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나에게 우리에게
[시선] 나에게 우리에게
  • 김달호 사회부장
  • 승인 2019.11.25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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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발걸음도 점점 느려지며 마지막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2020년 앞에서 잠깐 멈춰 뒤를 돌아본다. 2019년 그 한 해의 기억, 그것을 다시 꺼내 써가기 시작한다. 올해 우린 분노에서 촉발된 분열을 많이 본 한 해였다. 우린 자아와 타자의 존재를 설정했고, 타자의 최종적 소멸을 목표로 자아의 뜻을 함께한 이들과 편을 갈라먹은 시간을 보냈다. 그 누구도 정답을 맞힌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정답에 근접했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극단적 분열로 나아갔다. 그것은 분노에 의한 행동이었다. 자신에게 내려진 가혹한 현실과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에 의해 만들어진 분노 때문이다.

 항상 노력하는 우리는 다음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곤 한다. 간혹 우리가 해 왔던 노력이 누군가에 의해 의미가 부정될 때, 누군가에 의해 폄하되고 깎여 나갈 때 우린 그것에 분노를 느낀다. 그것이 그저 무지에서 발현된 상대의 실수라 할지라도 분노의 감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노의 단계를 넘어서 버리면 우리의 노력에 대해 스스로마저도 의미를 축소해 버린다. 그때 우리 스스로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깊은 회의감이 형성되고 만다. 항상 완벽을 추구했다. 어릴 때부터 우린 공부를 잘해야 했고, 사람과의 관계를 잘 쌓아야 했다. 자신을 위해,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위해 우린 우리의 감정을 숨기고 완벽을 위한 존재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극소수에게는 필요 없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과 다른 삶을 산 우리는 자신을 우주먼지라 칭하며 결국 자아의 극단적 축소로까지 나아가고는 했다.

 마지막이란 종점에 오며 또 다른 미래를 계획하는 이들은 이런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우린 과거란 기억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통해 되살려낸 우리의 옳은 행동과 과오를 적절히 학습해 그것을 새로운 미래에 접목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든 자신을 깎는 행동은 자제해야 맞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매번 이뤄지는 도전에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실패 이후 다가오는 비난은 결코 극복하기 힘든 두려움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에게 남은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걸어온 시간보다 앞으로 걸어갈 시간이 더 많기에, 안개 끼고 어두컴컴한 미래에서의 실패는 또 다른 횃불이 돼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끝에 필자도 서 있다. 영대신문이란 3년의 시간, 그리고 1년의 시간 동안 써 내려간 글의 모든 마침표가 찍혔다. 그동안 많은 이들 덕분에 필자는 성장하고, 그 성장으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점에 감사함과 송구함을 함께 전하고 싶다. 그리고 영대신문과 독자의 연은 이제 필자가 아닌 새로운 기자에게로 이어진다. 그들에게 비판이란 검을 꺼내지만, 한편으로 따듯하게 맞아주길 바란다. 그것이 영대신문, 그리고 영남대학교의 끝없는 걸음에 있어 원동력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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