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회 천마문화상-대상(소설)] 설산에 막내가 있다
[54회 천마문화상-대상(소설)] 설산에 막내가 있다
  • 김윤겸(단국대 문예창작과)
  • 승인 2023.11.2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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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태어나서 그처럼 뚱뚱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 천장을 향해 배가 동그랗게 솟은 채 침상에 누워있는 노인은 마치 거대한 설산 같았다. 흰 병실, 흰 침상 위 흰 환자복을 입은 흰 노인. 우리를 옐로우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희고 투명한 피부는 켜켜이 쌓인 만년설을 연상케 했다. 한여름 어린 아이 7명이 들어찬 단칸방에서도 그는 녹아내리지 않으리라. 처음 그의 병실에 들어섰을 때는 그 고요함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마치 고산병에 걸린 것처럼. 커다란 노인은 언제나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말 없이 누워있었다. 능선을 따라 자라난 금빛 풀 몇 포기는 탄력을 잃은지 오래다.

 수간호원에게 다녀온 후 빠른 속도로 병원을 나섰다. 퇴근길에 종종 들르는 빵집에서 전 날 만들어 저렴한 빵 두 덩이를 샀다. 내 낡은 아파트에 도착하자 동생 정숙이가 보낸 편지가 와 있었다. 나는 그릇에 따듯한 물을 받아 딱딱한 빵을 담가두고 편지 봉투를 열었다.

 미숙 언니. 잘 지내? 이번 달도 돈 잘 받았어. 무소식이 희소식인 것으로 알게. 언니가 있는 곳이 함부르크지? 이 편지가 도착할 때면 요양병원으로 옮겼겠네. 언니. 난 아직도 가끔 밥그릇을 여덟 개 놓아. 다들 언니를 보고싶어해. 우리는 잘 지내. 벌써 동석이가 국민 학교 2학년생 이라는 게 놀라워. 동열이는 얼마 전부터 평화시장에 일 나가. 누나는 서독까지 가서 일하는데 자기도 이제 열일곱이니 뭐라도 해야 한다면서. 나머지도 다 별 탈 없이 지내. 일주일 전에 어머니 아버지 제사 지냈어. 언니도 함께 갔으면 좋았을 텐데. 혼자 음식 하려니 힘들더라. 나도 언니 따라 백의의 천사나 되어볼까.

 그 밑으로는 이번 달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가 상세히 적혀있었다. 정숙이는 내가 보낸 돈의 지출 내역을 매달 정리해 편지와 함께 보내오곤 했다. 물론 나는 답장을 하지는 않았다. 한국으로 보낼 돈을 제한 최소한의 생활비에서 편지를 부치면 삼 일 저녁을 굶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숙이가 보내온 내역 중 식비 항목 옆에는 나의 반 년 치 생활비가 적혀있었다. 내 자라나는 일곱 동생은 매달 비현실적인 액수를 먹어치웠다. 그렇게 많은 돈이 현물이나 땅 한 조각으로도 남지 못하고 고작 반나절이면 소화되는 음식이 되다니. 한 번 씹어 삼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되었다니. 문득 오늘 닦은 시체 한 구가 떠올랐다. 나에게 엉겨 붙은 시체의 악취를 더 이상 맡을 수 없었다. 그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백의의 천사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똥오줌의 천사, 피고름의 천사라면 모를까. 어느새 내려앉은 어둠이 창문에 내 얼굴을 비추었다. 움푹 들어간 볼과 푸석한 머리칼은 농담으로도 천사라고 칭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무엇 하나 맞는 것이 없었다.

 군터. 구텐 모르겐. 좋은 아침이라는 뜻이었다.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독일어 발음을 겨우 해냈지만 노인은 오늘도 내 아침인사 따위는 가볍게 무시했다. 노인은 항상 미동도 없이 파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은 마치 수면이 존재할 뿐인 호수 같았다. 손을 담그면 물이든 물고기든 어떤 것도 잡히지 않는. 괴물 네시 같은 것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이 잔잔하고 수면 뿐인 호수.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데, 노인의 눈은 그 너머에 좀처럼 뭔가 보이는 일이 없었다.

