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회 천마문화상-가작(소설)] 某神의 생
[53회 천마문화상-가작(소설)] 某神의 생
  • 이여진(충남대 일어일문학과)
  • 승인 2022.12.0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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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나만이 섬길 수 있는 신이 있다. 신도가 될 수 있는 권한이 내게만 특별히 주어졌기 때문이다.

세 달 전의 일이다. 이모가 죽은 것도, 이모가 나의 신으로 자리하게 된 것도.

나는 신을 위한 공간에 공물을 바치고 얘기도 나눈다. 그곳은 이모의 방이며 내가 이런저런 공물을 놓아두는 데는 이모의 책장이다. 이모가 이 생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 갖고 가지 못한 걸 한으로 여길 정도로 아끼던 거다.

그렇다. 이 집은 이모와 함께 살던 장소다. 그러므로 우리 집이라 부르는 게 마땅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을 입에 올리지 못 하게 됐다. 차라리 우리 신전이라 부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원래 이모는 마흔세 살이 되던 해에 죽을 예정이었다. 그 해는 이모가 약을 끊은 지 십 년이 되는 해였다. 이모는 태어날 때부터 매일같이 어떠한 약을 복용해야 됐다. 그 약은 이모의 명이 이어지게끔 도와주었지만 숱한 부작용을 유발하였다. 그로 인해 이모는 가족 외 누구하고든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채 외로이 살아가야 했다.

내가 이모 앞에 나타나자 이모는 약을 끊었다. 그게 나를 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부작용이 바로 없어지는 건 아니어서 이모는 한 달 간 내게 부작용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게 됐단다. 이모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때 보통 사람이 평생 울어야 할 양을 모조리 쏟아 부은 탓에 내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나오지 않는 거라며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이모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게, 내겐 그 기억이 없다. 9살은 기억을 보존할 수 있는 나이긴 하나 그 후 이모와 지낸 시간들이 모조리 기억하고 싶을 정도라 쓸데없는 기억을 지워버린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슬픔을 저 멀리 둔 채 마냥 즐거웠던 터이다.

십 년 동안 이모가 살 수 있는 시간은 계속해서 단축되어갔다. 이모는 약을 끊고 나서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서른두 살을 보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했다. 이모는 죽음을 각오했으나 십 년 만에 약을 다시 복용하고야 말았다. 그 해에 내가 열아홉 살이 됐기 때문이었다. 수험생인 내게 충격을 줄 순 없다고 판단한 이모는 약을 찾았고 나는 대학에 합격하기까지 이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래서 약을 복용하면 이모가 어떠한 모습이 되는지는 영원한 미궁으로 남고 말았다. 이모는 이 점을 아주 좋아하였다.

하나 6개월이 지나고 돌아온 이모의 모습은 처참하였다. 저체중이 되어 볼은 움푹 파였고 한 번도 웃지 못한 사람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이 약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거 아니냐며 화를 내자 오랫동안 복용하지 않은 탓에 익숙해지지 못한 거라고 변명했다. 이모는 일주일 간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고 일주일이 지나자 내가 아는 이모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 순간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 때문에 이모는 그 농담을 더는 못 쓰게 되었다. 이모는 그 후로도 약을 몇 번 더 먹었고 그만큼 나와 떨어져 지냈다. 내가 서른세 살이 됐을 때 떠나고 싶다며 계획을 한참 뒤로 미뤄서였다. 그러니 내게는 이모의 죽음을 대비할 시간이 주어졌다. 다만 이모의 죽음을 막는 거까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을 이모는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달리 말해 대학 합격이 정해지고 나서야 털어놓았다. 아무런 예고 없이 떠나는 건 아닌 거 같다고, 네가 서른세 살이 될 때까지는 살 생각이니 그렇게 알아두라고 말하였다.

왜 하필 서른세 살이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3이거든.”

이모는 왜 3이 제일 좋은데?”

글쎄다. 내가 세 살 때 행복이가 왔지.”

행복이는 이모가 어릴 적 동고동락한 강아지이다. 물론 이모는 행복이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진 못했지만 자라면서 행복이와의 추억을 쌓아갔다.

그리고 내가 열세 살 때, 행복이가 떠났고 초등학교도 졸업했지. 처음으로 이별을 배우고 성취도 이룬 거야.”

