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가 의무인가요?
과로가 의무인가요?
  • 곽려원 기자, 황유빈 기자
  • 승인 2023.03.2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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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외신이 우리나라 정부가 추진한 주 69시간제를 조명하면서 ‘과로사’를 ‘kwarosa’로 표기해 주목받고 있다. 해당 외신은 한국에서 하나의 직장 문화로 자리 잡은 ‘과로’를
고유명사처럼 한국어 발음 그대로 표기했다. 이전에도 영국, 스페인, 호주 등 세계 각국 언론에서 한국의 노동 시간 문제를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과로 사회의 현황과 해결방안 등에 대해 알아봤다.

 

우리나라는 과로사회?

 우리 사회에서 과로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7일 한진택배 노동자들은 본사 앞에서 농성에 돌입해 당일배송 강요 중단을 요구했다. 또한 지난 25일 서울 도심에서는 대규모 노동자 집회가 있었고 우체국 택배는 전면 파업에 돌입됐다.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의 일중독 문화’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감소하는 근로 시간, 감소하는 노동자의 과로?=지난해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주요국 연간 근로 시간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근로 시간은 1,915시간으로 집계됐다. 이는 OECD 평균인 1,716시간보다 200시간가량 많은 수치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은 2017~2021년 과로사한 노동자는 모두 2,503명이라고 밝혔다. 해당 수치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A 씨는 “최저임금이 높아져서 기업이 사원 추가 고용을 꺼리게 돼 소수 인원이 과중한 업무로 과로하게 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최근에는 OECD 연간 근로 시간이 2016년 2,068시간에 비해 감소하는 추이를 보였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과로의 기준인 ▲근로시간 ▲노동 강도 ▲노동 밀도를 모두 고려해서 이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렬 가톨릭대 교수(직업환경의학과)는 “동일한 근로시간과 밀도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야간 노동은 그 강도가 강하기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이미 과로 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라고 주장했다. 해당 주장에 따르면, 과로는 단순히 장시간 노동과 장시간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통틀어 의미한다. 김영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노동자가 과로의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은 착취의 시간적인 증거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과로와 한국인, 그 배경은?=현재 우리나라의 과로는 우리 사회의 직장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일부 외신은 한국의 근로 문화를 소개하며 극심한 노동으로 인해 돌연사라는 것을 일컫는 단어로 ‘Kwarosa’를 언급했다. 우리 사회가 과로 사회로 이어지게 된 것은 근로시간이 생산성과 일치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배경이 됐다고 주장한다. 해당 주장에 따르면, 국가 발전을 이유로 강요됐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이해 또는 힘이 축적되며 과로가 일종의 문화, 혹은 한국인 자체의 기질인 것처럼 자리 잡았다고 주장한다. 김영선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가 보이는 과로의 양상은 개인이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에 의해 강제된 것에 가깝다”고 밝혔다.

 또한 기존 제도의 허점 역시 과로 사회의 배경이 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며 새로운 형태의 근로자가 등장했고, 기존 법안이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며 해당 근로자들이 과로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형렬 교수는 “특수고용직이나 자영업자는 여전히 법의 테두리 밖에 있어 근로 시간 규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과로사회, 과로死회가 되지 않도록

 

 사회에서는 근로자 과로 문제의 제도적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과로 사회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해결책을 좇아봤다.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를 위해=일각에서는 과로 사회의 배경적 요인이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우리나라 많은 기업에는 장시간 노동과 야간 근무가 흔했다. 이에 현재 일부 기업에서는 해당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조기퇴근제 금요일 선택 휴무제 근무 시간 저축제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김형렬 가톨릭대 교수는 “우리나라 정부뿐 아니라 기업들도 과로를 예방하는 자체적인 제도를 만드는 등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8년 6월까지 ‘주 최대 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됐다. 이는 평일 52시간 근무(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연장 근로 12시간)에 주말 각각 8시간 휴일 근로를 합해 최대 68시간을 근무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이를 개편한 ‘주 52시간 상한제’를 시행해 법정 근로 시간을 주 40시간, 휴일 포함 최대 근로 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형렬 가톨릭대 교수는 “주 52시간 상한제와 같은 규제가 기업의 문화를 바꾸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해결책, 상병수당=상병수당은 취업자가 업무와 관련 없는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하지 못할 때 최저임금의 60%를 지원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이에 우리나라는 오는 2025년 도입을 목표로 지난해 7월부터 ‘상병수당 1단계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해당 시범사업은 ▲입원 여부 ▲대기기간 ▲최대 보장 기간에 따라 3개의 모델로 나눠서 운용 중이다. 이에 대해 이용교 광주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상병수당은 노동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며 과로 사회의 해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병수당은 취약노동집단이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질병으로 인한 휴식 후 발생하는 불이익을 방지하는 제도 역시 없다. 이에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양승엽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보험료 부담이 큰 취약노동 집단에게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 사업 ▲기존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1인 영세자영업자 대상 사회보험료 지원 사업을 중앙정부에서 시행 ▲질병 휴가 후 발생하는 불이익 금지 제도 명문화 후 이를 위반할 때 사업주를 처벌하는 조항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실습생도 품는 제도를 향해=이와 같은 과로는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6월, 한 현장실습생이 ‘장기 현장실습교육 협정서’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 최대 16시간까지 초과 근무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학생은 졸업 요건으로 실습이 필수였기에 과로를 견디며 실습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강문식 민주노총전북본부 정책국장은 “현장실습생은 학생과 노동자 사이의 불안정한 신분에 놓이게 돼 노동자이면서도 노동권을 보장받는 데 제약이 따른다”며 현장실습생이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달 27일 국회교육위원회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개정안’을 의결했다. 해당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 ▲강제 근로 ▲사고 노출 등 현장실습생이 겪는 부당한 대우를 근절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에 대해 우리 대학교 학생 이상준 씨(경영4)는 “해당 개정안과 같이 현장실습생을 보호하는 법안이 계속해서 제정된다면 현장실습생의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해당 개정안에서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근로기준법의 조항을 해당 법안에도 준용했다. 이에 따라 강제노동금지, 중간착취금지 등의 조항이 현장실습생에게도 적용된다. 또한 강제 근로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 위반에 대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생이라는 신분을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현장실습생을 지켜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타국의 과로 방지 규제 살펴보기