 나보다 배는 큰 그의 가슴을 힘겹게 들추어 배와 맞닿아 있던 부분을 수건으로 쓸고, 옆구리 사이의 주름도 모두 팽팽하게 당겨 수건으로 닦아냈다. 노인의 팔뚝을 수건으로 쓸며 지나가면 언제나 내 예상보다 훨씬 아래까지 살이 흘러내렸다. 성당에서 본 양초의 흘러내린 촛농 같았다. 나는 흐르다 저도 모르게 굳어버린 촛농의 모양과 곧 혼절할 듯한 예수의 표정을 보는 것을 즐겼다. 공짜 점심을 주어서 동생들을 모두 이끌고 다닌 것이라 신부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다.

 노인의 무거운 팔을 떨어트리자 살이 이리저리 출렁였다. 나는 이 순간이면 어김없이 큰어머니가 막 찐 두부를 생각했다. 면포에서 떨어져 나오는 새하얗고 푸들푸들한 두부. 어쩔 땐 그의 살이 참을 수 없이 고소해보였다.

 따끈해진 물수건을 바구니에 던져 넣고 그 옆의 철제 통을 집어 들었다. 알콜솜이 들어있는 통이었다. 나는 품 안에서 화려한 무늬의 철제 틴케이스를 꺼내 알콜솜을 한 움큼 옮겨 담았다. 독일에 온 첫 날 설렘에 취해 사 먹은 사탕이 들어있던 것이었다. 틴케이스를 열자 온몸으로 서구의 것이라고 외치던 사탕의 흔적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젖은 손가락을 치마에 대충 쓸어내고 카트를 잡았다. 틴케이스를 다시 품에 숨기며 돌아서는데 어딘가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잘못들은 건가 싶어 노인을 바라봤다. 그가 희미하게 미소를 띄고 끌끌 거리며 웃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텅 빈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노인은 정확히 내 틴케이스를 보며 웃고 있었다. 뒷목이 화끈거리며 식은땀이 흘렀다.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 이미 내 마음은 병원에서 잘리고 한국으로 추방당해 김포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황급히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노인은 한참을 웃더니 저도 검지 손가락을 세워 입에 대었다. 통통한 검지 손가락은 펴지지 못하고 자꾸만 구부러졌다.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자 노인은 그런 나를 보곤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가래 가득한 투박한 웃음 소리였지만 표정만은 어린 아이처럼 맑았다.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표정이었다. 휘어진 눈과 환한 미소. 분명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표정. 나는 노인의 표정을 2년 전 우리 집 부엌에서 찾아냈다.

 입가에 쌀알을 묻힌 채 웃는 막냇동생의 표정이다. 막내는 몰래 생쌀을 훔쳐 먹고 헤실헤실 웃었다. 내가 아무리 혼내켜도 씰룩대는 입꼬리는 내려갈 줄 몰랐다. 노인은 바로 그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장난기 가득하고 실없는 웃음. 나는 병실을 나오며 그 때의 막내와 나를 생각했다. 막내의 민들레 뿌리 같던 팔뚝을 좀 살살 붙들걸. 막내의 까만 머리칼을 빗어주고 쌀을 한 숟갈씩 떠 입에 넣어줄 걸. 번들번들한 막내의 볼을 어루만지는 상상을 하며 병실을 나섰다. 카트의 차가운 손잡이를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내릴 수 있을 뿐이었다. 주변은 온통 희었다.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칸 안에 들어가 문을 잠구고 틴케이스를 꺼냈다. 새하얗고 축축한 알콜솜을 한 겹 떼어 입에 넣었다. 이 때는 눈을 감아야 한다. 그리고 땟국물이 흐르는 막내의 얼굴을 떠올려야 한다. 어금니 사이로 알코올이 비집고 나오며 입 안을 몇 번 맴돌다 목으로 넘어갔다. 알코올은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질 것이다. 새빨간 적혈구에 붙어 온몸을 돌며 종양과도 같은 응어리를 녹일 것이다. 잇몸이 얼얼하고 목구멍에 콩알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

 새로 입원한 여자는 백인 간호원이 나가고 내가 들어오자마자 침상에 소변을 봤다고 이야기 했다. 3층의 환자는 오늘도 약을 집어던졌고, 병원 최고참 노파의 욕창에서 나는 끔찍한 냄새는 뇌까지 스미는 것 같았다. 어느 병실에 들어가든 나에게만 유독 오래 머무는 시선이 불편했다. 곤란한 질문이나 노골적인 멸시 또한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커다랗고 흰 노인만은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노인의 무관심이 좋았다. 그의 병실에서는 편안했다.