.”

스물세 살 때는 처음으로 돈이란 걸 벌어봤지. 사회의 일원이 돼서 정말 기뻤어.”

서른세 살엔 너를 만나며 살고자 하는 이기심을 버리게 됐지. 내 목숨이 줄어들더라도 널 위해 약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했으니까.”

…….”

마흔네 살에는 실행에서 물러나는 법을 배웠지. 너의 탓을 하려는 게 아니야. 순전히 너를 두고 갈 수 없는 내 의지에서 그리 행동했던 거니까. 그러니 책임이란 것도 새삼 느꼈고.”

내가 서른세 살이 되면 이모는 쉰일곱이네. 쉰셋의 이모는 무엇을 배울까.”

쉰세 살의 이모는 사랑을 새로이 배웠다. 첫사랑과 재회하여 마지막 사랑을 이루게 됐다.

이모는 산책길에 그 사람을 만났다. 약 부작용으로 누구하고든 관계를 지속할 수 없었던 이모에게 연애는 더 머나먼 얘기였다. 스물다섯의 이모에게 반했던 상대는 부작용을 감내하겠다고,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이모의 행동들은 본심이 아님을 명심하겠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이모는 그 사람과 사귀기 시작했지만 세 번의 만남 끝에 도망치고 말았다. 그때까지 그 사람에게 부작용을 보이진 않았지만 이모의 사랑이 커져서, 사랑하는 상대에게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은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다시 만난 그는 이전의 이모도 좋지만 더 이상 부작용을 보이지 않는 지금 이모도 좋다며 다시금 고백해 왔다. 그 사람이 결혼하고도 남았을 거라 믿었던 이모는 그 고백에 스물다섯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단다. 이모는 그 사람과 하루 동안 데이트를 하였다. 이모의 죽음이 몇 년 남지 않은 까닭에 하루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단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설렘과 사랑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음에 이모는 기뻐하였다.

그 사람이 화를 내는 바람에 이모는 기뻐하면서도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모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모는 당최 알 수 없는 사람이란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본인의 죽음을 철저하게 계획하면서도 본인의 죽음으로 상처 받을 다른 이의 마음까지 헤아리다니. 이기적이면서도 마냥 이기적이기만 한 게 아니기에 이해는 못 해도 비난은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

 

한때 나의 소소한 취미는 블로그 관리였다. 이웃이 많진 않았지만 광고성 댓글은 꾸준히 달릴 만큼 무명도 아니었다. 이모는 내게 이모에 관한 이야기도 올려달라며 부탁하였다.

이모를 소개해 달라는 거야?”

소개라기보다는 그냥 써 달라는 거지. 나의 소소한 얘기들을.”

나와 이모 사이에 있었던 일들?”

그것도 좋고 나에 대해서도 좋고.”

그 부탁이 이모가 당신의 마음을 돌려 말한 거나 다름없다는 건 나중 돼서야 알게 됐다. 내게 당신의 생애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는 걸……. 이모의 삶에 대해서 드문드문 들은 적은 있었지만 전 생애에 대해선 알지 못했기에 그 제안은 내게도 구미가 당겼다.

이모도 막상 그 미래가 다가오니 씁쓸한 거지? 그러니 이모의 일생을 알리고 싶은 거 아니야?”

그럼, 당연하지. 내가 이 땅에 얼마나 살았는데 광대한 인터넷 세상에 나의 발자취 정도는 남겨야 되지 않겠니.”

그 말을 하는 이모의 표정은 행복하면서도 애처로워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블로그에 의 일생이라는 게시판을 추가하게 됐다. 이모의 가 아닌 지만 이모가 이모의 일생이란 게시판명은 원치 않아 했고 앞의 를 빼자니 모의謀議처럼 보여 부득이하게 다른 한자를 추가로 기재하게 됐다. 이모는 꽤나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블로그에서 나는 이모를 이모가 아닌 라고 마치 외자 이름을 가진 사람처럼 불렀다.

이모가 내게 부탁을 해온 건 죽기 3년 전의 겨울이었다. 이모가 우리의 신전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큰 창으로, 이모처럼 매우 마른 나무들에게 시선이 향하는 그런 나날이었다. 때때로 함박눈이 내려 커다란 창에 흰색이 흩날릴 때면 이모는 나를 앉히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라디오를 듣고 있다고 생각해. 너 라디오 듣는 거 좋아하잖아.”

