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로를 거닌 사람] “꿈을 찾아다니며 노래하고 싶어요”
[천마로를 거닌 사람] “꿈을 찾아다니며 노래하고 싶어요”
  • 황채현 기자, 박승환 기자
  • 승인 2018.11.26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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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따뜻했던 지난 3월, 캠퍼스를 아름답게 장식했던 클래식 거리 공연을 기억하는가? 당시 거리 공연의 주인공이었던 노희섭 동문(성악과91)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클래식을 선보이며 행복을 주고 있다. 이에 그를 만나 성악가가 된 계기와 앞으로의 목표 등을 들어봤다.

 대학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나요?

 학과에서 주최하는 음악회를 기획하는 등 학과 생활에만 전념했어요. 학과 내에서 하는 활동이 없으면 계속 성악 연습만 하는 학생이었어요. 당시에는 스스로 성악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악착같이 연습하려 했죠.

 대학 시절 인상 깊었던 추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학과 동기들과 함께 교외로 나가 음악 공연을 하러 다녔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당시 근처 고등학교에 찾아가 공연 허가를 구하는 등 사람들에게 성악을 선보이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팔았어요. 공연 예산이 없어 대구 시내의 백화점에 협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요. 학교의 지원 없이 학생들끼리 공연을 구성 및 진행했기에 어려움이 많았어요.  

 성악가의 꿈을 꾼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는 지휘자가 꿈이었어요. 어릴 적 다니던 교회의 성가대에서 지휘하는 사람을 보고 무척 설렜죠. 하지만 지휘자를 하려면 지휘뿐만 아니라 작곡이나 악기 연주를 할 수 있어야 했어요. 전 악기를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기에 지휘자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이에 지휘자로서는 아니지만 좋아했던 노래를 불러 음악 공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후 자연스럽게 성악가를 꿈꾸게 됐어요.

 바리톤 성악가로 데뷔했습니다. 첫 데뷔 무대는 어떤 순간이었나요?

 2003년 세종문화회관의 오페라단에 입단한 후,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로 데뷔했어요. 성악을 전공하기 위한 경제적인 여유나 능력이 부족했지만, 노력만 하면 성악가로서 데뷔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데뷔 무대는 제 노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기에 정말 행복하고 뜻깊었죠.

 오페라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오페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성악가에게 있어 오페라는, 노래와 연기를 모두 완벽하게 해내야 해 부담스러운 장르일 수 있어요. 하지만 노래와 연기로 하나의 캐릭터를 조화롭게 표현한다면, 그만큼 관객들을 흥분하게 만들 수 있기에 보람이 큰 장르예요.   

 오페라의 경우, 노래와 연기를 병행해야 합니다. 오페라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이러한 점이 힘들진 않았나요?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었기에 초반에는 연기하는 제 모습이 어색했어요. 노래와 연기를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야 하는 점도 부담스러웠고요. 하지만 노래와 마찬가지로 연기 또한 꾸준히 연습하니 실력이 늘었어요. 또한 무대에 서는 경험을 많이 가지면서 노래와 연기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어요.

 2006년부터 클래식 음악 공연단체인 ‘인씨엠예술단’을 창단했습니다. 창단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세종문화회관에서 활동할 당시 많은 예산과 노력을 기울여 클래식 공연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표의 구매량은 적었어요. 그만큼 클래식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기에 씁쓸한 마음이 컸죠. 동시에 클래식을 좀 더 대중적인 음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에 대중들이 가격에 대한 부담 없이 익숙한 장소에서 클래식을 들을 수 있도록 무료 거리 공연을 열기로 했죠.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씨엠예술단을 설립했어요.  

 인씨엠예술단은 산하에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오페라단, 소년소녀합창단 등 7개의 전문 공연단체를 두고 있습니다. 단장으로서 많은 공연단체를 총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수익을 목적으로 공연을 하는 단체가 아니기에 예술단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이에 많은 공연을 선보이고 싶어도 공연에 투입할 예산이 부족해, 주최하는 공연의 수를 점점 줄이고 있는 실정이에요. 하지만 우리 예술단에 관심을 두고 후원해 주는 분들이 있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어요.

 무료 거리 공연 외에 인씨엠예술단에서 하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해마다 봄에 신촌에서 왈츠 축제를 개최해요. 왈츠 축제에서는 전문 왈츠 선수가 아닌, 일반 사람들도 함께 왈츠를 출 수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행사에서 오케스트라 및 오페라 공연이 열리기도 해요. 축제를 통해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죠.

 현재는 바리톤과 테너를 모두 소화하는 성악가입니다. 테너 쪽으로 폭을 넓힌 이유는 무엇인가요?

