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해피 버스데이
[김문주 교수의 따뜻한 시 읽기]해피 버스데이
  • 김문주 교수
  • 승인 2015.05.11 2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피 버스데이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ㅡ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ㅡ 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ㅡ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의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ㅡ 해피 버스데이 투 유!

오탁번,'해피 버스데이'

('우리동네' 2010) 전문
 

읍내로 가는 버스 정류장의 정경입니다. 놀랍게도 시골 할머니와 파란 눈의 서양 아저씨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요. 흥미로운 점은 할머니는 경상도 사투리로, 서양 아저씨는 영어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야기가 되느냐고요.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요. 바로 ‘-데이/day’ 덕분입니다. 경상도 말끝에 붙는 어미 ‘-데이’와 요일(날)을 뜻하는 영어 단어 ‘day’가 두 사람을 이어놓았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의 같은 음을 내는 어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의 어떤 말의 소리를 자신의 언어로 들음으로써 기이한 소통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지요. “왔데이”는 “What day”로, “monday(먼데이)”는 다시 ‘뭔(무엇)-데이’로, 그리고 “버스(Bus)-데이”는 “Birth-day”로 응수되고 있습니다. 일상의 유머나 시의 말들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의 장난[作亂], 외국어간의 동음어(同音語)를 바탕으로 한 유희적 충동이 이 시의 유머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가 주는 웃음은 단순한 유희나 장난을 넘어 어떤 온기(溫氣)를 품고 있습니다.
시골 할머니의 사투리와 서양 아저씨의 영어가 절묘하게 펼쳐내는 이 시의 기막힌 소통의 상황은, 상대의 말을 흘려듣지 않으려는 따뜻한 환대(歡待)의 마음이 만들어낸 정경입니다. 그 마음이 우리를 웃게 합니다. 상대를 경청하는, 그 “친절한” 마음과 태도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게 한 비결이겠지요. 말의 피톨들이 통하지 않는 불통(不通)과 소화불량의 시대가 언제까지 갈지. 아, 당신과 말하고 싶습니다. 웃고 싶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