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회 천마문화상-가작(소설)] 삼흥 목욕탕
[54회 천마문화상-가작(소설)] 삼흥 목욕탕
  • 김수진(단국대 문예창작과)
  • 승인 2023.11.21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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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슬땀이 이마부터 미끄러져 턱 끝에 맺혔다. 막대를 잡은 팔을 집요하게 움직였다. 잡생각이 많아질수록 더욱 힘을 실어 까만 현무암 바닥을 괴롭혔다. 줄눈이 노후돼 갈라졌고 석제 타일엔 금이 갔다. 솔이 팔을 따라 좌우로 상하로 움직일 때마다 줄눈 사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더운 숨이 올라왔고 독한 락스 때문에 눈물과 콧물이 흘렀다. 검은 란제리를 입은 세신사는 세면대를 닦다 말고 여기, 저기 하며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러면 나는 그녀의 아바타처럼 순순히 그곳으로 움직였다. 타일 따위 깨져도 상관없다는 듯 마구 솔질을 해댔다. 물을 튼 호스를 쥐고 거품을 흘려보냈다. 어깨를 들어 비 오듯 흐르던 땀을 훔쳤다. 문득 손이 따가워 살펴보니 퉁퉁 불어 갈라진 검지가 눈에 들어왔다.

 또 손 비었나. 미숙 아줌마가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아줌마는 세면대를 돌며 대야와 주황색 수건들을 수거했다. 나는 작은 솔로 아줌마가 훑고 지나간 자리를 벅벅 닦았다. 수전과 거울에 물때가 잔뜩 끼었다. 매일 청소하는데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더러워졌다. 그걸 볼 때면 사람 몸이 생각보다 더럽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몸에서 나온 먼지나 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농축된 락스 세제와 많은 양의 물이 필요했다.

 1년 전 삼흥 목욕탕은 공사를 한다고 휴업하더니 3층에서 2층으로 규모가 줄었다. 맨 아래층을 식당으로 팔아버렸다고 했다. 코로나로 동네 찜질방이 줄줄이 폐업하는 상황에서, 손님이 바글거렸던 이곳도 별수가 없었다. 손님이 줄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스비가 치솟아서 폐업 신고를 할 것이라고. 나는 주인아줌마가 아닌 미숙 아줌마에게 그 말을 들었다.

 “소미 니는 우리네 밑으로 된 기지 목욕탕 소속은 아이다. 그 때문에 별말이 없었다 아이가.”

 목욕탕 측은 세신사들에게 자리를 주고 청소를 요구했다. 청소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것 역시 세신사의 영역이었으므로 나는 세신사 아줌마들 밑으로 되어 있었다. 사장님이 굳이 나에게 알릴 의무가 없는 셈이라고 했다. 그건 내가 일을 시작한 지 8개월 가까이 되어가는 동안 몰랐던 사실이었다.

 목욕탕이 사라진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1년 전 삼흥 목욕탕이 잠시 휴업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아득해졌다. 고시원에 입소할 보증금조차 없어 친구 집을 전전하던 날들. 어른들은 스무 살이 되면 무슨 초능력이 발현되는 것처럼 말했다. 너흰 자유의 몸이 되는 거란다, 모든 것을 너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해도 돼. 하지만 실상 허락된 자유는 편의점에서 술과 담배를 마음껏 살 수 있다는 것뿐. 미성년의 나는 성년이 되면 수중에 돈 몇 푼쯤이 자동으로 생기는 줄 알았다. 아니, 써도 써도 다시 채워지는 공용 치약이나 비누처럼, 생기기보다는 늘 있는 상태가 되는 줄 알았다.

 스무 살 잠깐의 방황 이후, 자유란 어른들이 하는 가장 무책임한 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건 마치 좋은 대통령혹은 유니콘만큼이나 허황한 말이었다. 보통의 부모 밑에서 보통의 환경을 가지고 보통의 자식으로 자랐다는 전제가 내겐 없었고, 그런 스무 살은 자유롭지 못했다.

 그땐 새벽 1시에 끝나는 피시방 알바를 했는데, 샤워하지 않고 바로 잠드는 날이 많았다. 친구의 가족들은 모두 잠든 시간이었고, 거실은 적막하고 캄캄했다. 나는 현관의 센서등 아래에서 까만 거실을 들여다봤다.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누군가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센서등이 꺼지면 그것이 불쑥 튀어나와 나를 끌고 갈 것만 같았다. 어둠 한편을 바라보며 잠시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친구의 부모님이 방금 막 깬 얼굴로 안방에서 나오는 상상을 하면 그게 더 무서워졌다.

