렵, 나의 글에 독자가 없다는 아주 간단하도고 근본적인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와 사고를 공유하고 있지 않는 ‘독자’라는 존재를 향하여 내 언어를 전달할 방도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응모 당시의 간절했던 마음이 당선 소식을 전해들은 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부끄러운 마음으로 변했던 것은 왜일까. 부족하기만 한 글을 뽑아주시고 지면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더불어 이번 당선이 내 글쓰기의 새로운 첫 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4년 동안 철없는 나의 투정을 말 없이 받아준 경애 언니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던, 대학 생활동안 나를 숨쉬게 해준 천상 문학회 선후배·동기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나를 믿고 격려해주시는 부모님. 내가 앗아온 당신들의 젊음에 대한 일말의 보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심사평
박 종 홍(국어교육과 교수)

심사에 넘겨진 평론은 모두 6편이었다. 그 중에서 ‘현실의 아픔을 겪는 지식인의 고백’, ‘극단적 우울과 그 탈출의 과정’, ‘무질서로 치닫는 비극의 체험’, ‘2D와 3D를 통해 본 예술교육의 현 과제와 그 부가가치’ 4편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학부 졸업 논문에 가까운 글이거나 독단적인 예술론을 상식적으로 해설하는 데 그친 글이라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 내부의 파시즘이 야기할 위험성을 지적하는 ‘일상적 파시즘론’을 다룬 ‘트로이의 목마’는 너무 간략한 내용으로 인해 글쓰기 능력이 제대로 확인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김소진의 소설을 다룬 ‘회상을 통한 회환적 글쓰기’는 사회생활의 부적응자였던 ‘아버지’란 인물을 통해 파악되는 작가의식의 근원, ‘회상’에 의거한 작품의 형상화 방식, 점차 현실과 능동적으로 대면하면서 비관의 장막에서 걸어나오고자 하는 작가의식의 변모에 대한 차분하고도 세심한 접근과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다른 글에 비해 돋보였다. 물론 간혹 보이는 오자와 탈자, ‘회환’, ’향수 코드’, ’탈피의식’등의 현학적인 개념어가 다소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 비평가의 글로 여길만한 문학적 안목과 정제된 표현력을 높이 평가하여 당선적으로 선정하기로 하였다. 앞으로 더욱 활발한 문학비평 활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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