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인문학] 동아시아의 미래, 생각에서 찾다
[융합인문학] 동아시아의 미래, 생각에서 찾다
  • 박승환 준기자
  • 승인 2016.11.2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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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상경관 208호에서 김석근 아산서원 부원장의 특강이 진행됐다. 사진 홍정환 준기자

 지난 15일 ‘융합인문학’ 수업에서 김석근 연사가 ‘동아시아의 미래를 읽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김석근 연사는 한국의 전통적인 서원교육과 현대적인 대학교육 시스템을 접목한 독창적인 교육기관인 아산서원에서 부원장과 교수부장을 맡고 있다. 전통과 세계를 아우르는 교육자인 그가 말하는 세계정치 속 동아시아의 정치적 현실을 들어보자.

동아시아의 미래, 생각에서 찾다

 문제의 출발점: 보편성과 특수성=‘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을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중세 혹은 종교 등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독립선언이기 때문이다. 과거 중세에는 주체가 신이었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말에서 주체는 ‘나’다. 이런 ‘개인의 자각’이 근대로의 출발이다.

 다음으로 말할 것은 조셉 니담(Joseph Needham)이라는 학자가 쓴 명저인『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에 대해 말하겠다. 이 책에서 조셉 니담(Joseph Needham)은 “헤겔(Hegel)이 쓴『역사철학』의 중국 장은 놀랍게도, 거의 전부라고해도 좋을 정도의 실수와 오해로 가득 차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한 이유는 그가 저 책을 집필할 당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동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사상이라고 말하는 유교, 불교, 도교에 굉장히 무지했기 때문이다. 학자로서 헤겔(Hegel)이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세계는 중국이라는 큰 대륙에 조선이 있고, 섬나라인 일본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도가 지리학적인 지식을 담고 있지만, 당시는 지도를 만드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세계지도가 다양한 모습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 우리가 아는 세계를 처음으로 ‘세계’라고 칭한 사람이 헤겔(Hegel)이다. 그는 세계를 규정했고, 그 역사를 담은 세계사를 처음 만들었다.
 
 다음으로 막스 베버(Max Weber)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가 쓴 책 중에 유명한『프로테스탄트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을 보면 “근대 서구 문명의 계승자 입장에서 세계사의 문제를 연구하려 할 때, 우리는 항상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왜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의의와 타당성이 내포된 발전방향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는 문화 현상이 유독 서구에서만 발생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다”라고 말한다. 이 문제의식에는 오만함이 있다. 세계적인 의의와 타당성이 내포된 발전방향이 오로지 서구에만 발생했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자신만만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만한 생각이다. 당시에는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막스 베버(Max Weber)라는 학자에 대해 조금 더 말하자면, 그가 쓴『유교와 도교』라는 책을 읽고, 인도에 대한 것을 읽어보면 그는 진정한 천재다. 그러나 그의 일관된 생각은 ‘왜 서구에만 자본주의가 성장할 수 있었을까?’, ‘왜 인도나 중국에서는 자본주의가 성장하지 못할까?’이다. 이런 생각이 문제이긴 하지만 ‘서구 중심주의에서 시작했다’라는 의의가 있다.

 다음은 이문열 작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황제를 위하여』라는 책에서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는 읽으면서 사서삼경은 낡았다고 읽지 않고, 보들레르에게는 감탄하면서 이하(李賀)를 아는 이는 드물다. 니체에게는 심취하면서 장자를 이해하려 들지는 않고, 로버트 오웬은 알아도 허자(許子)는 낯설어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세워야 할 문화의 유형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동양적인 것과 새롭고 활기찬 서구적인 것의 조화에 있지, 어느 한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이나 몰입에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동양(東洋)과 서양(西洋)=동양이 있고 서양이 있으니 남양과 북양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남양철학과 북양철학은 없을까? ‘오늘날 왜 동·서양만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흔히 동양은 기본적으로 서양의 반대라고 생각한다. 동양철학, 서양철학도 마찬가지다. 세계사를 말할 때도 서양사와 동양사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삼분법으로 한국사를 포함한다.

 지리적 범위로써 ‘동양’이라는 단어는 시대와 지리적 지식의 발달에 따라 변해왔다. 명나라 시대의 동양은 루손, 몰라카, 보르네오 등을 말했고, 서양으로는 안남, 타이, 자바, 수마트라, 말라카 등을 말했다. 그리고 대만을 소동양, 남인도를 소서양, 유럽을 대서양이라 불렀다. 청대에 들어오면서 동양과 서양을 합쳐 남양이라 불렀고, 오키나와와 대만을 합쳐 동양이라 칭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동·서양은 19세기 이후 동서양이 만나고 확립된 개념이다.

 동양이라고 하면 주로 한국, 중국, 일본을 떠올린다. 그래서 흔히 ‘동양3국’이라 말한다. 안중근의『동양평화론』을 봐도 동양은 동양3국을 칭한다. 그렇다면 동양3국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만든 나라는 어디일까? 중국은 스스로 동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중국의 ‘중화사상’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세계의 동쪽에 치우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최초로 이 표현을 사용한 곳은 일본이다. 서양에 맞서 한·중·일 3국이 동양의 평화를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며 나온 표현이다.

 앞서 말한 중국의 중화사상을 짚고 넘어가자. 중국은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서양과 동양이 있고, 남양과 북양이 있고,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는 다 야만적인 오랑캐라는 것이다.

 중화사상을 포함해 동아시아와 서양에서 스스로는 문명이고 주변은 야만이라는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논리가 힘을 만든 것이 아니라, 힘이 논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서구중심적인 문화가 정착하게 됐다.