 센서 등이 꺼지기 전에 친구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친구는 잠긴 목소리로 내게 왔냐고 묻고, 나는 머쓱하게 , .”하고 대꾸한다. 클렌징 티슈로 화장을 지운 다음 잠옷으로 갈아입고 누우면 천장에 붙은 야광별이 보였다. 아주 어릴 적 붙여서 지금은 불빛이 희미해졌다고 친구는 설명했다. 나는 원목 의자에 올라가 천장을 향해 팔을 들고 낑낑대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한때는 내게도 야광별 스티커와 그걸 붙여줄 어른이 있었다. 몸을 뒤척이면 머리카락에 밴 라면과 치킨의 매콤하고 기름진 냄새가 올라왔다. 허름한 방 한 칸이라도 내게 주어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늦은 밤 들어와 아무 때나 씻을 수 있는. 내일은 눈을 뜨면 꼭 목욕탕에 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잠들었다. 포근한 편백 향과 싸구려 스킨로션 향을 상상하며. 그런 생활은 민영의 집에서 소연의 집으로, 소연의 집에서 다은의 집으로 옮겨갈 때까지 지속되었다.

 민영의 어머니는 간장게장이나 육전 같은 반찬을 김치냉장고에 숨겨 놓았고, 소연의 아버지는 일주일째 되는 날 지폐 몇 장을 쥐여주며 어머니와 이만 화해하고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다은의 어머니는 객식구인 내게 유달리 상냥했다. 주말이면 다은과 다은의 어머니는 거실에 나까지 꼭 불러내 TV를 보며 수다를 떨었다. MBC에서 하는실화탐사대SBS에서 하는궁금한 이야기 Y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어머, 어머머 하고 잠깐 왁자해지곤 했다. 멀쩡한 자기 집을 놔두고 오피스텔 비상구에 사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거의 10년째 비상계단 통로에 마련된 간이 방에 기거하며 온갖 음식물, 쓰레기, 분뇨를 쌓아두고 살았다. 새벽이 되면 여자는 괴물처럼 악을 썼다. 오피스텔 입주민들은 진동하는 악취와 소음에 고통을 호소했다.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한 추측을 던졌다. 어머, 귀신에 씌었나? 조현병 아니야? 우리가 그 시간을 즐거워했던 것은, 남의 불행 앞에서 느꼈던 우쭐함 때문이 아니라, 공허한 말조차 경청해 주는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주말, 다은의 어머니가 귀이개를 가져와 귀 청소를 해준 적이 있었다. 다은은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귀 청소를 받고 있었고, 어머니는 목을 잔뜩 굽혀 귓속을 들여다보며 귀지를 골라내는 데에 열중했다. 그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인상적이었다. 다은의 어머니가 끝, 하고 다은을 일으킨 뒤 내게 손짓했을 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제가요? 저를요? 하자 그녀는 왜, 찜찜해? 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귀이개 알코올로 소독할 거야. 걱정하지 마.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감히 끼지 못하는 이유를 깔끔 떠는 성미로 포장하려는 의도였다. 나는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귀 청소를 받았다. 그녀는 큰 귀지를 발견하면 이따금 어머, 여기 왕건이 있다 왕건이. 하고 외쳤다.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노곤한 졸음을 느끼던 그때. 그땐 마치 내가 다은의 자매라도 된 것 같았다.

 

 

 오전에 하던 도시락 포장 알바가 잘린 뒤로부터는 일찍 일어날 이유가 사라졌다. 일이 끝나면 수면실에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잠을 자거나 휴대폰을 만졌다. 최근 사용 앱 목록에는 늘 직방이나 다방. 그것도 아니면 카카오뱅크와 알바천국 혹은 당근마켓 정도가 떴다. 밖으로 외출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곧 한파였다. 이곳에 있으면 두껍고 질 좋은 겉옷은 필요가 없었다. 보푸라기 일어난 황토색 찜질복 하나로 연명할 수 있었다. 아마 앞으로 이곳이 사라진다면 두꺼운 겉옷을 사야 하겠지만 말이다.

 한숨 자고 일어나 알바몬에숙식 제공을 쳐봤다. 친구 동반 가능. 경력자, 건설 현장. 나와 관련 없는 조건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단기 알바를 알아봤겠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조금 더 안정적으로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거기다 당장 오갈 데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 하는 일의 시급은 15,000원이었다. 오전 2시부터 4시까지, 2시간으로 정해져 있지만 일이 빨리 끝나는 날엔 한 시간 만에 끝날 때도 있었다. 일은 고됐지만 시급이 높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조건이었다. 다른 잡일은 시급이 아닌 일급으로 계산됐다. 수건과 찜질복 빨래, 비품 채우기, 화장실 청소. 그것들은 총 30만 원. 그렇게 월급은 월세 10만 원을 제하고 계산됐다. 카카오뱅크로 받은 비상금 대출을 메꿀 정도는 아니더라도 내가 돈 쓸 일만 만들지 않으면 한 달을 무사히 버틸 수 있는 정도는 됐다.