 주일마다 하는 파독 간호원 모임은 둘러앉아 한국 음식을 해먹으며 똥 닦아 번 돈 고향으로 다 부친다는 우리의 신세를 연민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나는 우리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자 타지에서 어딘가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좋아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었다. 간호원 모임은 항상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웠다. 여기저기서 들뜬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코쟁이 간호원들과 환자들 뒷담화도 빠질 수 없었다. 연배가 낮은 나는 사람이 두 명도 들어갈 만한 대야에다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있었다. 20인분이 족히 넘는 반죽은 한번 들어 올릴 때 마다 어깨가 아려왔다. 도움을 요청하려 주위를 둘러봤지만 저들끼리 떠드느라 바빴다. 나도 어서 나이가 들어 고상하게 지단을 부치리라. 나는 그런 가벼운 소망으로 열이 올랐다.

 어느 부산 억양이 심한 여자가 자기 환자는 발길질은 기본에 툭하면 백인 간호원을 불러오라고 소리친다고 하소연 했다. 새삼스레 노인은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아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화에 끼고 싶어 내 환자는 엄청나게 뚱뚱한 노인이라고 말했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간호원 중 몇몇이 나를 곁눈질로 보더니 금방 다른 주제로 넘어가버렸다. 내 음성이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고 공중에 흩어졌다. 이곳에서는 가끔 내 존재가 아버지가 뿜어대던 담배연기보다 희미한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더욱 열심히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그 때 저 쪽에서 같은 요양원의 간호원이 다가와 노인이 젊을 적 군인이었다고 얘기해주었다. 나는 그녀가 고마웠다. 노인이 군인이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 육중한 몸을 끌고 어떻게 전쟁터를 누볐을까. 그 때는 호리호리 했을까. 머리를 단정히 넘긴 그녀는 내 귀에 손을 모아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그 할아버지. 나치 대원이었대. 인생에 감흥 없고 만물에 무기력한 그 노인이 악명 높은 나치 대원이었다니. 팔뚝에 하켄크로이츠 문양을 단 채 가슴을 활짝 펴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도저히 상상 되지 않았다. 나는 노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다. 유대인을 구분하는 그만의 방법이 있을까. 우스운 콧수염을 가진 그 남자는 만나보았을까. 다른 나라에 쳐들어갈 때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반죽을 굴렸다. 물어볼 용기도 없을 뿐더러 노인은 대답을 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하루에 두 번씩 노인의 자세를 바꾸어주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오늘은 특히 그랬다. 태산 같은 노인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안고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호흡을 멈추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자 어깨가 비명을 질러댔다. 어제 파독 간호원 모임에서 혼자 무리한 탓이었다. 노인을 일으켜 앉힐 때보다 다시 눕힐 때가 문제였다. 노인을 부드럽게 침대에 눕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언제나 중간에서 그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노인의 등 뒤에 낀 깍지가 금방이라도 풀릴 듯이 떨렸다. 몸을 천천히 침상 쪽으로 기울였다. 내 품에 가득 들어차는 노인은 본인이 가진 의지라고는 조금도 없어보였다. 그저 내 손길이 가는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다 가끔 눈을 떴다. 지난 주 알콜솜을 훔치는 내 모습을 보고 장난스럽게 웃던 모습이 꿈 같았다. 노인의 몸이 하늘을 향해 점점 펴질수록 내 몸은 땅을 향해 점점 굽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결국 평소보다 한 뼘이나 높은 위치에서 그를 놓치고 말았다. 맞잡은 깍지가 힘없이 풀리고 노인이 내 품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의 금색 속눈썹이 위 아래로 천천히 갈라졌다. 일렁이는 수면에 비친 어린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막내였다.

