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로를 거닌 사람] 음악으로 자아내는 삶의 조각, 김광현 동문
[천마로를 거닌 사람] 음악으로 자아내는 삶의 조각, 김광현 동문
  • 장효주 기자, 황유빈 기자, 차승효 준기자
  • 승인 2023.09.04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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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동문이 지휘자로 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김광현 동문이 지휘자로 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김광현 동문이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김광현 동문이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타 연주자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광현 동문
타 연주자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광현 동문

 

 우리는 카페에서 잔잔한 재즈 음악을, 전시회에서 우아한 클래식을 들으며 삶을 더욱 다채롭게 물들인다. 김광현 동문(관현악과 09학번)은 연주자이자, 음악으로 공간의 아우라를 만드는 아트디렉터의 경계에 넘나들고 있다. 이에 그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술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세계적인 첼리스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는 “예술(음악)은 다른 직업과는 달리 음악이 나를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했죠. 저는 이 말처럼 어린 시절 피아니스트 어머니의 연주를 들으며 음악에 흠뻑 빠졌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음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미술관에서 듣는 음악은 그림의 몰입감을 더하고, 카페의 재즈 음악은 커피 향을 좀 더 진하게 만들죠. 이처럼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공간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대학교 관현악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부모님이 모두 우리 대학교 출신이라 가족이 동문이자 선배님이에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학교를 걸었던 좋은 추억도 진학에 한몫 했어요(웃음).

 학부 시절 본인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다루기 까다로운 악기인 클라리넷을 전공한 만큼 음악적인 면에서 예민하고 타협이 없는 학생이었어요. ‘김광현 찾고 싶으면 음대 연습실 2층으로 가면 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정말 열심히 연습했죠.

 지금까지 연주한 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이 있다면.
 2020년 프랑스 파리에서 지휘한 클로드 드뷔시의 ‘바다’라는 곡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당시 졸업을 앞두고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들고 고단했던 감정들을 담아 해당 곡의 마지막 악장까지 지휘했죠.

 반대로 지금까지 연주한 곡 중 가장 소화하기 어려웠던 곡이 있다면.
 음악대학 졸업 직전 현악기 전공 동기들과 준비한 곡인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예요. 음악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난도를 가진 브람스의 작품인 만큼 아직도 두렵고 떨리는 작품이죠.

 우리 대학교 관현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셨습니다. 우리 대학교 관현악과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셨나요?
 균등하게 부여되는 연주 참여 기회와 교수님들의 교육적 견인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죠. 이는 수없이 많이 배출되는 콩쿨과 입상의 결과로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연주자 지휘자 아트디렉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좋은 예술작품을 공유하려는 태도가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예술가들이 고민하며 창작한 작품들을 사람들과 함께 알게 될 때의 쾌감도 한몫 한다고 생각해요.

 연주자에서 지휘자까지, 다양한 직위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매 활동마다 달라지는 직위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시나요?
 클라리넷 연주자로서는 지휘자가 원하는 방향을 빠르게 캐치해 오케스트라 전체에 방해되지 않고 지휘자의 의도대로 흘러갈 수 있게 서포트 한다는 마음을 갖고 연주해요. 부지휘자로서 연주자와 지휘자 사이의 중재 역할을, 지휘자로서는 작곡가가 의도한 바를 최대한 반영하도록 음악적인 요구를 정확히 지시하는 역할을 하려고 하죠.

 프라하의 봄 국제 콩쿨에 참여해 본선 진출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셨습니다. 해당 콩쿨에 임하시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선은 한국에서 연주를 녹음해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졌어요. 이때 전 세계의 수많은 녹음본 중 제 연주가 선발돼 프라하로 떠나는 티켓이 주어졌죠. 본선에선 그 첫 시작부터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연주했어요. 정말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예요.

 본인에게 ‘영남대학교’는 어떤 의미인가요?
 영남대학교는 제게 언제나 자랑이었어요. 콩쿨 등의 여러 대회에서 본선이나 입상의 순간에 대학 출신을 물어보면 저는 언제나 당당하게 영남대학교 학생이라고 이야기했죠.

 우리 대학교를 졸업하신 후에도 영남대학교 개교 75주년 기념 오페라 ‘라 보엠’ 부지휘자, 영남대학교 이승진 첼로교수 퇴임 연주 지휘자 등 우리 대학교의 주요 행사에 참여하신 바 있으십니다. 모교 선·후배와 무대를 함께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저를 가르쳐주신 모교의 교수님, 선·후배들과 한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 연주회의 리허설이 설레었어요. 또한 무대를 위해 학교에 왔을 때 떠오른 추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참이었죠.

 경북도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대구시립교향악단 등 다양한 협연을 진행하셨습니다. 타 연주자와 함께 활동하며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권위 있는 분과 협연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돼 미흡한 부분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연주자분들이 조언도 해주시고 음악의 방향에 대해서도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그분들께서 제가 가려는 길을 먼저 가신 분들이라 생각하니 자연히 배우는 자세로 겸손하게 임할 수 있었어요.

 공연을 준비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무대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임하는 거예요. 항상 대기실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며 이 다짐을 마음속으로 이야기하고 무대에 올라요.

 지휘자로 오래 활동하시면서 생긴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전에는 재해석이 작품의 본질을 흐린다고 생각해 악보대로 연주하려 했지만 현재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지휘자의 시각에서 보니 작곡가는 연주자들이 이렇게 연주할 것임을 미리 계산하고 악보를 그렸다는 점을 알 수 있었거든요.

