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주의 문화읽기] 사람에게 사람을 배운다
[조민주의 문화읽기] 사람에게 사람을 배운다
  • 조민주 문화부장
  • 승인 2015.11.30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지막 호(1620호)를 준비하면서 나와 내 동기들은 모든 일에 ‘마지막’이라는 의미부여를 하곤 했다. 우리는 어떤 일에 있어서든 마지막을 맞이하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는 법이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신문사 생활. 기사 소재를 찾아 취재를 하는 일, 기사를 쓰는 일, 밤을 꼬박 새우는 마감과 편집 작업까지 이곳에서 쉬운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 올해 후배들을 이끌고 여러 행사를 진행하는데 미숙한 부분도 있었고 힘들기도 했지만,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시원섭섭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신문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조직에서 진정으로 소속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은 매슬로우가 말하는 인간의 욕구 중에 사회적 욕구(사회생활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가정, 직장 등에서 사랑을 받는 욕구)로서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보다 높은 차원의 욕구로 여겨진다. 우리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어느 집단에 가입하고 그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1학년 때 신문사라는 집단에 가입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이곳에서 진정한 소속감에 대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참으로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기고 조직생활을 잘 해내는 사람이라는 자만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당시에는 주어진 일을 제시간에 해내고 일을 마무리하면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후배들을 이끌고 관리해야 하는 3학년이 되면서부터 이것이 완벽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생각한 대로만 조직이 굴러가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17명 사이의 불협화음은 매번 협의와 조율로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였다.

 또한 내가 원하는 대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성격이 급한 나는 어느 정도 기다림의 미학도 배우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기다림의 시간이 참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데, 기다리기 위해서는 포기하는 것들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고 싶은 나에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한 기다림은 초조함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발간하는 영대신문이라는 확실한 대상, 더 나은 지면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는한 이런 기다림이 분명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난 후부터는 막연한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구성원들과 함께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은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지난 시간 동안 신문사라는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상처를 받거나 성장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신문사에 들어와 만난 인연들을 통해 나는 분명히 성장했고, 앞으로 후배들도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성장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