이모는 서두에 이 말을 내뱉은 후 혼자 기나 긴 얘기를 시작하였다.

 

 

*

 

[의 일생열셋, 영원하지 않은 동반을 배우다

모가 세 살 때, 모의 집에 한 마리의 강아지가 당도하였다. 아기는 아니지만 노견도 아니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행복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모의 오빠는 강아지에게 해피란 이름을 붙여 주었고 부모님도 그렇게 불렀지만 모만이 자꾸만 행복이라고 불러댔다. 그러다 강아지가 해피가 아닌 행복이란 이름에 반응하는 바람에 결국 행복이로 굳혀지고 말았다. 모는 이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한참 후에 모가 이름의 비화에 대해 궁금해 하자 가족들이 알려준 거였다. 강아지도 분명 해피보다는 행복이가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이리라.

모는 가족들이 좋으면서도 미웠다. 어린 모를 긴 시간 홀로 집에 두는 바람에 모는 란 감정을 일찍이 터득할 수 있었다. 모는 학교 다니는 오빠가 하교할 때까지 집에 있어야 했다. 모의 화가 쌓이다 폭발하여 모가 행복이의 집에 틀어박히자 마당개 행복이가 집에서 생활하는 걸로 타협을 보게 됐다. 행복이로 인해 집은 더 이상 빈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모도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었다. 학교를 다니는 건 색다르면서도 서글픈 일이었다. 학교에 나가려니 몇 시간 동안 행복이와 떨어져 있어야 했다. 행복이는 모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지, 아니면 모가 덜 슬퍼할 수 있게 배려해 준 건지 모가 등교하는 시간에는 가만히 누워 잠만 자려고 했다. 나는 잠을 자면 되니 너는 내 생각 말고 학교에서 잘 놀다오라고. 마치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아 모는 마음이 더욱 울렁거렸다.

모는 학교의 친구들과 우정을 쌓는 대신 행복이와 놀기 위해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어차피 친구들은 모를 좋아하지 않아했다.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행복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간 적도 있었는데 행복이가 버거워하는 거 같았다. 동물과 교감하는 걸 몰랐던 아이들은 가뜩이나 크기가 큰 행복이를 무서워하거나 노골적으로 놀렸다. 행복이가 똥을 싸면 모까지 똥쟁이라고 불러댔다. 모는 친구들이 자길 좋아하지 않는 것엔 익숙했지만 행복이까지 수모를 겪어야 되는 건 속이 상해 더 이상 친구들과 말도 섞지 않게 됐다.

어차피 모의 첫 번째 친구는 행복이었으니까, 행복이에게만 잘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행복이는 모의 6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행복이의 윤기 나는 털은 점차 빛을 잃어갔고 배변 실수도 잦아졌으며 종일 잠만 자려고 했다. 가족들을 잘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모만은 알아봤기에, 모는 행복이가 떠나기까지 행복이와 모든 순간을 함께하려 했다. 학교가 끝나면 쉬지 않고 달려 20분이던 하굣길은 10분으로 줄어들었다. 등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는 얼른 방학이 시작되길, 그리하여 온종일 행복이와 붙어 있을 수 있길, 혹여나 행복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자기가 곧장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랐다.

행복이는 이런 모의 마음을 알아챘던 건지, 모와 함께 있을 때 생을 마감하였다. 그날 또한 집에는 모 말고 다른 이가 없었다. 행복이는 모와 오랫동안 눈을 마주하다가 감아버렸다. 모는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행복이의 옆에서 행복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고 행복이의 뱃살을 만졌다. 모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말라버린 행복이의 코에 물기가 돋아났다. 모는 행복이의 커다란 발바닥을 만졌고 귀, , 입 온갖 곳을 쓰다듬었다.

모는 행복이가 그저 지금처럼 이 공간에 그대로 누워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부모님은 행복이를 마당에 묻어야 된다고 했다. 모는 행복이가 차가운 땅속에 쓸쓸히 묻히는 게 싫었다.