 막내는 거의 한달 동안이나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폐병이라고 했다. 약도 민간요법도 들지 않았고 나는 밤새 뜬 눈으로 막내의 옆을 지켰다. 동혁이와 동철이의 도시락엔 밥과 김치밖에 싸주지 못했고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막내가 밥도 마다하고 헛소리를 시작했을 땐 종일 막내를 끌어안고 온갖 신에게 기도했다. 혼절할 것 같은 표정이던 예수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밤새 빌고 또 빌었다. 천당은 좋은 곳이래도 아직은 안 돼요. 막내는 안 됩니다. 막내는 몸이 부서져라 기침을 했고 점점 더 자주 선혈을 토했다. 나는 내 치맛자락에 피를 문질러 닦아내고 막내의 헐렁한 난닝구를 꼭 잡았다. 그리고 내 쪽으로 자꾸 당겼다. 흰 면 아래 고스란히 드러난 막내의 얇은 몸이 자꾸만 굽었다. 나는 그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 날은 유독 볕이 따듯하고 좋은 날이었다. 막내의 증세가 며칠 만에 약간의 차도를 보여 나는 오랜만에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미음 한 그릇을 비우고 영숙이와 농담 따먹기도 하던 막내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막내를 다리 사이에 끼워 뒤에서 끌어안고 보드라운 머리통에 얼굴을 묻었다. 그동안 누나가 많이 못 놀아줘서 미안해. 다 나으면 하고 싶었던 놀이 꼭 다 하자. 나는 조그만 막내의 귀에 속삭였다. . 약속. 막내의 대답과 함께 조그만 몸이 쿵쿵 진동하며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막내를 돌보느라 장을 보러 가지 못해 집에는 당장 오늘 저녁을 해 먹을 재료도 없었다. 막내가 좀 나아졌으니 장을 보러 다녀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맡는 바깥공기가 유난히 상쾌하게 느껴졌다. 집과 멀어질수록 점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시장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사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팔목을 붙잡았다. 국민학교 동창이었다. 해맑은 그녀는 나를 앞뒤로 흔들며 몹시 반가워했다. 얼떨결에 그녀의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 다방에 가게 되었다. 그녀가 사주는 커피를 쓰지 않은 척 하며 우리는 걱정 없던 시절에 대해 얘기했다.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실 때, 밝게 인사하고 마음껏 뛰어 노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일의 전부였을 때를 추억했다. 동창과 함께 있으니 그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7시가 넘어있었다. 이 공간을 빠져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동생들이 배를 곯고 있을 터였다. 그녀와 다음을 기약하며 다방을 빠져나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쉬움에 발바닥이 땅에 쩍쩍 달라붙는 것 같았다.

 장 본 것을 가득 안고 단칸방 문을 열었다. 콩나물시루처럼 다닥다닥 붙어 앉은 나의 일곱 동생들이 동시에 나를 올려다보았다. 절로 숨이 막히는 풍경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젖은 얼굴의 정숙이가 있었다. 정숙이의 무릎 위에는 막내가 있었다. 이름도 없이 막내. 부모는 막내의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죽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막내야. 하고 불렀다. 막내야. 막내야. 나는 정숙이의 팔을 치우고 새빨갛게 물든 난닝구를 끌어당겼다. 막내의 팔을 내 목에 두르고 가만히 안아 올렸다. 막내의 팔이 뻣뻣해서 잘 굽어지지 않았다. 막내야. 병원에 가자. 뒤에서 정숙이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뒤돌아 정숙이의 뺨을 올려붙였다. 너는, 너는 애가 이러면 병원에 가야지. 나는 막내의 입 주변에 말라붙은 피를 소매로 닦아냈다. 피는 내 소매로 옮겨오지 않고 그대로 입가에 남아있었다. 막내의 벌어진 입술이 내가 당기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딸려왔다. 막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그 짧은 복도를 지나 현관을 열기까지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막내는 평소보다 배로 무거웠다. 정숙이가 뛰어와 앞을 가로막았다. 나를 닮은 정숙이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언니. 갑자기, 순식간에. 이미 두 시간도 지났어. 팔에 힘이 풀린 것을 알게 된 건 이미 막내의 추락이 시작되고 난 이후였다.

 막내는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칼이 공중으로 뜨고 팔이 나를 향해 솟았다.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빨간 난닝구가 공산당 깃발처럼 펄럭였다. 환한 가로등 빛 아래에서도 막내의 눈동자가 어디를 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막내의 등이 땅에 먼저 닿고 그 다음이 머리였다. 그 조그만 머리통이 땅에 부딪혔다 다시 튀어오를 때 나는 저수지 바닥으로 가라앉은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너희끼리 잘 살아.

