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작품 뒤집어보기]책과 영화로 보기
[유쾌한 작품 뒤집어보기]책과 영화로 보기
  • 편집국
  • 승인 2007.06.0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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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 영화로 만들어져 나왔다면, 책을 읽고서 영화를 보게 되는 경우는 시시하다고 하고 또 영화를 먼저 본 다음 책을 읽게 되면 영화의 영상이 머리 속을 점거하고 있어 재미가 시들해 진다고도 한다. 하지만‘거미여인의 키스’라는 작품은 영화와 책 두 가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우선 내게는 책이 먼저 다가왔다.
책에서 그, 그녀라는 인칭대명사는 거의 무시하고 주인공의 어조가 여성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여성이라고 추측했으며 사건의 무대는 조용한 방이라고 마음대로 상상해버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럴 듯하게 잘 맞아들어 가던 흐름은 어느덧 미끄러져 가는 부분이 있었으니 자의적인 눈을 거두고 다시 읽어 보아야 했다. 이렇듯 자신이 상상하고 싶은 대로 바라는 대로 밑그림은 그려지고 해를 두 개를 그리기도 또 그것을 파랗게 색칠하기도 하는 것이 활자로 쓰여 진 책이라는 장르였다.
영화는 책에서 오로지 상상에 모든 것을 의지했던 것과는 달리 이미지로 배경, 인물의 행동으로 성격까지도 보여주어 현실감을 주며 대리만족을 백배로 증가시켜 매력이 있다. 책을 읽은 이후에 영화를 볼 때는 알차던 석류 알을 다 빼 먹어 버린 후의 껍데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것은 책을 읽는 장점인 상상의 영역을 침범 당하기 때문 일 것이다. 이렇듯 둘은 다르지만 각각의 특징이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전해 주는 의미는 일맥상통(一脈相通) 할 것이다.
「발렌틴-“너 같이 사회에 무관심하면 이 세상은 발전이 없을 거야. 벗어나서 생각해봐. 네 속에 갇혀 있지 말란 말이야. 난 혁명을 위해 살거야”
몰리나-“난 멋진 남자를 찾기 위해 살아. 그는 잘 생겨야하고 다정해야 하고 나를 사랑해 주어야 해”」
부분적인 그들의 대화에서 한 명은 낭만적인 동성애자이고, 또 한명은 정열적이고 혁명주의자이며 이성애자로 상반적인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감옥이란 폐쇄적인 공간에서 영화 이야기, 혁명 이야기, 자신들의 과거 이야기를 서로에게 털어놓는다. 둘은 발렌틴이 병이 나면서 몰리나의 지극한 간호로 가까워지고, 결국 그들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한 몸이 된다. 여기서 둘의 합치점이 되는 행위의 상징은 키스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꺼릴 것 없고, 서로에게 자신의 일부를 떼어 나누게 되는데 감성적이고, 행복한 로맨스를 꿈꾸는 몰리나에게는 쾌락적인 자신의 삶의 우물을 벗어나 혁명의 길을 택하게 했고, 혁명만이 자신에게 있어서 쾌락이라고 생각했던 발렌틴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에게로 달려 나가게 만든다.
그들의 사귐을 누군가는‘금기’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난‘신성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그들의 성향이 아닌 진정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느 누군가 그들처럼 다른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또한 일부로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조금만 자신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등을 돌려버리는 우리는 발렌틴과 몰리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이유로 비판하고 화내고 있기도 하다. 등을 돌려 자신만이 옳고 다른 이는 수용할 줄 모르는 편협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되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굳어 있는 내 입을 내밀어 교감의 키스를 해야 할 때이다.
임해숙(철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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