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불가항력적인 삶 속 선망하는 것
[영봉] 불가항력적인 삶 속 선망하는 것
  • 곽려원 편집국장
  • 승인 2024.03.0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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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길가에 피어난 민들레와 여기저기 떠도는 길고양이를 사랑한다. 필자는 등굣길 아스팔트에 빼꼼히 머리 내민 민들레를 보면 멈춰서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길고양이를 마주치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한참 동안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기기도 한다.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꽃과 동물을 묻는다면, 아마 고민도 하지 않고 ‘민들레’와 ‘길고양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스팔트 위 민들레와 방황하는 길고양이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련을 딛고 자라난 것이다. 민들레는 바로 옆 차도의 매연을 얼마나 마시며 좁은 아스팔트 틈을 뚫고 피어났을까? 길고양이는 며칠의 추운 밤을 견뎌냈을까? 누군가는 평탄한 삶을 살아온 이들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고비를 넘겨온 이들의 단단한 내면을 선망해 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이들을 선망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필자는 타인이 나를 미워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필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이유에 대해 며칠을 고민했다.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 무서워 모두에게 사랑 받기 위해 노력했으며, 열심히 남의 표정과 행동을 살피며 비위를 맞췄다. 상대의 미묘한 말투 차이에도 혼자 속앓이했다. 그렇기에 타인의 감정이 곧 나의 감정이었고, 그들의 언행이 그날 하루의 기분을 좌우했다. 한 마디로 ‘나’보다는 ‘남’에 초점을 맞추며 살았다.

 또한 필자는 ‘도전’을 회피해왔다. SNS 속 밸런스 게임 질문을 던진다면 과거의 필자는 분명 가진 것을 잃을 가능성이 적은 대안을 택했을 것이다. 인생에서 어려운 과제에 도전장을 내민다면 기존보다 더 큰 보상을 받게 될지 모르겠으나, 혹시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았다. 이 때문에 매력적인 보상을 놓친 적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진 것을 잃는 것보다야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인간관계와 인생의 과제에 있어 평탄함을 추구해 왔지만, 항상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부재가 존재했다. 피해 갈 수 없는 자연재해 같은 일이 벌어지면 필자는 뿌리 얕은 잡초 마냥 속절없이 흔들렸다. 도저히 그 일을 혼자서 버텨낼 힘이 없었다. 그랬기에 혼자만의 동굴을 파고 그 속에 들어가 한참 동안 나오지 못했다. 홀로 자책하면서 끙끙대고 고민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를 깨닫게 됐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은 없다’는 것. 어려움을 겪고 이겨낸 사람은 다음 고비를 더욱 아무렇지 않게 넘길 가능성이 크다. 한 번 비슷한 일을 겪어봤기에 그를 대처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아무 일도 없는 인생을 살 수 없기에, 때론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곤 한다. 하지만 조금 지치고 눈물 흘리면 어떤가.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이다. 혹여나 나쁜 일이 생긴다면 매연과 좁디좁은 아스팔트 틈에 피어난 민들레처럼, 추위를 이겨낸 길고양이처럼 조금 흔들렸다가 다시 강해지면 된다. 잠시동안의 흔들림으로 얻어낸 힘은 앞으로의 고난에 맷집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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