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으로 보는 사회]개구리소년 91년부터 2002년
[한눈으로 보는 사회]개구리소년 91년부터 2002년
  • 편집국
  • 승인 2007.07.2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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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91년 3월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대구 와룡산 인근에서 실종된 이른바‘개구리 소년’들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됐다.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 세방골에서‘개구리 소년’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도토리를 줍던 주민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유골이 발견된 현장은 실종 소년들이 살던 곳에서 3.5㎞ 정도 떨어진 야산 중턱 골짜기이다.
90년대 최대의 미스터리로 손꼽히는 개구리 소년사건은 그 동안 수많은 진기록과 해프닝을 남겼다. 국내 실종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30만명이 넘는 경찰과 군인이 동원돼 수색에 나섰고 전국 방방곡곡에 8백여만 장의 전단이 뿌려졌으며,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아이들이 살아있을 것이란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소형트럭에 플래카드와 사진을 싣고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들의 유해가 목격자들이 소년들을 목격했다는 장소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와 ‘타살 뒤 암매장’가능성이 대두되게 되었다.
또한 27일 와룡산자락에서 대구경찰청 감식반 직원 등이 유골 발굴작업을 벌이던 중 탄두 1개와 탄피가 붙은 실탄 1개를 발견했다. 경찰은 이어 유골 발견 현장 인근 반경 20m 지역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인 결과 여러 종류의 총기 실탄과 탄두, 탄피 등 10여점을 발견했다. 이로 인해 타살 의혹이 불거지게 되었다.
경북대 법의학 팀은 유골에서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보존되는 치아와 머리카락 등이 발견되지 않아 타살 의혹이 크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매장된 상태라면 치아 등이 보존되겠지만 시신 위에 흙이 20-30㎝ 덮인 상태였기 때문에 빗물 등에 떠내려갔을 수도 있다”며 여론을 타살로 몰아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육군 제50사단은‘개구리소년’사건과 관련, “실종사건 발생 당일인 1991년 3월 26일과 다음날 부대 내 사격장에서는 사격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4일 밝혔다. 탄두 2발에 대해서는 “구 50사단 사격장에서의 카빈 및 M1 소총 사격은 1977년 이전까지만 실시된 사실이 부대기록을 통해 확인된 데다 부식 정도 등으로 판단할 때 지난 77년 이전에 사용된 것이 확실시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로 인해 군에 의한 타살 가능성을 제보했던 한 모씨에 대해 근거 없는 허위제보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은‘타살 뒤 암매장’가능성이 대두함에 따라 모두 원점에서 재조사할 예정이다. 또한 사건발생 당시 초동수사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의식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제보사항에 대한 점검, 확인절차를 밟고 있다.
유가족들은 아이들이 와룡산 일대를 자주 놀러 다녔기 때문에‘길눈’이 어둡지 않다는 이유를 들며 타살 의혹에관한 수사를 집중적으로 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부모들은 조만간 사인규명과 장례 등에 대비해 유가족대책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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