행복이가 계속 여기 있으면 행복이에게서 냄새가 나기 시작할 거야. 벌레가 꼬일 수도 있어. 네가 학교에 있을 동안 그 벌레들은 점점 늘어날 거야. 너는 행복이의 냄새를 좋아했잖아. 행복이의 냄새가 없어지기 전에 묻어주자. 그냥 묻지 않을게. 행복이가 좋아했던 담요 두 장으로 포근하게 감싸주자. 그럼 행복이도 춥지 않을 거야.”

모는 오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이 마당의 땅을 파고 행복이를 묻을 동안 모는 오빠를 꼭 껴안고 있었다. 모는 오빠의 품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부모님의 부름에 오빠가 잠깐 마당으로 나갔을 때도 모는 눈을 꽉 감고 있었다. 그러다 머리에 손을 올리니 축축함이 느껴졌다. 다름 아닌 오빠의 눈물이었다.

행복이와의 이별, 그건 모가 처음으로 배운 이별이었다. 모는 한동안 웃을 수 없었고 맛을 느낄 수도 없었다. 학교에서 집까지의 길이 무서워졌다. 모는 오빠의 등교 시간에 맞춰 일찍 등교하게 됐고 오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기다려야 했다. 모는 운동장 모래에 행복이의 얼굴을 그리며 눈물을 닦아냈다.

행복이는 한 사람이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행복을 모에게 선물해 주었다.

 

이모의 약 부작용은 행복이에게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거다. 이모는 부작용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질 못하는데 모든 이들이 이모를 기피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행복이에게 예외로 작용했을 리는 만무하였다. 하나 행복이는 갈수록 이모를 사랑하면 사랑했지, 한 번도 피하려 들지 않았단다. 부작용으로 인한 이모의 모습 말고, 진실된 이모의 모습을 알아차려줬기에 행복이는 이모의 첫 번째 친구이자 가장 오래 사귄 친구로 자리할 수 있었다.

 

 

*

 

[의 일생] 스물셋, 사회에 일원이 되다

모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진학은 했으나 관둬야 했다. , , 고등학교는 며칠씩 학교를 빠질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난리가 벌어지면 선생님들은 모를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수업을 빠질 수도, 수업 도중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일이라도 배우려고 했지만 가족들은 모가 집에만 있기를 바랐다. 모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모는 방에 틀어박혀 생각만 하였다. 그 순간, 모가 가장 갈망한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죽음이었다.

모는 더 이상 외부 세상에 속하고 싶지 않아졌다. 모가 그동안 일구어낸 자기만의 세상, 모의 방 한 칸만으로도 모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가 최소한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거실에 있는 화장실과 주방이 있어야 됐다. 모는 처음으로 자취란 걸 하게 되었다.

약속했던 것과 달리 모는 가족들의 방문을 일체 차단하였다. 가족들에게 준 여분 키가 쓸모없어지게끔 문의 개폐기를 새로 달았다. 가족들이 문을 계속 두드려 이웃들이 욕을 해대도 절대 열어주질 않았다. 가족들은 결국 모의 집 문을 강제로 따야 했다.

건강했어. 건강해 보였어. 건강한데 무언가를 잃은 사람의 얼굴이었어.”

한참 후에 모가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자 오빠가 한 말이었다. 오빠는 모가 입을 열 때까지 집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는 건강했다. 제시간에 밥과 약을 먹고 제시간에 잠을 자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외의 시간 동안 모는 창밖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책에도 손을 대지 않았고 바닥에는 뭐라 빼곡하게 쓰인 종이들이 뒹굴고 다녔다. 해가 지면 모는 방의 불을 켰다. 그리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거야.

창문을 열고 싶어지는 순간을 기다리는 거야. 내 눈에 들어오는 저 땅을 밟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을. 그건 필시 살고 싶어 하는 자의 마음이겠지.”

오빠는 모를 당장 집으로 끌고 오고 싶었지만 그게 옳은 해결책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결국 한동안 출퇴근을 모의 집에서 해결하게 됐다. 오빠는 모가 창밖이라도 바라보길 원했다. 창밖에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 찾아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모의 옆에 있어야 했다.

오빠, 나는 뭐야? 나는 이 세상에 내밀 수 있는 신분이랄 게 없어.”

무직도 하나의 신분이야.”

신분이란 건 무언가를 해서 얻게 되는 거 아니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신분이 없는 상태인 거지. 신분이 없는 상태로 계속 살아가봤자 뭐해.”

