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회 천마문화상] 심사평(소설)
[54회 천마문화상] 심사평(소설)
  • 노상래 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23.11.21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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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회 천마문화상에 투고된 논문은 28편이었다. 그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다섯 작품이었다. 정통적인 방식의 글쓰기 기법으로 작품의 안정감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었고, 참신한 글쓰기로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하는 작품도 있었다. 우선 문체를 봤다. 작가의 스타일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신성과 플롯의 튼실함을 살폈다. 이런 기준에 따라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맘에 남은 작품은 「삼흥 목욕탕」과 「설산에 막내가 있다」 두 작품이었다.

 「개의 나라」는 출가를 한 도살꾼 아버지의 살생이 업으로 남아 ‘나’의 이명이 되고, 그 이명의 굴레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해가는 서사이다. 가출한 아버지의 귀환을 염원하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점수(漸修)의 맛이 있다. 하지만 서사의 연결에 투박한 맛이 있다. 「디스플레이 너머의」는 컴퓨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상현실과 실재현실 사이의 오작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지용의 「유리창」처럼 투명한 것 같으나 얇은 막 하나가 가로놓여 두 세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혼돈’의 서사를 잘 그렸다. 그리고 요지경 같은 의식의 암전을 잘 묘사했다. 그러나 지루함이 느껴졌다. 설명묘사가 많아서 일 것이다. 「진주」는 ‘진주’와 ‘태우’의 관계를 아마존의 미로찾기처럼 풀어내는 착안이 이채로웠다. 진주의 죽음이 미궁으로 끝나지만 서사는 살인범으로 태우를 지목한다. 미궁을 미궁으로 두지 않으려는 반전의 맛이 있다. 하지만 밋밋했다. 「삼흥 목욕탕」은 평범한 일상 속의 소소한 이야기지만 빛났다. 서사 전개는 깔끔했고, 그것을 감각적인 문체가 빛나게 했다. 평범한 속에 큰 울림이 있는 이야기로 승화시킨 것은 작가의 재주이다. 「설산에 막내가 있다」는 일곱 동생을 먹여 살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파독간호사를 자원한 큰 누이가 겪는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특히 ‘너희끼리 잘 살아라’라는 엄마의 유언을 지키지 못하고 막내를 떠나보낸 주인공의 내면은 「양철북」처럼 특정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나찌 잔당의 일원인 푸른 눈의 독일인 화자를 통해 막내를 겹쳐 보는 대목에서는 동병상련을 본다. 거기서 차별과 모멸의 서사는 무화된다. ‘국민학교’와 같은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디테일이 돋보이는 작품이었고, 플롯의 단단함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섬세함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꼼꼼함을 높이 사 「설산에 막내가 있다」를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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