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회 천마문화상-가작(시)] 모닝
[54회 천마문화상-가작(시)] 모닝
  • 장대성(단국대 문예창작과)
  • 승인 2023.11.21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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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공복 유산소 해 봤어? 배도 고프고 어지러운데 그만큼 효과가 좋대 살이 쭉쭉 빠진대 홀쭉해진 배 위로 바지가 흘러내린대
 

갈수록 붙잡을 힘이 사라져가는 기분은 어때
 

골든 리트리버나 진돗개 같은 큰 개와 물길을 달리는 상상을 해 머리 굴리는 것도 칼로리 소모가 장난 아니래 수면이 없는 얼굴을 떠올리려 할 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던 것도 그래서일까
 

허공을 움켜쥐면 빛이 잡힐 듯 어둠이 가득해지는 것처럼
허기를 느껴야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 있어

 

에어컨과 솜이불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만큼 기쁨이 차오르지 이불 안쪽에 생긴 그림자는 우리가 만든 어둠이 아니야 맞잡은 손이 아니야 의심도 하나의 마음이라는 말은 그만하자
 

우리는 작은 벌레 한 마리로도 시공간처럼 뒤틀리니까 잘못과 다정을 헷갈리니까 어제의 너와 내일의 내가 자꾸 마주쳐 그때마다
 

너는 웃으며 사과 한 알을 건넬 것이고
 

내가 그것을 크게 한입 베어 물면
그만큼의 공허가 오늘의 나라고 말할 테지

 

그러면서 다음에는 과수원에 가자는 약속을 하고 조금만 더 자자며 이불 속을 파고들겠지 함께 있어서 짙은 어둠이 그림자로 희석된 것이라 말할 거야
 

그런 너는 좋은 사람, 눈을 비비며 깨어나 창문을 여는 사람, 유리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틈만 나면 내 갈비뼈 사이를 횡단하던
 

모자라고 유치한 사람
 

오늘은 햇빛이 방에 가득 들어차는 것 같아 평소보다, 그래 평소보다
 

알람이 늦게 울려서 꿈속에 오래 누워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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