모야. 네가 저 땅에 다시 서고 싶은 날이 오면 말해. 오빠가 일을 찾아다 줄게. 대신 부모님한테는 비밀이야.”

모의 오빠는 모에게 김밥 마는 신분을 가져다주었다. 집에서 할 수 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끼칠 일이 없는 일이었다. 새벽부터 김밥 재료를 손질해 두고 아침이 되기 전에 김밥을 말면 됐다. 그 온전한 시간을 위해 저녁에는 약을 복용하지 않게 됐지만 모는 상관없었다. 모의 김밥은 납품처로, 이어 길에서 포장 김밥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로 전해지는 구조라고 오빠는 말해주었다. 모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만든 김밥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침밥이 된다는 게 신기했다. 이렇게 세상은 돌아가는구나. 모는 일순 깨달음을 얻었다.

 

이모는 약을 끊으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 말고 정해진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런 이모가 마지막까지 일한 곳은 삼각 김밥 공장이었다. 이모는 그전에 과자 공장을 다녔고 그전에는 분식집에서 김밥 마는 일을 맡았다.

먹는 건 필수적인 일이잖아. 그게 날 기쁘게 만들더라.”

그런데 삼각 김밥 공장이 가장 편해서 오래 다닌 거야?”

공장에서 나오는 음식들 중에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게 삼각 김밥이잖아.”

그 말은 한동안 내 귓가에 맴돌아 떠날 생각을 하질 않았다.

 

 

*

 

[의 일생] 마흔셋, 죽음으로부터 유예 시간을 가지다

모에게는 조카가 있다.

조카가 아홉 살이 될 때까지 모는 조카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모와 조카는 그리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다. 모의 어머니의 언니인 모의 이모, 그 이모 아들의 아이였던 거다. 모는 자신과 조카가 이모-조카가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잘 모르겠어서 이모라 부르게 하였다. 조카의 아빠인 사촌 오빠와는 어렸을 적 본 게 전부였고 십 년이 훨씬 지나 결혼식에 참석한 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얼굴도 몰랐다.

아이는 사고로 부모님을 잃게 됐다. 그리고 아이를 돌볼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도 안 계신 상황이었다. 아이 부모의 형제들이 있었지만 살기가 팍팍한 형제들은 아직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맡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형제들은 아이가 고아원으로 가야 된다는 데 입을 모았지만 그보다 더 먼 친척인 모만은 반대했다. 장례식장에서 분개하는 모를 보며 가족들은 약 부작용 때문이라고 모를 끌고 갔지만 모가 그 순간을 기억하는 걸로 봐선 모의 진짜 감정이 맞았다. 모는 흥분을 진정시키고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 같은 미치광이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거 같아?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데다, 지가 한 짓을 기억도 못 할 텐데 가엾은 아이까지 미치광이로 만들려고 그래?”

한 친척의 말에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동의하였다. 모의 오빠마저 모의 편을 들어주지 못하였다.

약을 끊을게요. 약을 끊으면 되죠?”

모의 말에 정적이 흘렀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모를 정신 이상자로 대했지만 그 이유가 약 때문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약이 모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란 것도. 모의 말은 자신이 죽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 달 간의 논쟁 끝에 모가 승리하게 됐다. 아이를 잠깐 맡고 있는 친척이 아무나 아이를 데려가라고 부탁했는데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데려오고자 친척 집에 방문했을 때, 모는 아이와 눈을 마주하며 행복이란 말을 입에 올리게 됐다. 아이는 행복이처럼 뽀얗고 순둥해 보였다. 물론 아이가 행복이와 분위기가 닮지 않았더라도 아이를 맡았을 거라고 모는 확신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아홉 살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을 대강이라도 파악할 수 있는 나이이다. 아이는 모와 함께 모의 작은 자취방에 따라가긴 했지만 곧장 마음을 열지는 않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가 자신을 키우려 드는 걸 의심스럽게 여기는 눈치였다.

전에 살던 동네에 친구들이 있을 거 아니야. 계속 그 학교 다니고 싶으면 거기로 이사 가면 돼. 어떻게 하고 싶니?”

친구요?”

?”

저는 친구 없어요.”