 매년 많은 사람에게 수많은 거리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선 다양한 곡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바리톤 영역의 곡만 부를 경우, 선보일 수 있는 곡에 한계가 있었죠. 이에 꾸준한 연습을 바탕으로 테너 영역의 곡도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양한 콘서트 및 오페라 공연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공연 제작에도 관심을 가진 배경은 무엇인가요?

 세종문화회관에서 상임단원으로 있을 때 공연을 기획하는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 공연 예산을 정하고 무대에 설 단원을 직접 섭외하는 등의 경험을 습득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연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공연을 펼치는 것과 달리 공연을 제작하는 과정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공연에서 노래할 때는 오로지 저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돼요. 그렇기에 개인적인 성취감이 크죠. 하지만 공연 제작의 경우, 공연을 총괄하는 역할이기에 모든 단원이 화합해 하나의 무대를 완성할 때 느껴지는 희열감이 매력이에요.

 성악가로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서울 영등포역에서 거리 공연을 할 때였어요. 당시 한 노숙자 한 분께서 무려 4시간이나 이어졌던 제 노래를 끝까지 들어주셨어요. 공연이 끝난 후 2,000원을 주시며 좋은 노래를 들려줘서 행복했다는 말도 남기셨죠. 행복하다는 말을 들은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뿐만 아니라 서울 신촌에서 공연할 때 제 노래를 듣고 우울증을 치유했다는 관객도 있었어요. 이처럼 많은 사람이 제 노래에 의해 마음을 치유 받았다고 말할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노래로 치유했습니다. 스스로 치유가 됐던 노래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들었을 때 행복하다고 말하는 노래가 제겐 치유되는 노래예요. 제가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노래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함이니까요.

 성악가로 활동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그런 순간은 없었어요.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나 거리 공연을 할 때 경제적으로 어렵긴 했지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늘 간절한 마음으로 성악가가 되는 것을 꿈꿔왔기에 쉽게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진 않아요.

 성악가로서 삼고 있는 롤모델이 있나요?

 롤모델이 없어요. 누군가를 닮고 싶은 것은 참 소중한 마음인데, 전 아직 닮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클래식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려고 노력하는 성악가를 만난다면, 롤모델로 삼을 것 같아요.

 성악가가 갖춰야 할 자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쉬지 않고 노래를 연습할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해요. 성악가를 꿈꾸는 학생 중 일부는 성대를 다치는 것이 두려워 연습에 힘을 들이지 않아요. 다치는 것이 두렵다고 연습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노래 실력이 늘 수 없어요. 성악에 소질이 있는 친구라도 연습을 소홀히 하면 소질이 없어질 거예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현재는 거리 공연 횟수를 총 1,000회까지 채우는 것이 꿈이에요. 또한 현재는 대부분 거리 공연을 저 혼자만 채우고 있어요. 나중에는 오케스트라를 꾸려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거리 공연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교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꿈이란 계속해서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가장 처음에 세웠던 목표는 성악가가 되는 것이었죠. 성악가의 꿈을 이룬 후에는 거리 공연을 하는 것이 꿈이 됐고, 그 꿈을 이뤘어요. 거리공연을 1,000회째 하고 나면, 또 새로운 꿈을 꾸게 되겠죠? 한 가지 꿈만을 좇기 보다는 저처럼 다양한 꿈을 찾아다니길 바라요.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의 이야기

 이태원에 도착하자 노희섭 동문은 거리에 주차된 차에서 나와 우리를 반겼다. 그는 우리를 바로 앞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인터뷰는 사무실 혹은 카페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음식점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낯설었고, 음식을 시키지 않고 약 1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해도 음식점 측에서 눈치를 주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노희섭 동문은 우리에게 당일 이태원 거리에서 거리 공연을 펼칠 계획이라서 사무실이 아닌 이태원을 약속 장소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성악가가 버스킹을 한다는 것이 낯설었다. 왜냐하면 성악과 오페라는 크고 웅장한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클래식, 오페라는 왜 대중가요가 될 수 없는가?”란 질문을 던지며 필자가 편견에 갇혀있음을 깨닫게 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노희섭 동문은 이태원 거리로 나가 마이크와 스피커만 두고 공연을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오페라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듯 당당하고 멋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이따금 멈춰 서 노래를 감상하고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노래를 듣는 사람이 없어도 그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필자는 이번 영대신문 1648호를 마지막으로 학생기자 활동을 끝맺는다. 마지막 인터뷰로 노희섭 동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필자에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말했듯이 ‘없는 줄 알았지만 있는’ 나의 재능을 찾고 개발하기 위해 앞으로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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