 카페 매니저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넣어 면접을 본 적도 있다. 사장은 왜 대학에 가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아프셔서요. 고등학교 내내 간암 걸린 아버지를 수발하느라 공부는커녕 학교생활도 제대로 못 해서 고2 때 자퇴했다는 말을 구구절절 풀어놓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대답했다. 사장은 요즘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공부 못해서 못 간 건데 민망해서 거짓말한 거 아니냐고 빈정댔다. 내가 놀라 눈을 깜빡이자, 그는 농담이라고, 재미없냐고 얼버무렸다. 이력서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시큰둥하게 뭔가를 끄적였다. 떠나기 전 음료라도 주겠다며 그는 아이스티와 아메리카노 중 어느 게 좋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스티가 좋겠다고 답했다. 그가 음료 만들러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그가 이력서에 적은 글자를 확인했다. 못미더움.

 

 골프 캐디를 모집한다는 공고에 알바몬으로 온라인 지원을 했다. 수습 기간에도 수입 발생, 숙식 제공, 당일 지급, 월수입 600만 원 이상. 공고 제목에 붙은 수식어만 보면 정말 꿀직업이었다. 그리고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숙식 제공에, 고수익인 이런 일자리를 두고 왜 아무도 경쟁하지 않는가. 사대보험에 정기보너스까지 있다던데. 골프 캐디는 고졸도 뽑아줄까.

 구글에 고졸 캐디캐디 학력같은 말을 쳐봤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고민으로 게시글을 올려뒀다. ‘고졸인데 캐디 취업 될까요?’라는 제목의 글쓴이는 수원에 살고, 쿠팡을 그만하고 싶어서 캐디를 생각 중이라고 했다. 누군가 그 글에 댓글을 남겼다. “수원에 골프장이 있나 모르겠지만 캐디가 굳이 대졸일 필요는 없습니다. 요새 양아치들도 다 합니다. 볼 찾는 능력과 참을성이 중요하죠.”

 나는 댓글을 보며 의심을 품었다. 그래도 아직은 게으른 대졸과 성실한 고졸 중 게으른 대졸을 뽑는 세상이다. 목욕탕 사장님도 그랬다. 여탕 청소는 맨날 나이 많고 무식한 할머니들만 썼는데 너는 젊어서 좋다고. 몸도 빠릿빠릿하고 일도 똑 부러지고 야무지게 잘한다고. 사장님은 검고 졸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정작 세신사 아줌마들은 내가 어린애라 끈기가 부족하다고 했다. 오전 알바를 다녀온 날은 왜 맨날 설렁설렁하냐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니 어느덧 12시였다. 배가 고파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은 한산했다. 미숙 아줌마가 구석에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에 인사와 함께 직원 전용 식권을 건네고 미숙 아줌마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줌마는 핸드폰으로 고스톱을 치는 중이었다. , 착 화투를 때리는 효과음이 차졌다. 재밌냐고 묻자, 아줌마는 냉소적으로 웃었다. “재미읎다. 그냥 시간 떼울라고 하는 기다.” 앗싸 고도리! 아줌마가 고도리를 먹었는지 효과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아줌마와 내 앞에 놓았다. 얼마 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는 알림음이 들렸다. 아줌마와 내 주문 번호가 전광판에 떴다. 우리는 각자의 식판을 가져왔다. 미숙 아줌마는 제육 백반, 나는 미역국이었다. 짭짤하고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니 앞으로 우째 할끼고.”

 아줌마가 나를 힐끔 보더니 물었다. 나는 괜히, 김이 나는 미역국을 숟가락으로 휘적거리다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오늘 캐디 지원서 넣었어요. 숙식 제공도 되고 돈도 많이 준다고 해서요. 조건이 이렇게 좋은데, 공고가 많이 떠 있데요.”

 아줌마는 나를 비웃는 듯 물었다. 하이고 소미야, 니 캐디가 뭐 하는 줄이나 아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공 치는 양반들 공 주워다 주고 짐 들어다 주고 수발드는 기라. 니 같음 땡볕에서 그 고된 걸 평생 하고 싶겠드나?”

 미숙 아줌마 조카도 캐디를 했었다고 한다. 관리자가 어찌나 못살게 구는지 그녀는 매일 울면서 출근했다. 가끔가다 악질인 손님이 걸리면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듣고도 5시간 넘게 웃으며 그들과 붙어 있어야 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아저씨는 몇 살 때 첫 경험을 했냐고 물었던 변태였다. 그래서 그녀가 화를 냈더니, 캐디 데뷔할 때머리 올린다는 표현 쓰지 않냐고. 그걸 첫 경험으로 빗대서 얘기한 거라고. 자신은 억울하다고 둘러댔다. 그 아저씨는 다음 라운딩 때 골프채를 필드에 일부러 버린 뒤에 찾아달라고 했다. 그걸 찾지 못하면 캐디가 변상해야 하는 점을 이용해 괴롭힌 거였다. 관리자는 이 일을 듣고도 아줌마의 조카에게 외부에 발설하면 징계를 내리겠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려고 해도 근로법인지 뭐시깽이인지 그런 것에 포함되지 않아서 신고도 할 수가 없었다고.

