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 영봉의 무게
[영봉] 영봉의 무게
  • 정유진 편집국장
  • 승인 2022.10.04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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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영봉을 작성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늘 그렇듯 어떤 주제로 영봉을 써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선배들의 글을 찾아본다. 편집국장이라면 한 번씩은 거치게 되는 필수코스처럼 비슷한 고민의 글들이 여럿 보였다.

 ‘영봉’은 독자들에게 편집국장의 생각을 전하는 칼럼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칼럼’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내는 글이다. 나의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내가 최근에 어떤 고민과 생각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부끄럽지만 무언가를 깊게 공부한 기억도, 고민한 흔적도 없었다.

 어느 순간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기보단, ‘좋다’, ‘나쁘다’의 이분법적 생각으로 쉽고 익숙하게 마무리 지어 왔다. 생각의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주제도 단순해졌다. 그저 하루하루를 관성으로 살아가기 급했다.

 기자 생활을 하기 전, 글 쓰는 시간은 늘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머릿 속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묘한 쾌감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적어나가기 보단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글을 찾아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악습관은 칼럼을 쓸 때도 이어졌다. 기성 신문의 여러 칼럼니스트는 감탄을 자아낼 만한 주제와 고상한 단어들을 버무려 구미가 당기는 칼럼을 적어낸다. 필자도 급하게 생각한 주제들로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해 보지만 엉성하게 그들을 따라 한 칼럼은 ‘어설픔’ 그 자체였다.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어떤 고민과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성찰보다는 ‘있어 보이는’ 주제를 찾는 것에 집중했다. 주제 선정 후에도 나의 시각과 주장을 꺼내기보단 ‘좋은 예시’를 찾아 헤맸다. 부작용으로 정작 내 글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글들과 뒤섞여 어지러웠다.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글은 볼품 없었다.

 또한 쓰고 싶은 주제가 있어도 내 생각을 전하는 말들이 남들에게 ‘위선’으로 비치진 않을까에 대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망설이며 칼럼의 주제를 고치기를 수십번, 이러한 과정들은 칼럼에 대한 부담감을 더했다.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생긴 것도 한몫했다. 정치 성향을 묻는 사람을 만나면 정치 성향을 통해 ‘어떤’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 싫어 대답을 회피하곤 했다. 마찬가지로 ‘어떤’ 주제의 칼럼을 ‘어떤’ 관점으로 적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글에서 나를 숨기고 감추다보니 글의 색은 혼란하고 목소리는 희미해져갔다.

 남은 2번의 기회를 어설픈 글로 날리고 싶지 않아 이번 칼럼은 오랜 기간 고민했다. 이 글을 적기까지도 여러 주제의 글을 썼다 지우며 오랜 인고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부터라도 빈껍데기의 글은 그만두고, 대학 언론인으로서 다양한 학내외 이슈에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사유하고 표현하는 책임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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