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주름
[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 주름
  • 김문주 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6.10.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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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웃었다

주름이 웃음을 끌고 간다
한 곳에서 여러 곳으로,
그가 쩍하고 금이 갔다

날카로운 눈꼬리부터 뺨을 지나
칼로 내려친 듯
그가 조각조각 나누어졌다
웃음이 그를 쿠키처럼 조각내버렸다

조각난 그의 몸에서
주름의 시작과 끝이 보였다
아코디언처럼 주름 속에 파묻혀버린다

주름의 처음과 끝까지
한눈에 다 읽힌다
당신이 잠들어 있는 새벽에도
쓸쓸한 주름은 뻗어나가고 있다
은밀하게 퍼져나간다

「주름」 전문 서안나

 단문으로 구성된 시는 상대의 주름진 얼굴에서 인간을 통과하는 시간, 그 시간의 풍경을 읽어내는 시적 주체의 시선을 담고 있다. 얼굴 속에 생명의 “처음과 끝”이 있다. “쩍하고 금이 가”면서 만들어지는 얼굴의 형상은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재삼 확인시켜 준다. “주름이 웃음을 끌고 간다”. 그 끝에서 인간은 “주름 속에 파묻혀버”릴 것이다. 얼굴에서 주름의 역사를, 웃음에서 끝을 보는 이 시의 언술은 담담하지만 그 시선 속에는 한없이 깊은 우수(憂愁)와 연민이 자리하고 있다. 시에는 “쿠키처럼 조각나”는 웃음의 형상에서 희락(喜樂)의 풍경과 종말을, “아코디언처럼” “파묻혀버리는” “주름 속에”서 삶에 동반된 비애를 보는 사유가 내장되어 있다.

 웃을 때, 그리고 울 때 주름은 깊어진다. 그것이 삶의 진실이다. 웃음 속에 시간의 풍경이, 주름 속에 희로애락의 이력(履歷)이 있다. 그래서 삶은 쓸쓸하고,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당신도, 그리고 나도 “쩍하고 금이 갈” 것이다. 타인의 얼굴에서 우리는 ‘나’의 얼굴을 본다. 주름이 끌고 가는 ‘내’ 生의 적나라한 이력, 그것이 너의 얼굴에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점점 깊어가는 가을에 그 ‘현실’을 오래도록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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