 “돈 많이 벌면 뭐 하겠노? 사람이 사람맨쿠로 살아야지

 미숙 아줌마 얘기를 들으니,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놨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목욕탕 청소 알바가 나은가 캐디가 나은가. 미래가 불투명한 거야 도긴개긴이었다. 잠깐이라면 괜찮지만, 평생 둘 중 하나만 하고 살아야 한다면, 그건 꽤 우울할 것 같았다. 아줌마에게 묻는다면 또 똑같은 소리를 할 거였다. 기술을 배워라 소미야. 맨 목욕탕에서 청소나 해서 뭐가 될라 그라노? 미용, 제빵. 이런 걸 배워야지, 안 글나?

 생각해 보면, 목욕탕 청소도 일종의 기술일 텐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토록 허드레꾼 보듯 하찮다는 눈길을 보내오는 걸까.

 며칠 전에는 초등학교 동창을 마주쳤다. 나는 간이 의자며 대야를 정리하는 중이었고, 그 애는 샤워를 마치고 이제 막 탕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그 애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붙잡았다. 너 김소미 맞지? 용현초 김소미.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애가 누구인지 잘 몰랐지만, 그 애는 내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 애가 나에게 물었다. 너 여기서 뭐 해? 도와드리는 거야?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일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그 애의 얼굴엔 난색이 비쳤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계산하는 듯, 대답이 굼떴다. 그 애는이색적이라고 말했다. “, 신기하다. 우리 어렸을 때 체험 삶의 현장그런 거 했잖아. 요새극한 직업도 사람들 되게 많이 봐. 유튜브에 브이로그 한번 올려 봐. 도움 되는 경험일 거야.” 나는 그 애가 말을 멈추고 어서 지나가 주기를 바랐다. 하필 그때 그곳이 아니었더라면 평생 마주칠 일도 없었을 텐데. 운이 나빴다.

 그 애가 나를 업신여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여탕 비품을 정리하다 보면 기특하다는 눈길을 보내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와 눈길이 스치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젊은 사람이 힘든 일 하네. 우리 손녀 생각 나. 내게 다정한 격려 한 마디를 건넸다. 그들의 눈빛은 뭐랄까, 단순한 동정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나를 젊은 시절의 재현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할머니는 눈썹 문신의 잔흔이 푸르게 남은 푸른 눈썹 할머니였다. 그녀는 손녀를 데리고 주 3~4회 정도 나왔다. 시간은 늘 저녁 8시에서 9시쯤 되었다. 그녀는 평상에 앉아 치약을 새것으로 갈고 빨랫감을 정리하는 나의 등을 유심히 지켜봤다.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 수고가 많아요, 하며 맥반석 달걀 하나를 쥐여줬다. 나는 선량한 그녀와 안부를 주고받다 조금 친해졌고, 가끔 사담을 나눴다.

 “우리 집엔 목욕탕이 없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도 용현초 동창 같은 얼굴을 했을까. 나는 집도 없는 주제에 욕실이 없다는 그녀의 말에 흠칫했다. 창신동에 널리고 깔린 것이 쪽방인데 어째서 나는 모든 집이 2.5평짜리 욕실이 딸린 아파트일 거라고 생각한 걸까.

 초록 눈썹 할머니는 홑몸이었을 땐 주 2회 정도만 이용하면 됐는데, 손녀와 같이 살게 된 뒤로 더 많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손녀가 초등학교에서 잘 안 씻는 아이라고 놀림을 받게 된 다음부터였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손녀에게 머릿니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학부모들이 방방 뛰며 학교에 항의했고, 자녀들에게 할머니의 손녀와 어울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손녀는 왕따가 됐다. 참빗으로 머리도 빗겨주고 에프킬라도 뿌려서 머릿니는 완전히 없어졌는데, 한 번 퍼진 소문은 걷잡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더 열심히 손녀의 머리를 땋아주었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었다. 할머니가 그런 고충을 토로하는 동안 손녀는 부루퉁한 얼굴로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퉁명스레 끼어들었다. 맨날 이상한 옷 입고 다닌다고 냄새난다고 그런단 말이야. 저번 주엔 멜로디언 안 사 가서 선생님한테 혼났단 말이야.