 노인의 육중한 몸이 흰 침상으로 추락하고 그의 커다란 머리 또한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떨어졌다. 나는 그 날 이후 한동안 막내가 폐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내가 떨어트려서 죽었다는 착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내가 방금 노인을 죽인 것은 아닐지 확인했다. 깡마르고 새카만 동양의 소년과 커다랗고 창백한 서양의 노인. 그 둘이 어디가 그리 비슷하다고, 내가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모두 눈동자 때문이었다. 노인의 눈은 막내가 빨간 난닝구를 입고 있을 때와 비슷했다. 갑작스러운 추락에 놀란 노인의 살들은 한참이나 몸 이곳저곳을 유영했다. 육중한 주인을 원망하듯 침대에서 철제들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동시에 노인의 미간이 거칠게 구겨지며 눈썹의 앞머리가 위로 솟았다. 나는 급하게 연신 사과했지만 노인은 내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노인은 순간 무엇을 보았다. 요양원의 흰 천장이 아니라 분명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작게 독어로 중얼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내게 하는 말이라 여겨 노인의 입에 귀를 바싹 가져다 대었다. 그의 잠긴 목소리에서 울음이 섞여 나왔다. 나인, 나인. 아니라는 부정의 말을 그는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노인은 계속해서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공중에서 손을 휘저었다. 나는 그런 노인의 손을 잡고 내 어깨에 둘러주었다. 탄력을 잃은 손은 뼈와 살 사이에 공간이 만져지는 듯 했다. 침대에서 추락의 여운이 가셔 마침내 고요해지고 나서야 그의 흐느낌도 사그라들었다. 노인은 전처럼 또다시 멍 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나는 침대를 더 단단히 고정했다.

 일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고 다시 일요일이 왔다. 오늘은 파독 간호원 모임에서 각자 음식을 싸와 공원 피크닉을 가는 날이었다. 나는 지난 주 수제비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으므로 오늘의 활동이 반가웠다. 들뜬 마음과는 별개로 내 안색은 무척 좋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눈 밑이 거무죽죽하고 볼도 더욱 패여 있었다. 며칠 째 눈만 감으면 노인과 막내의 추락 이 교차하며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인의 죽은 생선 같은 눈동자는 자꾸 추락할 때의 막내를 떠올리게 했다. 자꾸 노인을 붙잡고 싶었다. 그를 붙잡으면 막내가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풀밭 위에 돗자리를 깔고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간호원들이 도시락을 열기 시작하자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와 다양한 디저트가 오와 열을 맞추어 섰다. 초콜릿을 두른 동그란 탑 모양의 바움쿠헨도 있었다. 빵집에서 언제나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는 호화스러운 독일 전통 케이크였다. 우리 모두가 똥 닦아 번 돈 한국으로 다 부친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말 그대로 다 부치는 것은 나 뿐이었나. 나는 한참동안이나 내가 싸온 도시락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면 그 안의 내용물이 마법처럼 바뀌어 있기를 원했다. 옆자리 간호원의 성화에 못 이겨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스뎅 도시락 통을 열었다. 찐 감자 몇 개가 들어있었다. 간호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볼품없는 내 도시락으로 쏠렸다. 미숙아. 6.25 끝났어. 많은 간호원 중 누군가가 말했다. 다들 배를 잡고 한바탕 웃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 했다. 간호원들은 내용물이 터지다 못해 흐르는 샌드위치를 저마다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나도 껍질을 벗긴 감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무리 씹어도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독일의 감자는 유독 퍽퍽했다.

 집에 가는 길에 빵집에 들렸다. 언제나 처럼 전 날 만들어 둔 저렴한 호밀빵을 사려고 했다. 다른 빵은 쳐다 볼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들어서자마자 윤기가 흐르는 바움쿠헨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테 같은 선이 동그랗게 수놓아져 있어 나무 케이크라는 뜻의 바움쿠헨. 황금빛 고리가 겹겹이 쌓인 모양에 나는 홀린 듯이 다가섰다. 매일 애써 다른 빵들에겐 눈길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무척이나 유혹적이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전날 만든 빵이 있는 코너로 향했다. 어쩐 일인지 매일 호밀빵이 있던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빵집 주인에게 묻자 어제 다 팔려서 없다고 했다. 엉거주춤하게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시선 끝에 다시 바움쿠헨이 꽂혔다. 미숙아. 6.25 끝났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간호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국 평소 나의 저녁보다 스무 배는 비싼 바움쿠헨을 사고 말았다.