모는 아이와 지금 사는 동네에 계속 머물기로 결정했다. 부작용이 완전히 가신 후, 모의 오빠는 모가 부업 대신 정기적인 월급이 주어지는 일을 구해도 되는 상태임에 동의하였다. 모의 동네에는 공장이 유독 많았기에 모는 공장에 지원을 하였다.

모와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자녀들 중 아이와 같은 나이인 애가 한 명 있었다. 모는 두 아이에게 공장으로 자기들을 데리러 오라는 임무를 내렸다. 매일 같은 길을 지나, 돌아올 때는 넷이서 도란도란 걸어왔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금방 가까워졌다.

모는 아이와 잘 살았다. 아이가 무슨 말을 들을지 몰라서 명절에도 집에 내려가지 않자 가족들이 올라왔다. 모가 옆에 있으니 뭔 말을 하지도 못했지만 가족들은 모와 아이가 꽤나 잘 지내는 걸 보면서 점차 아이에게도 마음을 풀게 됐다. 아이에게 새로운 가족들, 친구들이 더해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모에게도 인생 처음으로 다음을 기대할 수 있는 관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는 죽음을 예감하는 몇몇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남은 수명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나이는 약을 끊은 지 십 년이 되는 마흔세 살이었다. 모가 마흔셋이면 아이는 열아홉이었다. 모는 지금 죽을 수 없다며 다시 약을 복용했고 아이와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야 했다. 자신이 맡겠다고 데려왔으면서 성인이 되기도 전에 영원히 이별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모는 아이의 대학 합격이 정해지자 아이가 서른세 살이 되면 세상을 떠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어느덧 아이는 서른세 살을 앞두고 있다.

 

이모의 마지막 글을 올리며 나는 두 번째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모의 취직이 결정되고 나서 이모는 내게 집에 혼자 있을 시간이 긴데 괜찮으냐고 물었었다. 빠른 시일 내에 수입이 안정적이려면 긴 시간 일해야 됐기에 거의 집을 비워야 된다고 했다. “혼자 있는 게 더 좋아요. 이모 안심시키려고 그러는 거 아니고 진짜로요.” 나는 이렇게 말했단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더 마음에 들게 됐다고 나중 돼서야 이모가 내게 말을 해 주었다. 그때, 그 말을 하며 내가 이모를 처음 이모라 불렀기에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고.

 

 

*

 

이모는 나를 위해 블로그에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한 거였다. 당신의 흔적을 남기는 이유가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는 것보다도, 나를 위한 마음이 더 큰 비중임을 알게 됐다. 이모가 떠난 후, 내가 이모의 흔적을 보며 위안을 삼을 수 있게 제안한 거였다.

조금 있으면 해가 바뀌어 서른세 살이 되던 때, 나는 지독한 우울을 앓아야 했다.

이모. 이모가 죽고 나면 내가 이모의 마지막을 맡아야 되는 거지?”

.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부탁할게.”

미리 알려줬으니 고맙다고 해야 돼? 아니면 화를 내야 돼?”

왜 울고 그래.”

내가 흐느껴 울자 이모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이모도 울고 있길 바랐지만 이모는 울지 않았다. 그게 나를 더 슬프게 했다.

현비야. 이모는 무책임한 사람일까?”

나는 이모의 자식도 아니니까 이모가 나 때문에 더 살아야 할 이유는 없지. 이모가 나를 데려왔으니 이모가 보내고 싶을 때 보내도 되는 거야.”

이모는 나를 품에서 거칠게 떼어 놓았다. 이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렇잖아. 나를 위해 약을 끊었으면 나를 위해 약을 계속 먹을 수도 있는 거잖아. 잠깐만 떨어져 지내면 일 년 넘게 살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모의 얼굴을 보며 나 또한 눈물이 멎었다. 우리의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모. 하고 싶은 일들은 전부 다 이뤘어?”

이모가 공장을 관둔 다음 날, 저녁을 준비하다가 물어보게 됐다.

글쎄다. 딱히 이루고 싶었던 게 없는걸.”

이모의 말에 나는 괜스레 짜증이 났다.

이모와 남은 날을 온전히 보내기 위해 나도 회사를 쉬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모가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 이모는 아쉽지도 않아? 나와 보낸 시간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그런 걸 원했으면 부모님이랑 오빠에게도 말을 했겠지. 나 이제 죽을 테니까 그때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했을 거야.”