 할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당신 딴엔 최선을 다하는데, 돌봄에는 자꾸 구멍이 나는 것 같다고. 이미 키운 자식을 다시 키우는 기분이라고 했다. 싱글맘인 딸은 몇 달 전 심한 교통사고를 당해 재활치료를 하느라 도무지 정신이 없는데, 손녀의 청결부터 알림장까지 신경 써야 할 것투성이라고. 안 그래도 가스비며 수도세며 난방비며 올라서 목욕탕 이용료까지, 감당이 안 될 지경이라고.

 세신사 아줌마들은 초록 눈썹 할머니를 싫어했다. 틈만 나면 치약이며 수건이며 비누며 훔쳐 가는데, 사정이 어려우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아주 상습범이라고. 나는 아줌마들에게 그녀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미숙 아줌마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말았다. 맞제, 그 노인네도 참 불쌍타. 우예 저래 가난한 호호할머니가 얼라를 떠맡아가. 안 글나. 이 추운 날에 폐지 주으러 다닌다 카더라.

 “소미 니도 퍼뜩 엄마랑 화해해라. 구들더께 되면 다 소용없다 아이가.”

 미숙 아줌마는 엄마와 나의 사이를 두고 오지랖을 부리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가 엄마와 화해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말했다. 목욕탕 청소 일도 그만두고, 뭐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대학에도 갈 수 있을 거고, 정 그게 아니면 기술을 배워서 새로운 직장을 가질 수도 있을 거라고. 그녀는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엄마가 늙어서 죽으면 이 시간이 다 후회로 남을 거라고. 그런데 미숙 아줌마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었다. 그건 모두 엄마가 딸을 사랑할 때의 이야기였다. 엄마가 딸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세상에 없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맞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나 말고도 사랑하는 게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술과 남자를 특히 좋아했다. 아빠는 본격적으로 투병한 지 2년이 되는 해에 떠났다. 아빠의 그늘에 화초처럼 지내던 사람이 사랑받고 의지할 대상을 잃었으니 그 상실감과 당혹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을 거다. 아빠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그 문제가 특히 심해졌다. 키친 드렁커(Kitchen drunker)였던 엄마는 비슷한 모임을 찾은 뒤부터 밖으로만 나돌았다. 보험비로 방어할 수 없던 아빠의 병원비로 원래 있던 아파트도 팔아버리고, 새 둥지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엄마의 방황은 상황을 최악으로 흘러가게 했다. 오피스텔에서 빌라로, 그보다 작은 빌라로, 마침내는 반지하로. 전세에서 월세로. 집은 계속해서 작아졌고 그에 반비례로 늘어가는 엄마의 미친 낭비벽에 좁디좁은 집은 곧 터질 것 같았다. 매주 홈쇼핑을 통해 시킨 택배 박스가 집 안이며 밖이며 할 것 없이 쌓여갔다.

 나는 마치, 사춘기 딸의 비행(非行)을 지켜보는 심정으로 엄마를 향한 증오를 삭혔다. 한 번 밖으로 나돌면 집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하니 보다 못 한 외삼촌이 잡으러 간 적도 있었다. 엄마는 경찰서에 있었다. 술에 취해 전철역 안에 토를 하고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그날 아직 술이 덜 깨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엄마 얼굴에 대고 제발 미친 인간처럼 굴지 말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던 기억이 난다. 종국에는 부모답게 굴라고 안 할 테니까 제발 집안에 틀어박혀 가만히만 있어 달라는 애원으로 끝났다. 엄마는 갈라진 목소리로 알겠으니 물이나 좀 달라고 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가 일주일 남은 상황이었다.

 이런 얘기를 모두 꺼내면 미숙 아줌마는 아마 우리 엄마를 미친 여자라고 욕하겠지. 정확히는 미친년이라고 할 거다. 그걸 직감하고 나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졌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애인의 집에 들어갔다는 사실마저 얘기하면, 그 애인이 내 몸을 만졌다는 사실까지 얘기한다면, 엄마가 정말 쓰레기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들키는 꼴이 되는 거니까. 그럼 내 처지는 쓰레기보다 못한 게 될 테니까.

 

 

 그날 저녁에 또 초록 눈썹 할머니를 만났다. 손녀는 없었고, 할머니 혼자였다. 그녀는 주변을 살피다 패딩 안쪽에서 뭔가 까만 것을 꺼내 들었다. 바스락거리는 게, 비닐봉지였다. 나는 비닐봉지를 받아 들고 그 안을 들여다봤다. 무언가 따끈따끈한 것이 은박지로 싸인 채였다. 나는 할머니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다.

 “요 앞에 구운 통닭을 팔길래 좀 사 왔어.”

