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학생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사설]대학생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 편집국
  • 승인 2007.04.0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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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으로부터 “학생활동의 새 시대”를 연 인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서울대 총학생회장의 독특한 이력이 과장되고 날조되었다는 보도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이미 8년 전부터 아무 관련이 없는 두 단체를 “서울대 총학, 한총련 탈퇴”라는 해프닝으로 격상시킨 보수언론의 사실 확인 능력도 당혹스럽지만, “학생운동의 지평을 바꾼 용기 있고 멋진 청년”의 제도권 정치인 뺨치는 행동 역시 씁쓸한 것은 매한가지다. 거짓 경력으로 주목을 끌고, 돈을 끌어오겠다는 공약으로 당선이 되는 대학 선거의 새로운 현실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질펀한 한국 정치판의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비운동권 출신의 총학생회장 당선이 대학사회에서 진행된 정치적 관심의 다양화의 결과라면 우려할만한 사건이 전혀 아니다. 과거에 비해 대학생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운동권이 더 이상 화두를 독점하지 못할 정도로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었기에 이는 오히려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서울대의 경험은 대학사회의 정치적 관심의 다양화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 또는 탈정치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미 작년에 치러져야할 선거가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여러 차례 연기되어 올해 4월에야 이루어졌고, 그리고 급기야 기성정치인 뺨치는 인물이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서울대 총학선거는 대학생들에서조차 비판정신과 대안 추구가 실종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미지 조작이 승리의 관건으로 부상한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극도의 낮은 선거참여율이 보여주듯이 대학사회에서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함으로써 가능해진 현상임은 물론이다.
대학이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기관차 역할을 했던 것은 그리 오랜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의 대학은 사회적 진보의 기관차의 역할도 비판적 지성을 배출하는 진리의 상아탑의 역할도 모두 상실해 가는 듯 하다. 대학은 “우골탑”을 넘어 “인골탑”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재정적 부담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러나 다수의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누려야 할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조차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노동시장의 상황이 열악해지고 날로 청년실업이 심각해지지만 많은 대학생들은 영어실력과 높은 학점을 통한 개인적 대응에 몰두한다. 명품과 메이커 제품을 선호하는 여러 대학생들의 취향은 물신숭배주의와 상업주의에 찌든 사회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대학이 사회를 비판적으로 견제하며, 그러한 비판능력을 갖춘 지성을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무비판적으로 통합되고, 나아가 일그러진 사회의 축소판으로 변질되고 있다면 과장된 우려일까.
도산 안창호 선생은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말씀하셨다. 청년의 대부분이 대학생이 되는 우리 시대에 이 지적은 “대학생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로 옮겨 쓸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이 산다는 것은 곧 지적으로 깨어있음을 의미한다. 무관심이 아니라 관심, 탈정치화가 아니라 정치화, 무비판적 통합이 아니라 비판, 기성질서로의 편입이 아니라 대안 추구가 그 누구보다 대학생들에게 절실해 보인다. 결국 그들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며, 그들이 깨어있지 않을 때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흑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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