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과 여성 정치권력의 구현
총선과 여성 정치권력의 구현
  • 편집국
  • 승인 2007.06.22 0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여성 그 자체는 존경이나 신뢰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보호나 폄하의 대상으로 생각되어 왔다. 특히 정치 분야에 있어서는 여성과 남성이 대등한 동료로 평가되지 못해왔다. 여성은 정치적 조직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존재 정도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변화가 일고 있다. 주요 정당의 대표나 선거 대책위원장이 여성으로 선임되었고, 각 정당은 유행처럼 여성을 대변인으로 내세웠다. 주요 정당들은 비례대표 1번에 여성을 배치했다. 여기에는 분명 여성의 참신성을 통해 정당의 이미지를 일시적으로나마 쇄신해 보려는 남성 정치인들의 의도가 작용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우리 자신이 묵은 사회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총선에 대비한 선거구의 조정과정에서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여성의원 비율을 높이기 위해 26개 지역에 여성전용선거구를 설치하는 문제에 일시적으로나마 합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 합의가 정식으로 발표되기 이전부터 남성을 역차별한다는 위헌소지가 있어서 논란이 일었다. 또한 이렇게 특혜를 받아 여성들만의 경쟁을 통해 선출된 여성 정치인들은 이류정치인처럼 인식될 우려도 있었다.
이 때문에 여성들도 여성전용선거구의 설치에 회의적 반응을 드러냈고, 결국 이 일은 없었던 일로 되었다. 이 해프닝이 끝나자 이번에는 비례대표 중 5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이 방안도 여성을 여성으로만 묶어서 생각하고 있다는 데서 찬반양론이 일어났고, 결국은 유야무야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지역구나 전국구를 통해 여성의 정치력에 두드러진 성장이 이루어질 듯하다.
한국의 정계는 오랫동안 남성들이 주도해온 사회였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현재까지 여성 국회의원 수는 의원총수의 2.0%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여성의원들마저도 지역구 출신이 아닌 전국구 의원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여성 의원이 지역구에서 선출될 확률은 매우 낮았다. 제헌국회부터 5대 국회까지는 전국구 제도가 없었으므로 여성의원은 전체 국회의원 중 0.5%에서 1.3%에 지나지 않았다. 6대 국회부터 기껏해야 한두 명의 지역구 출신 의원이 있었고, 전국구 의원으로 열명 미만의 여성이 지명되었다. 더욱이 8대, 13대, 14대 국회의 경우에는 단 한명의 여성도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지 못했다.
여성의 국회 진출은 거의 직능 대표제라 할 수 있는 전국구 제도의 도입에 의존해 왔다. 가령 15대 국회의 경우, 지역구 의원 2백53명 중 여성국회의원은 2명으로 그 비율은 0.9%였다. 이에 비해 전국구의원은 48명중 여성이 7명으로 그 비율은 14.6%였다. 16대 국회에서는 지역구 의원 2백27명중 여성의원이 5명으로 2.2%였던데 비해, 전국구 의원은 46명중 11명이 지명되어 23.9%를 차지했다. 이렇게 여성 의원의 비율이 조금씩 높아갔으나, 이제는 여성 정치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시기가 되었다.
사실, 오늘의 한국정치는 지연과 학연과 혈연에 얽혀 있다. 이로 말미암은 정치적 부패는 민족의 앞날을 위협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여성들이 정치를 더 잘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여성들에게는 문제투성이의 이 사회를 바로 잡아나갈 수 있는 능력이 많다. 우선, 여성은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피는 눈썰미와 따뜻한 마음이 있다. 또한, 여성은 학연이나 지연 등의 조직에서 비교적 초연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여성은 남성보다 도덕적으로 투명하고, 부패의 가능성이 월등히 적다.
국민을 살피는 애정어린 시선, 무연고성, 도덕성은 개혁이 절실한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치인의 덕목이다. 따라서 여성은 이 사회에서 정치적 과제를 더욱 잘 수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여성 정치인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 여성이 여성정치인을 지지하는 예는 매우 적다. 남성들도 정치는 여성의 일이 아니라는 편견을 가져온 듯하다. 그러나 최근 아일랜드에서는 한 여성이 88%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핀란드의 여성 대통령도 94%의 지지율을 보였다. 이는 현대 선진 사회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처리해야 할 사회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시나마 논의되었던 여성전용선거구제는 여성을 한시적으로나마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제기되었다. 그러나 여성선거구제가 시행되면, 여성끼리만 경쟁하게 된다. 여성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여성 정치인이 마음을 긴장시켜 유권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찾아내고 유권자와 일치하려는 노력을 덜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달갑지 않은 배려는 여성의 정치적 지위를 더 불행하게 만들 우려마저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요청되는 것은 여성도 현실 정치에 있어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고 평가받는 일이다.
이를 위해 후보자나 유권자 모두가 사회를 좀더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여성만을 보지 말고, 문제투성이의 사회를 보아야 한다. 여성 정치인도 스스로가 부패와의 고리를 끊고 지연과 학연과 혈연에 초연하며 사회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 사회는 여성 정치인이 절실히 요청됨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금년 6월1일 시작되는 17대 국회는 여성의 정치적 능력에 대한 올바른 평가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사상 유래 없이 많은 숫자의 여성들이 의회에 진출하여 병들고 지친 우리 사회를 따뜻이 보살피며,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새로운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김정숙 교수(한국학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