 책상에 바움쿠헨을 조심스레 내려놓자 오른 손목이 아렸다. 빵 봉지를 든 손에 힘을 잔뜩 주고 걸어온 탓이었다. 종이를 조심스럽게 벗겨내고 냄새를 맡았다. 이국의 열매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일정한 간격의 동그란 줄무늬는 신성해보이기 까지 했다. 포크를 살살 밀어 넣어 나이테를 잘랐다. 케이크를 입에 넣자 이에 부드럽게 잘리며 달콤한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졌다. 한국에서 어쩌다 얻어먹은 카스텔라와도 비교가 안 되는 맛이었다. 나는 그 고급 케이크를 정신없이 입에 넣었다. 종이에 붙은 부스러기 하나까지 싹싹 핥아 먹는 데에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바움쿠헨이 있었던 봉지를 바라보았다. 내 한 달 치 저녁 값이 저 작은 봉투에 담겨있었다. 입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었다. 나는 내 배를 내려다보았다. 저 볼품없는 몸통 안에 그 많은 돈이 들어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속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리며 꿈틀댔다. 남아있는 빵 봉지가 풍기는 고급 버터 냄새가 구역질났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급하게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지만 역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소화 되다 만 오늘 저녁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우아한 나이테는 온데간데없었다. 바움쿠헨은 변기 물을 타고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나는 어제 치운 노파의 토사물을 생각했다. 빵 봉지 또한 변기에 던져 넣고 물을 내렸다. 뱃속이 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서랍 속에서 틴케이스를 꺼냈다. 겹겹이 뭉친 알콜솜 덩어리를 통째로 입에 넣고 씹었다. 따가운 잇몸을 혀로 문지르며 침대로 몸을 던졌다. 쏟아지는 알코올이 목구멍으로 세차게 넘어갔다. 기절하듯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땐 한국의 집이었다. 쌕쌕 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나의 일곱 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단칸방을 채우는 파릇파릇한 생명력에 질식할 것 같았다. 나는 벽에 붙어 동생들을 바라본 채 옆으로 누워있었다. 막내가 있을 때 나는 천장을 보고 자 본적이 없었다. 항상 벽에 밀착해 모로 누워 자야했다. 하지만 막내가 죽고 난 이후 천장을 보고 잘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전히 벽에 붙어 옆으로 누워 잤다. 몸을 활짝 펴지 않고 저린 팔을 안은 채 그렇게 구겨져서 잤다. 박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천장을 보고 누웠다. 가슴을 쭉 펴자 막내의 부재가 다가왔다. 나는 동혁이라도 보고 싶어 고개를 돌렸다. 동생들은 없고 작은 걸상이 보였다.

 나는 서독의 한 낡은 아파트 침대 위였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평소와 다르게 발바닥에 아무것도 닿지 않는 생경한 느낌에 침대 밑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엔 까만 구멍인 줄 알았던 것은 커다란 입이었다. 아가리를 찢어져라 벌린 존재는 나와 닮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발광하는 입술은 언젠가 숲에서 본 눈도 못 뜬 채 먹이를 갈구하는 아기새를 떠올리게 했다. 어미새는 쉴 새 없이 먹이를 날라주었다. 우리의 어미새는 미끄러운 물 안으로 사라져버렸기에 나는 입 속으로 몸을 던졌다. 새카만 어둠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내 일곱 동생을 마주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모두 동강나 있었다. 7개의 몸통 단면에서 수천 마르크의 지폐가 나부꼈다. 나는 내 몸통을 내려다보았다. 내 몸통의 단면에서는 통나무의 나이테 같은 것이 보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끝없이 이어진 나이테는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풍겼다. 나는 내 옆구리를 베어 먹으려 허리를 깊이 숙였다.

 심한 복통과 함께 눈을 떴다. 간밤에 흘린 땀에 베갯잇이 흥건했다. 입 안의 솜뭉치를 빼서 책상 위로 던졌다. 눈앞이 뿌예서 벽에 붙은 시계가 잘 보이지 않았다. 침대를 밟고 일어나 벽을 더듬었다. 푹푹 꺼지는 용수철 위에서 흔들리는 몸을 붙잡고 벽시계에 눈을 바짝 가져다 대었다. 분침과 초침이 커졌다 작아지며 어지럽게 돌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눈꺼풀을 위로 잡아당겼다. 정오가 넘은 시각이었다. 놀라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눈에 보이는 옷을 아무거나 걸치고 아파트를 뛰쳐나갔다. 4시간 넘게 지각한 셈이었다.

