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 질문 없는 사회
[느낌표] 질문 없는 사회
  • 장효주 대학·사회부장
  • 승인 2023.10.04 1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시간 교수님이 수업을 마치며 하는 말이 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질문 있는 사람 있나요?” 늘 그랬듯이 오늘도 적막만이 흐른다. 이런 상황에서 질문을 한다면 수강생 모두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꼭 이런 상황이 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부터 우리에게서 질문을 앗아갔을까.

 생각해보면 유아기에 우리는 이른바 질문 ‘왕’이었다. “왜?”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모든 어른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까지도 반에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려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질문하기 힘든 환경이 갖춰지고 이해보다 암기를 중시하는 입시 과정을 거쳐 점차 질문하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가끔 하는 질문의 목적은 대부분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근본적인 질문이라 묻는다면 아니다. 단순히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한 질문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에서는 ‘질문을 살아간다’는 표현이 언급된다. “오랜 시간 마음 한구석에 질문을 품는 거예요. 질문을 살아내는 거죠.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해결책을 찾아버려요.”

 소크라테스는 명백한 것을 질문하지 않는 것이 실수라고 생각했다. 명백한 질문일수록 성급하게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지독히도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질문하고, 결국 그들이 무지를 깨닫고 세상을 조금 더 정확한 눈으로 바라보게끔 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에서는 철학은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 것이 아니라, 해답이라는 목적지까지 가는 것을 서두르지 않을 뿐이라는 요지의 단락이 있다.

 질문은 단순히 철학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지난 20일에 열린 국가교육위원회에서는 ‘한국 교육개혁과 미래 과제’와 관련해 토론회가 열렸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서의 교육 개혁 방향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 전문가는 인재 선발에 있어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AI는 질문을 하지 못한다. 문제 푸는 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기에 더욱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상황이다. 

 그러니 단순한 질문부터라도 시작해보는 게 좋겠다. 점차 근본적인 질문까지 다가가 세상을 정확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길 바란다. 또한 사회 분위기가 ‘질문’을 당연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방향으로 변화되었으면 한다. 모두가 질문을 ‘경험’하고, 질문을 살아갈 수 있도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