 식기 전에 얼른 먹어. 먹고 해. 요즘 살이 너무 내렸어. 할머니는 민망한지 그 말만 남기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캐비닛 쪽이 아닌 신발장 쪽으로. 나는 뛰어가서 할머니를 붙잡았다. 받았던 비닐봉지를 건네며 손녀랑 드시라고 했다. 저는 오늘 밥 많이 먹어서 괜찮아요. 옷은 또 왜 이렇게 얇게 입고 오셨어, 요즘 날씨 추운데. 나는 할머니의 얇은 패딩을 쥐어 보았다. 그곳에선 찬 공기가 묻어났다. 바깥 공기가 이렇게 차가운데 통닭을 식지 않게 하려고 품에 들고 얼마나 급하게 이곳까지 찾아오셨을까.

 “됐어. 별거 아닌데 민망해. 혼자 먹어.”

 할머니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다시 내 손에 봉지를 들려주었다.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변변한 장갑 하나 가지고 다니지 못하는 노인에게 만 오천 원 전기구이 통닭이 결코 별거 아니었을 리 없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보답할 것이 없나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치약이나 비누 따위를 훔쳐다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처지가 원망스럽다는 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할머니, 삼흥 목욕탕 다음 달에 폐업 신고 들어가요. 할머니한테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손녀 데리고 이제 다른 데 다니셔야 해요.”

 할머니는 놀란 얼굴로 그래? 하고 대꾸하더니 곧 근심스러운 얼굴이 됐다. 우리 집 근처에 목욕탕이라곤 여기밖에 없는데 이걸 어쩌나. 정말 이걸 어째야 해. 근심스러운 얼굴을 넘어 울 것 같은 얼굴이 됐다. 아이고, 정말 큰 일이네. 할머니는 속상한 듯 계속해서 한탄했다. 이내 말해줘서 고맙다고, 아쉬운 표정을 짓고는 힘없는 뒷모습으로 여탕을 떠났다.

 그리고 잠시 뒤 데스크에서 들리는 소란이 여탕까지 닿았다. 수건을 모으던 나도, TV를 보던 매점 아줌마도 흠칫 놀라 서로 눈을 마주쳤다. 얼마간 높은 여자 목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뭔 일이지. 나가봐야 하나. 껌을 씹던 매점 아줌마는 어금니로 공기 방울을 터뜨리다 밖으로 한번 나가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매점 아줌마를 따라 데스크로 향했다.

 설마 했지만 정말로 초록 눈썹 할머니와 사장 아줌마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뿔싸.

 “우리 동네에 남은 목욕탕이라곤 이거 하나뿐인데 여기가 그만두면 여러 사람이 겪을 고통도 생각해야지. 다 사라지면 우리 손녀는 어떡해요. 집에 욕실이 없어서 씻지도 못하는 걸 학교는 어떻게 보내라고.”

 사장 아줌마는 할머니의 말에 퉁명스레 대꾸했다. “엄마, 내가 어떻게 남의 집 사정까지 생각해.” 사장 아줌마가 제일 싫어하는 건 돈 없는 노인이었다. 데스크에서 계산하고 떠날 때 뭐가 이리 많이 나왔냐고 투덜거리다 사탕 바구니에서 사탕을 한 움큼 집어 가는 걸 보면 궁상도 그런 궁상이 없다고, 그렇게 추할 수가 없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노인네가 투정 부리는 거구먼. 좀 받아주고 말 것을. 매점 아줌마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설설 저었다. 그녀는 구경하기에도 시시하다는 듯 다시 여탕 안으로 들어갔다.

 “곧 겨울방학이잖아, 엄마. 방학 동안 집에 공사하셔서 욕실도 좀 새로 만드시고 하면 되겠네. 자녀분들은 뭐 하세요?”

 “남의 집 세 들어 사는데 무슨 화장실 공사를 하란 말이에요. 그러지 말고, 다만 1년이라도 더 운영을 해주세요, 사장님. 이렇게 무정한 경우가 어딨어.”

 할머니는 사장 아줌마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사장 아줌마는 화가 난 상태 같았다. 주제넘게 본인 일에 간섭하고 무리한 걸 요구했기에 그런 걸까. 아줌마는 아유 할머니 진짜 웃기는 할머니네하고 비아냥댔고 화가 난 할머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쏘아붙였다. 어른한테 그렇게 말해선 안 되는 거라고. 할머니는지지벌건 낯빛이 되었다.

 “이 할머니가 정말 답답하네. 우리 입장에서도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 그만두지, 손해 봐가며 장사를 하는 곳이 어딨어요. 우리가 뭐 불우이웃 돕기 하는 사람들이에요? 이 얘기는 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사장 아줌마는 할머니에게 무식해서 말이 안 통한다고 했다.