 본인이 롤모델로 삼는 지휘자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저는 지휘자인 ‘테오도르 쿠렌치스’ 를 꼽고 싶어요. 리허설 때 가죽 라이더 재킷을 입고 등장하는 등 자유로운 모습만큼 이분의 음악은 자유와 탈피를 선사하는 듯해요. 어떤 활발한 친구가 모범생의 일기장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 내 그 학생 본연의 세계가 신선해진달까요. 그런 점은 말러 6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앨범에서 잘 드러나고 있죠.

 본인이 생각하는 지휘란 무엇인가요?
 지휘란 영혼의 조각을 내어주는 것이에요. 제가 가진 소설책 속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는 페이지를 선물하고, 선물 받은 상대방은 글을 읽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지휘라고 생각해요.

 아트디렉터로서 어떤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신가요?
 현재 소누스 아트에서 공연 중의 순간들을 모아 연주자와 기획사를 부각하는 제작물 작업에 참여 중이에요. 지난 2021년에는 신세계 면세점의 ‘라 센(La scène)’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 유럽 여행을 떠난 듯한 설렘이 전해지는 온라인 플랫폼을 제작했죠.

 신세계 면세점 ‘라 센(La scène)’ 아트디렉터, 소누스 아트 협업 아트디렉터 등 아트디렉터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아트디렉터라는 직업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트디렉터는 실제로 우리가 소비하는 시공간의 창작물을 다루는 직업이에요. 작품의 소통 범위가 넓어 관객들에게 무대가 아닌 곳에서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라 생각해요.

 지난 2021년 신세계 면세점과 협업한 ‘라 센(La scène)’ 시리즈 또한 유럽의 풍경과 어울리는 음악을 통해 낯선 여행지에서의 설렘이 전해졌습니다. 해당 시리즈의 영상 제작 시 곡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었나요?
 저는 어떤 장소에 가면 가장 먼저 이어폰을 착용해 공간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요. 그리고 눈앞의 현실은 영화의 한 장면이고 주인공은 나라고 상상해요. ‘라 센(La scène)’은 이처럼 제가 갔던 장소와 그때 들은 음악을 삽입한 거라 여행지의 생생함이 전해지길 바랐어요.

 아트디렉터로서 본인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휘자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보니 함께 협업하는 분들께 정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끄는 것이 장점이라 생각해요. 실제로도 모든 일을 리허설하듯이 처리하는 편이에요(웃음).

 아트디렉터란 직업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트디렉터는 시대의 흐름을 충분히 읽어야 가능한 직업이에요. 작품 장르와 관계없이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갈래를 엮어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판적인 시선은 거둔 채 오늘날의 순간과 상태, 작품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종합해 아티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죠.

 ‘KBS 대구 클래식 FM 목관의 세계’에서 진행자로 참가하고 계십니다.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프로그램 담당이신 황진 피디님께서 우연히 제 연주회에 오셨어요. 공연이 끝난 후 제게 연락을 주신 계기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죠. 그날 공연의 마지막 앙코르곡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마 연주와 진행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목관 연주자를 찾으신 것 같아요.

 공연장에서의 연주와 라디오 방송에서의 연주는 환경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라디오 방송 진행 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공연장은 울림이 가미된 공간인데 라디오 스튜디오는 소리의 반사가 없어 연주하기 힘든 시스템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스튜디오에서의 소리는 무대에서처럼 힘을 쓰기보다 멜로디의 뉘앙스에 섬세하게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활동을 해 오신 만큼 힘든 적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본인만의 멘탈 관리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려운 일에 처한 당시에는 그 순간이 지나가길 기도하지만 1년만 지나도 ‘그땐 그랬지’ 하면서 추억하잖아요. 아무리 괴롭고 힘든 일이라도 시간이 약이고 언젠간 추억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어려운 순간이라도 제 의지로 시작한 일의 과정이기에 버티고 또 버티면서 매 순간을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기로 마음먹죠.

 다양한 활동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프라하에서 다음 날의 경연 연습을 하던 중, 잠시 잠이 들었는데 벌 한 마리가 방으로 들어왔어요. 놀라서 벌을 쫓아내려다 실수로 악기를 넘어뜨렸는데 키 한쪽이 휘었죠. 주말은 쉰다는 유럽의 전통으로 악기사도 문을 닫아 절망적이었어요. 그러나 악기를 가져오면 수리해 주겠다는 곳이 있어 택시로 40분 거리를 다녀왔던 기억이 나요. 그때 제 악기를 수리해 주신 흰 수염 할아버지 수리사님의 안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무대에 설 수 있었기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중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바다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보시다시피 얼굴이 조금 탔죠(웃음)? 여름이면 의자와 파라솔을 펴놓고 하염없이 음악을 들으며 바다 보는 것을 좋아해요. 가끔 서핑도 즐기고요. 그래서 바다를 사랑했던 지휘자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인 영화감독의 꿈을 반드시 이뤄내고 싶어요. 지금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 온 이유도 앞으로 만들고자 하는 작품에 필요한 경험이기 때문이죠. 인생의 본질에 대한 영화를 그려내는 영화감독이 되는 게 목표예요.

 예술계로의 진출을 꿈꾸는 우리 대학교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모두에게 인정받으려 조급해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빈틈없이 준비해도 모두의 마음에 들 수는 없어요. 그럼에도 죽는 힘을 다해 준비해서 본인 무대에 떳떳해지세요. 더불어 본인 예술의 방식이 정답이라 생각한다면 절대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소신을 가지세요.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예술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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