그럼 이모가 원하는 건 도대체 뭔데. 죽는 거 말고 다른 계획은 아무 것도 없어? 왜 나한테만 얘기하는 건데? 이모가 떠나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 전해야 되는데.”

…… 미안하다.”

이모는 점퍼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끓이다 만 부대찌개의 불을 완전히 꺼버리고 엎드려 울었다. 내리 울기만 했다. 이모를 힘들게 하는 내 자신도 미웠고 도저히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이모도 미웠다. 나 또한 원하는 일이라곤 없었다. 같이 살다보니 이모의 성향을 닮게 된 건지는 몰라도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무난한 회사에 들어가 무난하게 업무를 하며 평범한 나날을 보내는 것. 그거면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곁에 이모가 있어야 했다. 이모가 있기에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거였다.

내가 이모와 살게 되면서 이모의 일상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이모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부작용이 없어졌으니 이모에겐 더 좋은 일일 거라 생각했다. 내게 부작용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조금 더 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수십 번은 갈등했을 이모, 그러한 갈등이 이모가 있는 힘껏 살아왔다는 증좌임을 알지 못했다.

부은 눈으로 텔레비전을 보면서 멍 때리고 있을 때 이모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모의 손에는 솜사탕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신기하지. 이 야밤에 솜사탕을 파는 점포가 있다니.”

오늘 뭐 야간 축제라도 있나.”

이모가 내게 솜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너무 달아 한 입 먹으면 두 입은 못 먹을 그런 맛이었다.

단 것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솜사탕을 다 사왔어?”

여태껏 단 걸 안 좋아했으니 이제라도 먹어보게, 는 농담이고 예뻐 보여서 산 거야.”

이모도 한 입 베어 물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모는 내가 이모의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이모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모가 집으로 날 데려왔을 때, 내가 혼자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했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공장을 다니는 대신 너와 같이 붙어 있었겠지. 그러다 네가 날 지겨워할 때쯤이면 다시 일을 시작했을 테고.”

…….”

현비야. 우리 현비는 앞으로도 무교로 지내려나?”

?”

현비가 이모를 믿으면 좋겠어서. 이모가 언제고 널 지켜보고 있을게. 대답은 못하겠지만 언제고 너의 얘기도 들을게. 너에게 불행과 행복이 적절히 안치되어 네가 평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게. 이모를 이 생 말고 다른 곳에서 만나겠다는 일념 따위 없어도 돼. 내가 죽는 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테지만 이기적이게도 너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 내가 죽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걸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이모가 울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이모의 눈물을 보면서도, 이모의 진심을 들으면서도 나는 이모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기적이게도 이모가 계획을 접고 더 살길 바랐으니까. 하나 이모의 눈물은 어려움을 뛰어넘을 만큼 크게 다가왔다.

그럼 이모가 내 신인 거네.”

이모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피식 웃지도 않은 채 나의 두 손을 붙잡고 울기만 했다. 우리 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 솜사탕들이 녹지 않을 만큼 냉랭한 한밤이었지만 뜨거운 눈물이 솜사탕을 빠르게 녹여버렸다.

 

나는 이모에게 어떠한 제안을 하였다. 유튜브에서 고민할 새도, 이유를 말할 새도 없이 빨리 답을 하는 인터뷰 영상을 본 거였다.

이 사람들이 하는 건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네. 선택지가 없이 단답형이라면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되겠는데?”

이모의 말은 타당하였다. 어찌 됐든 이모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바로 바로 받아 적기에는 시간이 걸릴 터이니 영상으로 찍어두기로 했다. 이모는 방으로 들어가 이모가 좋아하는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래도 인터뷰니까, 나름 갖춰 입어야 되지 않겠어?”

머리도 안 감았으면서.”

이모는 다시 방으로 들어간 후 모자를 쓰고 나왔다.

당신의 이름과 이름이 지닌 뜻이 무엇인가요.”

첫 번째 이름은 영하. 오빠와 돌림자로 지은 거라 특별히 의미랄 건 없는 거 같네요. 두 번째 이름은 천영. 내 천에 길 영. 끝이 없이 연결되는 물줄기가 보기 좋아 이 이름을 삼게 됐습니다.”