 그걸 지켜보던 나의 귀가 죄책감에 금세 뜨거워졌다. 나는 사장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제가 그랬어요. 내가 고백하자 사장 아줌마는 놀란 눈치였다. 나는 할머니의 편을 들었다. 여기서 일하는 저도 오늘 처음 듣고 놀랐어요. 할머니가 저렇게 말씀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집에 욕실이 없으시다잖아요.

 사장 아줌마는 말이 없어졌다. 관자놀이를 양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팔목에 두른 금붙이와 빨갛게 칠한 손톱이 눈에 띄었다. 아줌마는 잠깐 그러고 있다가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 돈통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 할머니께 건넸다. 할머니는 의아한 얼굴로 그것을 건네받았다. 연두색과 연분홍색의 엄지손가락만 한 종이였는데, 어딘가 익숙하다 했더니 직원용 식권이었다. 사장 아줌마는 열을 식히는 듯 머리를 정리하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나중에 손녀랑 미역국이라도 잡숫고 가셔요. 목욕탕 운영을 더 하고 말고는 상황 봐서 말씀을 드릴 테니까.”

 할머니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거절할지 말지 망설이는 얼굴로 사장 아줌마를 바라보다가, 결국엔 식권을 패딩 안주머니에 넣었다. 미안해요. 열없이 사과했고 사장 아줌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서 들어가셔요. 날도 추운데. 할머니는 힘없는 노인 특유의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뒤를 돌아 나갔다. 열린 문틈 새로 들어온 살바람이 살갗을 훅훅 쏘았다.

 “소미 씨, 잠깐 이리 앉아 볼래.”

 할머니가 나가고, 사장 아줌마는 카운터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자신이 앉아있던 두 겹의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서 하나를 떼어내 내게 건넸다. 나는 아줌마를 따라 앉았다. 아줌마는 테이블에 있던 전병 과자 봉지를 열어서 내 쪽으로 밀었다. 내가 멀뚱거리며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자 손수 하나를 집어 건넸다. 별로 구미가 당기진 않았지만, 왠지 건넨 성의를 생각해 입에 넣어야 할 것 같았다. 전병 과자를 입에 넣었다.

 “일은 괜찮아?”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점주들의 일은 괜찮냐는 물음은 도통 의미를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대답을 해야 가장 괜찮은대답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할 만하다고 답했다.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소미 씨한테 먼저 말 못 한 건 미안해. 자기는 여기 아니면 갈 곳도 없는 사람이라 제일 처음 말을 해야 했던 건데, 거기까지 생각이 못 미쳤다. 그래도 그렇게 자꾸 뒤에서 얘기하고 다니면 곤란해. 자기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겠지만, 이 동네 사람들 처지, 잘 알잖아. 수건을 500장 채워놔도 4개월을 못 가는 곳이야. 다들 이 목욕탕이 사라지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아주 성화야. 그래서 나도 쉬쉬하고 있던 건데…….

 죄송해요.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내가 사과하자 그녀는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 여기 문 닫고 나면 나도 이제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나 하려고. 파리바게뜨나 배스킨라빈스 같은 거 있잖아. 메가커피나 컴포즈커피 같은 저가 커피 브랜드도 괜찮고. 물장사가 제일이래잖아. 노인네들 말고 젊은 애들 많이 오는 거. 이제 그런 걸 좀 해야겠어. 수건에, 치약에, 비누에, 도둑질 때문에 넌덜머리가 난다, 아주. 아줌마는 속살속살 자신의 어렴풋한 미래를 일러주었다.

 “소미 씨는 뭐 할지 생각은 해봤어? 여기 사라지면. 자기도 새 일을 찾아야지.”

 나는 머뭇거리다가 낮에 캐디 지원서를 냈다고 얘기했다. 아줌마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안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잘했다. 잘 생각했어. 그것도 다 기술이다. 소미 씨. 젊었을 때 바짝 해서 돈 모아 놓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나는 자기의 그 젊음이 너무 부러워. 자기네들은 몇 번을 실패해도 용서받을 기회가 있지만 나는 아니잖아. 나는 그녀의 설교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용서받다. 나는 여탕으로 돌아와서 수건을 줍고 머리카락을 치우는 내내 그 말을 곱씹었다. 실패가 곧 죄가 되는 세상이라면, 나는 여태 얼마만큼의 죄를 짓고 산 걸까. 그래도 사장 아줌마가 나는 아직 용서받을 기회가 많다고 해서 위안이 됐다. 누구든 그 죄를 때처럼 벗길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좋겠다. 초록 눈썹 할머니와 그의 손녀가 생각났다.

 

 

 밤 열 시, 수건과 찜질복을 가지고 세탁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창고 특유의 음습함이 몸을 감쌌다. 보일러실과 전기실을 겸하고 있어 보일러기와 난방기 돌아가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원래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수건과 찜질복을 채워 넣을 수 있게 목욕탕 청소가 끝난 새벽부터 세탁기를 돌리곤 했다. 그러나 내일은 새 일을 찾기 위해 조금 더 일찍 깨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을 겪었고, 진이 빠졌다.

