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계시던 곳은 가을의 초입새에 있음에도 물안개가 짙게 끼는 그런 곳이었다. 동이 트면 해는 그런 안개를 걷으며 그림자를 비추기 시작하는데, 그럴 무렵이면 할아버지는 늘 강둑에 앉아 강의 그 어디쯤을 바라보시며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셨다. 강은 폭이 넓지만, 물의 흐름이 보였고 강가에는 듬성듬성 허리까지 오는 억새들이 있었다. 강을 마주 보고 있으면 물살은 늘 강의 상류인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느 날은 졸린 눈을 비비며 그런 할아버지 옆에 앉아있었다. 할아버지는 옆에 앉은 나를 보시고는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이셨다. 매캐한 담배 연기는 금세 물안개와 섞이며 어느 것이 연기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동이 트기 전의 촉촉한 새벽공기에는 풀냄새와 흙냄새가 섞여 있었고 텁텁한 담배 연기는 그런 안개 속에서 그런 냄새들을 잡아먹는 듯했다. 꽤 몽환적인 냄새였다. 할아버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으시더니 마치 넋두리와 같은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태어나셨을 때부터 나보다 조금 어른인 나이가 되셨을 때까지, 쭉 한마을에 사셨다고 했다. 그곳은 신발을 신지 않아도 뛰어다닐 수 있는 곳. 마을은 할아버지의 왼쪽 어깨너머 강 아주 위쪽에 있었다고 하셨다. 앞에는 작은 개천이 흘렀고 채 5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살았다고. 아침엔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귐으로 잠을 깨우고 햇살은 산머리부터 천천히 쏟아지는. 오후의 해가 비치는 물살은 에메랄드빛의 경계선을 긋고 길섶에는 하얗고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곳. 저물녘이면 저마다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로 구름을 만들고 격자 모양의 창문으로 노란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어둠을 밀어냈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더 큰 시간을 되짚으셨다.
꽃이 피는 계절엔 마치 생애 첫봄을 맞는 것처럼 마을 이곳저곳을 신이 나서 쏘다니는 아이들과 긴 겨울 동안 얼어있던 웃음을 녹이는 사람들. 그러다 해가 길어지고 날이 조금씩 더워지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 다 같이 개천에 모여 청포로 멱을 감았더란다. 마을에서 가장 큰 아름드리나무 그늘에서는 수박을 까먹으며 높아지는 하늘을 바라보셨더랬다. 그러다 얼굴 위로 갈색 나뭇잎이 툭 떨어지면 외투를 꺼내 입고 산등성이로 밤송이를 주우러 다니셨다. 산에 올라 한없이 높아져만 가는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흰색 꽃이 떨어지면, '아, 다시 돌아 겨울이 왔구나.' 하고 마을로 발길을 돌리셨다고 했다. 떨리는 가슴은 날씨 때문인지, 다시 돌아와 줄 봄볕 때문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며 옅은 웃음을 지으셨다.
그러나 봄볕을 밀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댐 건설에 관한[…]". 책가방보다 조금 작은 종이에 담긴 말은 순박한 우리네가 받아들이기에 너무 큰 세상이었다며. 그들이 손에 들고 온 너무나도 가벼운 종이 한 장에 마을 사람들은 무거운 상심만을 남긴 채 마을을 떠나야만 했노라고. 자신들에게 붙은 '수몰이주민'이라는 꼬리표는 손에 닿을 수 없는 시간까지 따라올 것이라고. 이렇다 할 보상도 쥐지 못한 손에는 양손 가득 살림살이만을 챙기셨다. 미련을 남기고 떠나는 발걸음은 푹푹 발자국을 남기는데, 그마저도 다시 찾을 수 없는 물길 속으로 들어갈 것임을 알고 떠나셨으리라.
등 떠밀려온 도시는 야속하게도 고향을 밀어낸 회색 콘크리트들로 가득했고, 그것들은 어디서나 그리움을 상기시켰다고 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당신께서는 손재주 하나는 타고났다며 너스레를 떠셨다. 당장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을 위해, 내가 형이라고 부를 만한 나이의 할아버지는 손과 얼굴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자동차 밑으로 오늘이고 내일이고 들어가셨다. 상・하의가 구분되지 않은 정비복이 기름때로 잔뜩 얼룩져 원래의 색이 잘 보이지도 않을 때까지 묵묵히 당신의 가족을 부양하셨을 것이다. '수몰이주민'이라 불리기 전까지의 시간과 비슷한 시간을 낯선 도시에서 보내신 할아버지의 한마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내게도 꿈은 있었단다." 젊은 날의 할아버지는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며 글을 쓰고 싶으셨단다.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라면 오지인 그곳으로 아무도 오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말을 하지만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글에 깊이 빠지지 못했다. 글조차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문학'은 당장의 즐거움이 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아마 그게 제일 안타까우셨으리라 가늠할 뿐이다.
할아버지가 다시 강가로 돌아오셨을 때는 이미 모든 가족이 떠나고 난 후였다. 강산이야 4번이나 바뀌었다지만 물길만은 거기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얘기를 듣던 그날도 그런 할아버지의 옆에 앉아있을 때였다. 해는 어느덧 산 중턱까지 올라서 있었고 하늘은 여전히 옅은 보라색과 주황색이 섞여 있었다. 햇살은 물에 비춰 수백, 아니,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지듯이 반사됐다. 눈이 부시긴 했지만 못 뜨고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그 꿈이란 것을 떠올랐다. 꿈, 누구에게나 꿈은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누군가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글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소리 없이 먼지처럼 어깨에 쌓이고 나면, 축 늘어진 어깨로 멀어져 가는 꿈을 쫓아가지 못한다. 마치 우리 태양계 안에 있던 명왕성이 이제는 관측하기도 힘든 거리로 멀어져 '134340'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멀어져만 가던 꿈은 그렇게 이름조차 잃어버린다. 잊혀서 부를 일도 없게 될 때쯤 가끔은 누군가가 그 왜소행성이 '명왕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고 말해줄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글을 쓰고 싶던 누군가는 펜 대신 스패너를 들었고 책 대신 장부를 펼쳤다. 다른 이가 꿈을 꾸며 걷게 해주기 위해선 누군가는 길을 닦아야만 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으레 길섶에는 꽃이 피어 있지만, 길 위에는 꽃이 이따금 만 필 뿐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아, 뒤따라올 사람을 위해 꿈을 보내고 길을 닦던 이들이 미처 버리지 못한 한 조각의 희망이 그곳에 던져졌구나.'라고 쓴 이해를 삼킬 뿐이다. 다른 이들이 길섶에 아름답게 피운 꽃보다 악착같이 길 한가운데에서 꺾이지 않고 피어난 꽃의 꽃말은 꿈이라고 하겠다.
해가 산 위에 다 올라섰을 때,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물안개는 내일의 새벽녘을 찾으러 갔는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심술궂은 여우비가 한두 방울씩 내릴 뿐이었다. 강을 등지고 몇 걸음 가서 뒤를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손가락 반 마디 길이도 채 남지 않은 담배를 들고 우두커니 앉아계셨다. “이제 그만 아침 드시러 들어가셔….”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강은 늘 그랬듯이 위에서 아래로, 그러니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데,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담배 연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날의 연기는 마치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찾으러 가는 모양새였다.
쨍한 햇빛에 어지러울 정도로 눈이 떨렸다.