 

 1. 미국

 미국의 최대근로 시간은 주 40시간이다. 만약 주 40시간 이상 근무한다면 할증임금이 붙는다. 미국의 근로기준법 제7조는 ‘사용자는 초과근로를 한 사람에게 1.5배 이상의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주간 40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를 고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용자가 고의로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1만 달러 이하의 벌금 또는 6개월 이하 금고형에 처할 수 있다. 그리고 초과근로수당을 반복적 또는 고의로 위반한 사용자는 민사 벌금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미국에서는 1일 근로 시간을 규제하지 않는다.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에는 일일 근로시간 상한도 나오지 않고, 주말과 공휴일 또는 휴일 근로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는다.

더불어 급여가 일정 금액을 넘는 ▲고위관리직 ▲행정직 ▲전문직 ▲외근 판매 ▲컴퓨터 관련 직업 ▲고액 소득자는 초과근로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이 제도를 통해 사용자는 근로 시간으로 성과를 평가받기 어려운 직군의 근로자에게 업무시간을 배분하는 재량권을 주고 근로자는 성과에 따라 생산성을 평가받고 보상받는 장점이 있다.

 

 2. 일본

 현재 일본은 초과노동시간 상한규제 법률안을 통해 연장근로 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초과노동시간은 원칙적으로 월간 45시간, 연간 360시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

 예외적으로 갑작스럽게 업무량이 많을 때는 이 기준을 넘겨 일할 수 있다. 단, 특별연장근로의 상한선은 연간 720시간까지다. 연간 720시간 안에서 1달 100시간 밑으로 일해야 하며, 2~6개월간 월평균 80시간까지 근무해야 한다.
또한 근무 간 휴식 시간 확보를 의무화하고 있다. 사용자는 노동자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업무를 마친 날부터 그다음 날 업무 시작까지 일정 시간을 휴식 시간으로 부여해야 한다.

더불어 *화이트칼라 직종의 경우 ‘재량간주근로시간제도’를 통해 업무 재량권을 늘려 연장근로의 제한이 없도록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근로자 결정권 보장 상황 ▲노동시간 등에 대한 조사 ▲근로 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화이트칼라: 샐러리맨이나 사무직 노동자. 명목상으로는 육체적 노력이 요구되는 일을 하더라도 실제로는 상품생산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3. 영국

 영국의 대표적인 유연근로제도는 ‘0시간 근로계약(Zero-hour contracts)’과 ‘옵트 아웃(Opt out)’이다. 0시간 근로계약에서 노동자는 규칙적인 노동시간 없이 사용자가 요청할 경우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것으로 임금이 책정되며 ‘호출형 계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난 2011년을 기점으로 zero-hour 근로자가 급증했으며, 지난 2021년 약 110만 명 정도의 근로자가 이 계약을 통해 근로했다. 또한 사업자와 계약을 맺는 비정규직 계약이라서 이를 보호하기 위한 영국 내 다양한 움직임이 보이는 상황이다. 현재 ▲간호사 ▲교사 ▲행정 업무 ▲청소노동자 ▲돌봄 근로자 등 다양한 직종에서 해당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옵트 아웃은 만 18세 이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당사자 간 합의를 거쳐 근로시간 한도인 주 48시간 초과 근로를 허용하는 제도이다. 해당 근로자의 자발적 서면 동의가 필요하며, 옵트 아웃 시행기간 동안 근로시간을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이는 근로자가 원할 때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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