 거대한 드럼세탁기의 문을 열고 그 안에 세탁물이 든 바구니를 털었다. 원래 같으면 조금씩 빼서 세탁기 안에 넣다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탈탈 털어 넣었겠지만 이제 어느 정도 힘과 요령이 생겨서 세탁물이 많지 않은 날에는 번쩍 들 수 있었다. 찜질복 두어 개가 드럼통 안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바구니에 딸려 나와 떨어졌다. 그것을 마저 주워 넣은 뒤 묵직한 문을 닫았다. 삶음 세탁 모드로 설정했다. 물은 90, 헹굼 3회와 탈수 20. 시작 버튼을 누르자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이 완전히 차오르자, 드럼통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흰 거품이 포말처럼 일어났고 황토색 찜질복으로 스며들었다. 상승과 회전과 하강의 반복 속에, 찜질복에 묻은 땀과 눈물이 지워지는 중이었다.

 삶음 세탁을 마치고 건조기까지 돌린 찜질복에서는 고온 세탁과 건조를 마친 면 의류 특유의 청결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병원복 냄새를 닮아 있었다. 아빠는 새 병원복으로 갈아입을 때 그 청결함이 좋다고 했다. 내 몸이 소독되는 기분이야. 그랬을 리는 물론 없겠지만, 몸에 퍼진 암세포마저 조금 줄어드는 기분이라고 했다. 암담한 분위기를 덜어내려는 싱거운 농담이었다는 걸 안다. 그래도 아빠가 낭만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다. 아빤 병실에 아끼는 기타를 두고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었다. 유재하의우울한 편지나 김광석의서른 즈음에가 아빠의 애창곡이었다. 중환자실로 옮기기 전까지 아빠와 같은 병실을 썼던병실 동기들은 병원복을 입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와이제 유재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아저씨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보였다. 지금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으려나. 개중 몇몇은 난치병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평일이라 손님이 많이 빠진 탓에 오전 1시부터 청소를 할 수 있었다. 미숙 아줌마는 들어가고 세신사 아줌마2가 출근했다. 아줌마2는 미숙 아줌마보다는 덜 빡빡해서 진땀을 빼지 않아도 됐다. 거울과 세면대, 바닥을 물로 씻고 나니 아줌마2다이쪽은 내가 하겠다며 너는 이만 쉬라고 했다. 목욕탕 벽면에 커다랗게 빛나는 전자시계를 보니 2시였다. 한 시간 만에 청소가 끝난 거였다. 아줌마는 콧노래를 부르며 솔질을 이어갔다.

 나는 변색한 찜질복을 벗어 던졌다. 눈앞에 보이는 탕에선 현무암 두꺼비가 청록색 물을 한창 토해내고 있었다. 60쑥탕에 발을 들여놓자, 순식간에 정강이가 따끔거릴 만큼 달아올랐다. 몸을 물 밑으로 더욱 밀어 넣었다. 목까지 들어가자 수압에 폐부가 짓눌렸다. 탕 안에 몸을 들여놓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출감자가 된 마음으로 때가 불어나길 기다렸다. 이것을 벗겨내면 무엇이든 용서받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새벽 목욕탕 청소를 하고 돌아온 나는, 건조까지 마친 찜질복에 코를 박았다.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아 얼굴이 따뜻해졌다. 여기에 약간의 에탄올 냄새가 난다면 딱 아버지가 좋아하는 냄새였다.

 

 

 그 뒤로 서너 달이 지난 뒤 방문했을 때, 삼흥 목욕탕은 정말로 사라졌다. 목욕탕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 폐업 신고를 하고 정리를 했던 건지는 나도 잘 모른다. 골프장 면접에 합격하고 캐디 교육을 받기 위해 그다음 주에 바로 화성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사장 아줌마도, 매점 아줌마도, 미숙 아줌마도, 초록 눈썹 할머니도 모두 없었다. 한때 내 둥지였던 곳이 사라진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건물 외벽의 타일 사이사이 때가 껴 있었다. 그만큼 이 동네도 낡았다. 1층에 들어섰다던 식당은 장사가 잘되고 있었다. 닭갈비 집이었다. 사장 아줌마는 정말 파리바게뜨나 배스킨라빈스를 차렸을까. 그것도 아니면 메가커피나 컴포즈커피를 차렸을까. 세신사 아줌마들은 다른 목욕탕으로 자리를 옮겼을까. 무엇보다, 초록 눈썹 할머니의 손녀는 잘 씻고 학교에 다니는 걸까.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들이 그토록 많다는 것에 놀라며, 얼마간 그곳에 멈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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