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수업과 우리나라 교육의 정체성
영어수업과 우리나라 교육의 정체성
  • 남경순 기자
  • 승인 2007.05.17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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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수업과 영어 강의로 이어지는 영어 중심교육

원서수업과 영어 강의로 이어지는 영어 중심교육

 

 

 

98년부터 밀어닥친 신자유주의 정책의 파고가 교육시장에도 밀려들고 있다. 이미 정부는 지난달 31일 교육분야 개방요구안(양허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할 서비스협상 1차 양허안에 포함키로 함에 따라 교육개방을 위한 준비를 이미 마무리 지었다.
양허안대로 개방이 결정되면 국내 대학의 등록금 상승과 교육의 공공성 붕괴, 교육의 불평등 및 학문의 종속화 심화 등 여러 문제점이 예상된다. 이 중 가장 우려할만한 점으로 대두되는 것은 우리나라 교육의 정체성 문제다. 외국 대학이 국내로 유입될 경우, 외국 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게 되고 교육은 자연히 영어중심, 서구 중심의 교과목으로 흘러가 우리나라 학문과 연구의 정체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교육, 우리대학만의 교육을 유지·개발하지 않는다면 한국 교육의 미래는 자유경쟁의 논리 속에 암담하기만 할 뿐이다. 얼마 전 학교 교무회의에서 이상천 총장은 교수들이 영어로 강의할 경우 한 학기 70만원 정도의 강사료를 더 지급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세계화와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국제언어인 영어를 배워 사회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함이다. 취업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하지만 한 차례의 공문발송에 이어 참여율이 저조하자 또 다시 공문을 보낸 것은 영어강의에 대한 대학본부의 정책이 얼마나 적극적인가를 보여준다.
이에 한 교수는 “우리나라 땅에서 영어로 교육을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며 “학생들의 필요요구 이전에 본부 자체에서 영어 강의를 권장하는 것은 대학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이번 학기 교내에서 영어로 하는 강의 강좌는 영어의사소통기술, 영어듣기 및 발음지도 등 영어회화에 관련된 과목을 제외하고도 무려 27여개 강좌에 달한다. 학교측에 보고하지 않고 진행된 경우를 고려한다면 실제 강좌수는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분리분석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박정한 교수(자연과학부)는 “국제화를 겨냥해 처음 영어강의를 시작했으나 학생들이 많이 어려워한다”며 “교재나 강의노트, 시험을 영어로 치기는 하나 한국말도 섞어 할 수 밖에 없다”고 한계점을 밝혔다.
영어로 하는 강의를 듣는 조정진 군(기계3)은 “많은 학생들이 영어강의를 듣는 이유는 전공과목이면서 평가기준이 균형평가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며 “실질적으로 수업을 듣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해 본부가 얘기하는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제기됐다.
또한 공대의 경우 많은 과목이 번역서가 있음에도 원서로 수업을 진행해 학생들의 이해를 떨어뜨리고 있다. 얼마 전 졸업한 한 공대 학생은 “원서로 수업할 경우,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번역서를 이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원서로 수업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밝혀 교수의 교육의도와는 달리 학생들의 이해도와 학습효과는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교육의 흐름은 교육개방이 됐을 경우 우리나라 교육의 정체성 위기뿐만 아니라 우리 대학 교육 자체가 위기를 맞게 된다. 현재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는 성공회대의 경우 그들만의 독특한 교육인 인권과 평화, 군대와 사회 등의 과목을 개설함으로써 색깔있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 대학은 학교에서 내세우는 교육이념에 맞춰 개설된 위의 과목들을 일정 학점 필수로 이수케해 성공회대만의 독자적인 교육풍토를 만들고 있다.
반면 우리대학은 우리나라 교육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문학 분야에 대한 투자조차 영어 등 기타교육의 투자에 비해 빈약한 편이다. 이상천 총장은 취임전 매년 5억을 인문학 육성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이 투자금은 은행에 기금형식으로 적립돼 거기에 따른 이자로 인문학분야에 지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 불황으로 불안정한 금리 등을 고려한다면 영어교육에 비해 국사, 국문학 등 인문학 지원이 얼마나 미비한지 알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1980년대부터 이미 교육개방이 시작돼 미국의 40여개의 대학이 설립됐다.
그러나 현재 10여개의 대학만이 겨우 존재할 뿐이다. 이는 일본내로 진입한 외국 대학 프로그램 자체의 부실함도 있지만 외국대학이 일본 대학만이 지니고 있는 전통과 교육체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육개방은 자유경쟁이라는 사실을 바탕에 두고 있지만, 속으로는 교육을 사고 팔겠다는 것이다. 우리들만의 독자적인 교육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우리대학 교육은 벼랑 끝에 서게 된다. 이제 우리대학도 우리나라만의, 우리 대학만의 독자적인 교육을 개발해 교육개방의 위기를 막고 또 이겨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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