 오리엔트(Orient), 오리엔탈(Oriental),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동양을 영어로 표현하면 흔히 ‘오리엔트’라고 생각한다. 본래 오리엔트는 라틴어로 ‘뜨는 해’를 뜻한다. ‘지는 해’를 뜻하는 옥시던트(Occident)와 짝을 이룬다. 천문학적 술어에서 시작한 단어다.

 사람들은 오리엔트가 뜻하는 곳을 중동이라 말한다. 문제는 ‘어디서 봤을 때 해가 뜨는 곳이 중동이고, 왜 중동이 오리엔트가 된 것일까?’이다. 바로 기독교 문화권이다. 기독교 문화권은 동·서양을 나누는 기준이다. 과거 로마제국을 크게 두 개로 나눠 오리엔트, 옥시던트라 불렀는데, 오리엔트라는 곳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으로 현재의 중동지역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리엔트를 생각하면 유교, 불교, 도교를 생각하지만 오히려 이슬람에 가까웠다. 19세기 문학작품『몬테 크리스토백작』을 읽으면 오리엔트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지만 이슬람 색채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다음으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오리엔탈리즘』을 이야기하겠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중에서 이슬람 배경을 띄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었지만, 그는 이슬람 배경을 가졌고, 미국의 외교정책에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오리엔탈리즘을 서양인의 경험 속에서 동양을 타지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산물로 규정했다. 이 책을 옮긴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옮긴이의 말에 “오리엔탈리즘이란 우리들의 세계와 다른 점이 일목요연한, 또는 우리들의 세계와 대체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배하고, 조종하고, 통합하고자 하는 일정한 의지나 목적의식을 표현하는 것이기 보다는 도리어 그 자체다”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우리는 우리의 기준을 잃어버리고 서양인이 날조한 동양사와 동양문화, 동양사상을 공급받는다. 그것이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이고, 오늘의 우리는 그 중독자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우리’라는 특수한 지식·지배계급에 한정되는 것이고, 우리의 민중 모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엉터리 제도교육을 통해 거의 모든 민중까지 그러한 오리엔탈리즘에 세뇌당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아시아(Asia): ‘아시안게임’과 ‘아시아적 가치’=아시아의 어원은 이란 고원을 뜻하는 고대 앗시리아어의 아스(Acu)에서 나왔다. 이와 함께 유럽의 어원인 에렙(Ereb), 에우로파(Europa)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그렇기에 아시아와 짝을 이루는 말은 유럽이다. 서구 근대에 특유한 가치적 입장은 특히 아시아라는 단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유럽과 아시아’라는 이분법은 ‘민주’의 그리스, ‘전제’의 페르시아라는 고전·고대적 관념과 관련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라는 대비적 사고가 정착되고 보편화된 것은 근대다. 근대의 형성과정에 있어서 유럽이 전 세계로 되었을 때 자신의 바깥에서 발견한 자신과 이질적인 사회를 모두 ‘아시아’라는 관념 속에 흘려보내고 ‘유럽’의 대극에 ‘아시아’라는 것을 설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실체로서의 유럽과 실체로서의 아시아가 존재하고, 그 양자가 서로 대극적인 역사적 개성을 갖고 있다는 식은 결코 아니었다. 이러한 이분법은 단순히 아시아를 유럽이라는 대극에 놓는 것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유럽의 대국이라는 위치에서 뒤틀어 유럽 역사발전의 원시 상태에 접속시킨다는 뒤틀린 이분법이다. 다시 말해서 유럽은 아시아를 보면서 자신의 유년기 시절을 보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또 다르게 보면 아시아가 발전하면 유럽처럼 될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 입각해 유럽은 자신과 맞지 않는 모든 것을 ‘아시아적’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아시안게임을 볼 때 아시아인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참가하는 것도 유럽이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아시아로 규정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래서 아시아적 전제국가, 아시아적 생산양식, 아시아적 공동체 등의 말에 아시아가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뉘앙스가 강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아시아적 가치논쟁은 아시아에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의미가 있다.

 한편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아시아라고 불렀기 때문에 아시아의 범위가 엄청 넓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북아시아 등 인도는 물론이고 중동, 이집트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동아시아 세계? 동아시아 문명?=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극동과 중동, 그리고 근동이 있다. 이 말에는 방향이 있고 거리가 있다. 이런 관점 자체가 서구중심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동아시아 세계’라고 했을 때 이들의 공통점은 유교와 한자의 사용이다. 학자들이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설명하려 했지만 순수경제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많은 학자들이 문화적 요소에 집중했다. 그중 하나가 유교다.

 그 다음에 학자들이 주목한 것이 한자다. 유럽지역에서 라틴어가 공통분모인 것처럼 한자가 동아시아의 공통분모라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는 히라가나, 가타카나가 있고 한국은 훈민정음이라는 고유한 표기 방식이 있었지만, 모두 한자와 관련해 만들어졌고 당시 국가의 지배층은 한자를 사용했다.

 안타깝게도 현재 유교와 한자가 쇠퇴하고 있다. 아산서원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천자문 시험이다. 한자가 동아시아 문명의 핵심적인 요소로 꼽히지만, 현재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우리 사회는 급속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이런 세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그리고 동아시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올해 초 동양과 서양은 누가 나눴는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흔히 동아시아가 유교, 불교, 도교, 한자 등으로 대표되는데, 그 안에 포함되는 56개의 소수민족이 다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 소수민족들은 어떻게 분류될 수 있는가?

 그 부분에 대해 학자 임마누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학자가 한국어판 서문을 쓰면서 ‘한국인만의 특수한 문화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국, 중국, 일본 학자들도 각자 나라의 가치를 알고 있지만, 가끔 지나치게 유럽중심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구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교육받고 훈련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지구적인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역사와 철학에 대한 이해가 우선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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