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인이 만드는 세상]불운한 걸작, 영화 '武士'를 옹호하며...
[천마인이 만드는 세상]불운한 걸작, 영화 '武士'를 옹호하며...
  • 편집국
  • 승인 2007.05.1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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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소위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것들이 존재한다. 한국영화계에서 그러한 작품을 하나 들어 보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무사’를 떠올릴 것이다.
‘무사’는 외적으로 화제가 많이 되었던 작품이다. 그 당시 유례가 없던 70억원의 제작비에 중국 올로케이션, 막강한 스타 캐스팅에 대규모 전투씬등 종래의 한국영화에 대한 규모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기에 영화계 안팎에선 그 흥행여부를 놓고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극장에 걸리자 발생한 9.11 테러에 평론가들의 독설이 가세하면서 ‘무사’는 상당한 광고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를 누리지 못한 채 롱런에 실패했다. 나는 이러한 일이 생긴 배경에는 작품의 외적인 규모만을 보고 재미난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관객들이 이 영화가 내심 말하는 무거운 주제와 비장한 분위기에 적응치 못한데서 온 까닭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무사’에서 보여지는 굵직한 여러 액션씬들(사풍전투, 숲 속에서의 암살, 토성진격...)은 여타 블록버스터의 전투씬들과는 달리 카타르시스가 없다. 무협영화로서의 과장된 무술연기가 아니라 마치 고야의 그림들에서 뛰쳐나온 듯한 야만적이고 격렬한 전장의 모습은 아군과 적군이 뒤섞여 싸우는 혼전속에서 어디를 향해 활을 쏠지 몰라 당황하는 진립의 모습처럼 전장의 무자비성, 폭력의 허망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상대의 사지를 자르고 확인 사살까지 가해야하는 전투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서 폭력은 미화될 수 없는 개념임을 분명히 하고있는 것이다. 또한 ‘무사’는 드라마전개에 있어서도 여태껏 다루어진 작품들과는 다른 노선을 취하는데, 우선 이 영화에선 주인공이 없다는 게 뜻밖이다. 대신 주요인물로서 10명 가량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이들의 캐릭터는 주인공을 위해서 주변으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한 공간에서 어우러진 모습을 보인다는데 그 시사점이 있다. 여타의 작품들이 개인의(주인공의) 삶을 다루는데 초점을 맞추는데 반해 이 영화는 그 시대배경인 고려와 원말명초(元末明初) 때의 서민의 모습이라든지 혼란한 정치관계, 향반들의 의식, 노예들의 자유의지, 유불(儒彿)논쟁 같은 그 시대 생활상의 생생한 현장들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계에서도 여태껏 시도되지 않은 중요한 실험이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관객들이 특히 의아해한 마지막 토성전투에서의 죽음들이 가지는 의미는, 아마도 이런 뜻이 아닐까한다. 오직 공주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자신을 희생한 노예 여솔, 사신행렬의 수많은 좌절 속에서 어느새 훌쩍 커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장군 최정,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 아내를 떠올리며 한족을 지키는 고려무사들. 이들은 모두다 자기가 믿고 지향하는 단 하나의 소중한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 앞에서 기꺼이 명예를 찾았던 진정한 ‘武士’였던 것이다.
이처럼 영화 안에는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간과해버릴 참신한 가치와 감독의 숨은 뜻이 있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어느 영화를 진정 좋아한다면 그 감정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은 그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이라고…” 한 영화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 뒤에 비로서 나오는 것임을 잊지 말자. 이즈음까지 잊혀진 추억을 곱씹는 한 남자의 부족한 주절거림을 참아주셔서 감사 드린다.
류석현(동양어문학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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