이모는 스물세 살, 다시 땅을 밟고 나서 개명 신청을 하였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이군요. 어렸을 때부터 잘 먹었던 건 귤. 매년 겨울마다 일정량의 귤을 먹어야 했죠. 이후 신세계를 경험한 음식은 레몬 파운드케이크. 그걸 먹으면 입맛이 돕니다. 그리고 돈가스 덮밥. 우리 현비의 손맛을 따라올 가게가 없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었는데 세 개나 답하면 어떡합니까. 하나만 골라주세요.”

그럼 돈가스 덮밥으로 하죠.”

이모가 씨익 웃었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산다는 것이 지닌 의미는 무엇 같나요?”

축복이면서 형벌이 아닐까요. 감내하는 법을 배우는 게 생의 숙제이고요.”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요?”

마찬가지로 축복이면서 형벌이라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해 주세요.”

…….”

이모가 시선을 돌렸다. 잠시 생각이 필요해 보였다.

이요. 행복이라 말하고 싶지만 그것만큼의 불행도 함께했기에 행이라고만 표현하고 싶네요.”

 

 

*

 

해가 바뀌었지만 이모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모습으로 방 안에 누워만 있었다. 우리는 같이 새해를 맞이했지만 떡국까지 함께 먹지는 못했다.

우습게도 3은 이모의 운명이 맞는 건지, 이모는 해가 바뀐 지 삼일이 돼서야 숨을 거두었다.

이모의 장례식이 끝나고 유품을 정리하기 전에 한 봉투를 먼저 열어보았다. 이모가 솜사탕을 사온 날 입고 있던 점퍼 속에서 나온 봉투였다. 이모가 점차 기력을 잃어갈 때 발견했지만 봉투의 겉면에 모든 게 끝나면 보라고 적혀 있었기에 곧장 열어볼 수가 없었다. 그건 당연히 이모의 유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너를 만나고 나는 많은 행복을 경험했어.

네가 나에게 나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해 달라 했을 때 나는 행이라 말하였지만,

네가 나에게 너와의 관계에 대해 한 단어로 말해 달라 했으면,

나는 고민도 없이 행복이라 말했을 거야.

네가 나의 행복이었다는 것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랑했다. 앞으로도 내가 널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지 않을래.

그리고 언제고 네 옆에 있음을 믿어주지 않을래.

사랑한다, 현비야.

 

추신. 나의 사랑은 이곳에도 남겨두었다.

아이디. cheonyeong333

비밀번호. yeongha3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이모가 적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로그인을 했다. 처음에는 메일창으로 들어갔으나 내게 쓴 메일함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그 다음으로 블로그에 들어갔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이 쭉 펼쳐졌는데 글 자체는 모두 비공개로 설정되어 있었다.

이모는 부지런히 블로그에 글을 썼다. 이모가 내게 이모의 생애를 나이별로 써 달라 부탁했던 것처럼 이모 또한 나의 나이에 따라 글을 적었다.

아홉 살, 현비가 만남을 배웠길

열 살, 현비가 우정을 배웠길

열네 살, 현비가 사랑을 배웠길

열다섯 살, 현비가 알아감의 즐거움을 배웠길

열여덟 살, 현비가 미래의 무게에 대해 배웠길

열아홉 살, 현비가 완주 후의 감정을 배웠길

스무 살, 현비가 헤어짐의 의미에 대해 배웠길

이후의 글들은 우리의 일상적이던 면면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나이를 앞에 명시하긴 했지만 내가 무언가를 배웠길 바란다는 제목의 통일감에서 벗어났다. 먹고, 놀러가고, 같이 본 것들에 대한 기록이었으니 그건 내 이야기보다는 이모와 나, 우리의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부지런히도 썼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이모의 아이디는 이게 아니었다. 다른 아이디로 이십 년 넘게 꾸준히 로그인하며 글을 올리는 이모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모는 타자가 참 빠른 사람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연주에 집중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건 이모가 나를 위해 남겨준 앨범인 걸까.

반복 재생했다.

반복해서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서른세 살의 나는 이모를 배웠다. 나의 부모, 나의 친구, 나의 애인에서 나의 신이 되어버린 이모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나는 그 배움을 통해 이모의 하나뿐이자 영원한 신도가 되기로 마음먹게 됐다.

영원히 믿음을 줄 수 있는 한 사람, 그 사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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