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의 오지체험]무심코 버리는 음식물... 중미에선 생존의 수단
[박수정의 오지체험]무심코 버리는 음식물... 중미에선 생존의 수단
  • 편집국
  • 승인 2007.05.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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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중미편
박수정 동문(생물자원학과 97졸)
중미의 사람들은 매우 가난하다. 중미 국가들이 다 살림이 어렵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니카라과의 사람들이 제일 못 산다. 빈익빈 부익부, 빈부의 차이도 많이 나고 인구의 절반 이상인 대부분의 국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여러 차례의 지진과 화산 폭발같은 천재로 인하여 대다수의 주민들은 더욱더 가난해졌다.
니카라과는 국민의 60% 정도가 하루에 1달러로 생활하며, 설령 직업이 있다 하더라도 고작 한달에 백달러가 안되는 월급을 받고 일하고 있다. 나라가 가난하니 범죄도 많이 생기게 되고 여행자들에게는 치안도 좋지 않다. 버스 매표소, 슈퍼, 식당, 호스텔 등 거의 모든 건물에 철창이 쳐 있었고 창살 밖에서 주문을 하면 돈을 받고 물건을 내어주는 식이다. 이곳의 식당에서는 손님이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신원을 확인한 후 그제야 창살문을 열어준다. 백화점 바깥에는 총을 든 경비원이 지키고 서있고 외국인들이 묵는 호텔도 예외는 아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창살로 빙 둘러싸여진 식당은 얼핏 보면 동물원의 우리와 다를바가 없는데, 이 우리안에서 밥먹는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로 빙 둘러싸여져 구걸하는 손들 속에서 식사를 마쳐야 했다.
그날도 니카라과의 수도인 마나구아(Managua)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창살로 둘러진 식당 바깥쪽에서 계속 쳐다보면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난 그동안 계속 돈을 달라는 줄 알고 모른 척 있었는데 이 아저씨가 자꾸 불쌍한 표정으로 손을 입에 가져다 대는 시늉을 했다. 돈이 아니라 내가 먹다 남긴 바나나 구이를 달라는 것이었다.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젊은 사람이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외국인한테 구걸하는가 싶었는데 정말 돈이 없어 며칠째 굶었던 것이다. 식당을 다니면서 음식 남은 찌꺼기를 얻어먹고 생명을 유지해 가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냅킨에 싸서 창살 너머로 아저씨에게 바나나를 넘겨주니 연거푸 고개만 끄덕이며 사라졌다.
파나마에 있을 때도 식당에서 치킨을 시켜서 먹고 있는데 깨끗하게 생긴 아이들이 식탁 옆 테이블에 앉아서 계속 우리를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라 보는가 싶었는데 식사를 다 하고 나가려고 하니 우리가 먹은 뼈다귀에 다들 달라붙었다. 우리가 남긴 살점들을 먹으려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순간 아찔했다. 내가 너무 너무 큰 실수를 했구나. 옷도 잘 차려 입어서 설마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했는데···
중미의 사람들은 거지 차림을 한 거지는 없다. 말쑥한 차림새인데 돈은 한 푼도 없고 다 거지다. 국민들 모두가 가난에 허덕이는 1달러 생활자 미만의 거지 아닌 거지였다.
아무 생각없이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는 우리들. 무심코 흘려버리는 수도물.
소중함을 몰랐던 모든 원초적인 것들이여기 중미에서는 생존의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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