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봉]나도 미래의 노동자
[영봉]나도 미래의 노동자
  • 편집국
  • 승인 2007.06.07 16: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인칭 시점이 아닌 1인칭 시점으로
노동자들의 잇단 분신자살로 나라안이 어수선하다.
지난 30일 한진중공업에서 근무하던 곽재규씨가 숨을 거둠으로써 올해 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끊거나 끊으려고 시도했던 사람들만 해도 벌써 6명이다. 두산 중공업 배달호씨가 1월 손해배상 및 가압류 등의 노조 탄압에 항의하다 분신한데 이어, 4월에 화물연대 박상준씨, 10월에 한진중공업 김주익씨, 세원테크 이해남씨, 근로복지공단 이요석씨, 한진중공업 곽재규씨까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들이 목숨까지 잃어면서 내세운 것은 하나같이 ‘손배가압류 철폐! 노동탄압 중지!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 이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정부와 국민, 언론 등에서는 무엇을 했던가?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며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노동계에 뜨거운 비난을 받았다. 노대통령은 노동자들이 분신을 하면서까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에 대해 귀 기울이려 하기보다 현 상황의 어수선함을 막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줬다.
일부 언론들의 보도 형태에서도 이런 모습은 찾아볼 수 있다. ‘노조 상대 소송 합리적으로 풀어야(조선일보 1/25일 사설)’하고 보도했다가도 몇 일 후면 ‘불법 파업에 대한 노조원 개인별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를 모두 해제해 주기로 한 부분도 문제(조선일보 3/13일 사설)’라며 금방 논조를 바꾸기도 하고 ‘한국 기업은 노동자들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 등의 보도 논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언론이 언론의 영향력과 역할을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이런 보도형태는 달라졌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파업 원인과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보도하고 사회적 약자를 사회에 적극적으로 통합시키려는 노력을 했다면 지금의 분신정국까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매일 아침 기사를 통해 노동자들의 사태를 알고 그것을 취재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아주 작은 몸짓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한다. 취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의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라는 제3자의 방관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졸업 후 나 또한 노동자가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 역시 노동자가 될 것임을 잊지 말자. 노동의 강도와 노동 환경이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노동분쟁은 타인의 일이 아니라 곧 나에게 닥칠 일이다. 일찍이 우리의 부모님은 노동자였고 우리 고모·이모도 노동자였다. 그리고 이미 노동자가 된 나의 친구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치뤄졌던 전국 노동자대회. 비록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도 그 대회의 의미와 나 역시 그 대회의 주체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