 병원까지 300미터쯤 남았을 때부터 소음이 들렸다. 그 소음은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커졌다. 서로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 추락하고 진동하는 쇳덩이들의 소리였다. 병원 바로 옆 건물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병원에 들어서며 수간호원에게 용서를 구하는 말을 골랐다. 흰 복도를 가득 메우는 공사 소음에 골이 울렸다. 순간 삐걱대는 침대에도 울음을 터트리던 노인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방향을 틀어 노인의 병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침상에 앉은 노인에게 대여섯 명의 간호원이 붙어있었다. , 집에. 뜨거워. 노인은 괴로운 표정으로 계속해서 소리쳤다. 쉰 목소리로 울부짖는 노인을 양쪽에서 붙잡고 나풀대는 간호원들은 몹시 지쳐보였다. 한 간호원이 노인의 팔에 주사바늘을 박아 넣자 다른 간호원들이 힘을 빼고 물러났다. 노인의 몸부림이 잦아들었다. 그 사이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노인의 새파란 눈동자는 뜨겁게 달궈진 후에 찬물에 담가 조각난 것 같았다. 노인의 상체가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나는 그를 붙잡기 위해 뛰었지만 닿지 못했다. 노인은 또 다시 추락했고 머리통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다시 떨어졌다. 나는 커다란 파도처럼 출렁이는 노인을 붙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의 얼굴을 껴안고 입가를 소매로 문질러 닦았다. 대여섯 명의 간호원들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눈앞이 흐릿해 그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는 나뿐이었다.

 시체 몇 구를 혼자 닦아야 했지만 다행히 한국으로 쫓겨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노인의 병실로 향했다. 그의 입에서 금방이라도 피가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창백하고 거대한 그가 언제까지나 새하얗기만을 바랐다. 병실 문 앞에서 뜻밖에도 노랫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동요의 멜로디였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허공에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희고 통통한 손가락이 보였다. 노인이 고개를 까딱이며 동요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나 싶어 허벅지를 살짝 꼬집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그에게 다가갔다. 군터. 구텐 모르겐. 내 인사에 노인은 나를 쳐다보았다. 구텐 모르겐. 노인도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심지어 아주 해사하게 웃어 주었다. 처음 있는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사람이 하루 만에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나. 그동안 노인의 모습은 여기가 영안실인지 일반 병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 시체 같던 노인이 이렇게 생기 넘치는 모습이라니. 때 묻지 않은 어린 아이와도 같은 웃음이었다.

 수간호원은 노인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유아퇴행이 온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전에도 이런 증상을 보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오래 지속된 적은 처음이라고도 했다. 그가 전에도 이런 적이 있다니. 그럼 언제든지 그 시체 같던 모습으로, 끔찍하게 괴로워하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나는 그의 정신이상에 온 힘 다해 장단을 맞추기로 결심했다. 그의 동심 가득한 표정은 빨간 난닝구를 입은 막내가 아니라, 희고 깨끗한 난닝구를 입은 막내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골목을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막내, 장난스럽게 웃는 막내가 거대한 노인 안에 있었다.

 어제는 노인과 구슬치기, 오늘은 딱지 접기를 했다. 처음 배우는 놀이임에도 노인은 곧잘 따라했다. 비록 그가 웃을 때는 가래가 끓었지만 표정은 티 없이 맑았다. 노인은 영락없는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고, 울고, 떼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대체적으로 행복해보였으며 나는 그런 노인의 모습이 좋았다. 막내의 그런 모습을 좋아했었다. 가끔은 노인을 막내야. 하고 잘못 부르기도 했다. 그래도 노인은 헤실헤실 웃었다. 어린 그와 노인이 된 그. 그 사이 삶 중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은 노인이 된 그이다. 나는 그가 영영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어제는 파독 간호원 모임에 가지 않고 하루 종일 노인과 할 놀이를 준비했다. 이것저것 사고 색칠하다 보니 전부 막내가 좋아하던 파란색이었다. 파란색 바람개비, 파란색 색종이 따위의 것들을 한아름 안고 병실문을 열었다. 노인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오랜만에 보는 텅 빈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바람개비 하나를 떨어트렸다. 구텐 모르겐. 군터. 떨리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바람개비를 주워 그에게 다가갔다. 노인이 나를 돌아봤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는 바람개비를 불어보였다. 코앞에서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노인은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숨이 차도록 바람개비를 돌렸다. 노인의 입꼬리와 눈썹이 점점 올라갔다. 노인이 조그맣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활짝 웃었다. 처진 눈꺼풀 아래 눈동자가 반짝였다. 파란 눈 안에 비친 파란 바람개비는 계속 해서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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